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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거짓되지 말라,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 거짓의 대가는 무엇이며, 어떻게 치르게 되는가
  • 기사등록 2021-12-15 11:19:44
  • 기사수정 2021-12-15 14: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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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Voyager 기자]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은 실화라는 것이다"


2019년 드라마 <체르노빌> 한국 왓챠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리뷰의 내용이다. 드라마가 수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실제 사건 현장에 있는 듯한 극사실주의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전대미문의 위기 속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HBO의 또 하나의 걸작, <체르노빌>.

드라마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나도 베스트 리뷰에 마음이 뺏겼다. 5부작 구성이어서 부담감도 덜했고, 어떤 작품이길래 이 정도로 난리인가 싶은 호기심에 1화를 재생했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봤다. 아니, 봐야 했다. 포스터 오른쪽 위에 작게 적혀있는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What is the cost of lies?)라는 메시지가 너무나 와닿아서였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일어날 일들


드라마는 시작부터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으로 덮으려는 행위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집중한다. 모든 재앙의 시작인 가동 시험을 담당한 발전소 소장은 자신의 실수임을 은폐하려 사고를 축소 보고한다. 지역 의원회 구성원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소련 당국은 사건을 수습하면서도 서방 세계와의 냉전 체제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애써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


모든 것의 시작이 된 발전소 소장. 그의 말이 달라졌다면, 애초에 사고도 없었을 것이다그들의 거짓은 수십만 명의 죽음, 수백만 명의 방사능 피폭, 수십 년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드라마는 발전소 화재 진압에 투입된 사람들의 눈을 통해 거짓의 대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관 바실리는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금속 맛에 이상함을 느끼고, 두꺼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 전체가 녹아내려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다. 이후 자신도 온몸이 붉어져 병원으로 호송되지만, 시간이 지나며 숨만 겨우 붙어있는 송장이 된다. 사망 이후에도 온몸이 방사능 덩어리가 되어버린 바실리는 납으로 된 관에 묻히고, 두꺼운 콘크리트로 봉인된다.


감염 방지를 위해 체르노빌 내 모든 동물을 살처분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무고한 동물들을 사살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참전 경험이 있는 노병은 새끼들을 지키려는 어미 개를 보며 망설이는 어린 신참을 대신해 방아쇠를 당긴다. 빛바랜 건물의 선전 포스터는 그들을 비웃듯이 힘차게 외친다. "우리의 목표는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함이다."


발전소 지붕에 쌓인 방사능 흑연 덩어리들을 치우기 위해 소련 당국은 온갖 방법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바이오 로봇', 즉 살아있는 사람들이 90초 간격으로 교대하며 흑연을 치우는 작업이 진행된다. 2분도 안 되는 시간에 현장에 뛰어들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 작업 도중 발이 끼이고 장화가 찢어진 작업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돌아오자, 작업 감독자는 말한다. "자넨 끝났네."



 <체르노빌>은 일어난 일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거짓으로 보려는 행위의 대가를 차가운 영상과 영화 <조커>의 OST 작곡가의 음악으로 담아낸다.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애써 잘 되겠지 라는 거짓으로 덮어두는 행동이 얼마나 큰 대가로 돌아오는지 보여준다.



스스로에 대한 거짓의 대가를 깨달았다


<체르노빌> 뿐일까. 애써 덮어두는 거짓말이 대참사로 번지는 것을 우리는 뉴스로, 주변의 이야기로,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거짓말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아닐까. 


•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애써 내 잘못이라고, 불합리함을 주장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덮어두는 것. 

•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 회피하거나 화를 내는 것. 

•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야 할 일을 마주 보길 피하는 것. 


모습은 다양하지만, 결과는 똑같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망가진 현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도 자신의 잘못, 결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피와 오만함. 

고등학교 졸업식 날, 거울에 비친 고도비만이 된 모습을 보며 이따위로 살지 말자고 생각했다. 2달 반 동안 아침과 저녁을 거르면서 운동해 26kg을 감량했다. 부모님은 정말 고생 많았다며 지금도 내가 아껴 입는 네이비색 코트를 사주셨고, 그 코트를 입으며 나는 과거를 인생에서 지우기로 다짐했다. 학생 시절의 나는 더 이상 인생에서 없다고 못 박았다. 그게 얼마나 건방지고 위험한 생각인지 전혀 알지 못 한 채로.

대학교를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대외활동을 하고, 직장을 다니며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훨씬 건강해졌고, 내가 잘할 수 있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분야들을 찾았으며, 믿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가까워졌다. 거기까진 좋았다.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아직도 다른 사람의 말이 신경 쓰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들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애써 묻어 둔 나의 과거는 2019년 가을 공황장애라는 이름의 방사능으로 폭발했고, 2021년 7월 번아웃으로 나를 덮쳤다. 과거의 내가 겪은 상처들을 치료하지 않고 눈 감은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기도 한 과학자 발레리 레가소프는 1화 첫 장면에서 말한다.


진실이 불쾌할 때 우리는 진실의 존재를 잊을 때까지 거짓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존재하죠. 우리의 모든 거짓은 진실에게 빚을 지고,

언젠가 그 빚을 갚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참사와 관련된 모든 진실을 폭로한 후 레가소프는 묻는다.


한때 진실의 대가를 두려워했던 곳에서 이제 난 그저 물어볼 뿐입니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스스로의 상처와 치부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반복한 결과를 나는 알게 되었다. 

거짓의 대가는 모든 것이라고. 자존감, 자신감, 성공, 미래까지. 

내 마음과 정신에 진실해야만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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