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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왜 인지는 몰라요.

그냥 마음속에서

하나의 느낌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오늘은 두 가지 느낌이 떠올랐는데

그 느낌이 좋아서 오래 붙잡고 있었어요.


하나는, 누군가가 영화 속 장면을 캡처한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스크랩한 것이었지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보았던 거니까

적어도 십 년은 지난 캡처 장면일 뿐이었어요.


오빠로 보이는 귀여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광활한 바다, 하얀 모래사장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어요.


오빠가 동생에게 가르쳐주지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말이야,

손가락으로 코를 쥐어봐. 그럼 괜찮아요."


분명 마음 깊이 엄마를 그리워해 보고

그 그리움을 어찌할 줄 몰라

시행착오를 해본 아이만 할 수 있는 말이라,


그런데 그 처방이 너무 허술하고 순수해서,


또 그 방법을 동생에게 전하는 오빠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도 슬퍼서


손가락으로 코를 쥐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오빠와 동생의 모습이

제 마음에 그대로 들어왔어요.


어떤 영화인지도, 누가 올린 캡처 인지도 몰라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꼭 찾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생각나면 그 장면 속에 들어가서

어린 남매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바다의 모래사장에 한동안 머물러요.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하는 방식이,

저에게도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슬픔과 그리움을 아이들과 함께 하며

위로하고 위로받게 되지요.



이따금씩 떠올리는,

또 다른 하나의 장면이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마 학교에서 하는 수련회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학교에서 하룻밤을 모두 함께 자는

그런 행사를 했었어요.


너무 무더웠고, 이런저런 활동에 동원되어 지쳤고

갑갑하고, 답답한데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열대야가 한창이던 한여름밤

이런 행사를 기획한 학교가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저는 그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서 누워있었지요.



그런 제 곁에 친구 한 명이 다가왔어요.

그 애는 부채를 가지고 있었어요.

땀 흘리며 찡그리며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부채를 부쳐주었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부채바람을

제 온몸에 살랑이며 일으켜주는데,

물론 계속 땀은 났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그전까지 따끔따끔하고 뜨겁고

어쩔 줄 모르던 어떤 마음이

따스하고 부드럽게 부채의 바람결에

조용히 내려앉는 것 같았거든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는데

잠결에도 친구가

내내 부채를 부쳐주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사실은요,

그 친구가 친한 친구도 아니었고,

오히려 말도 자주 섞지 않던 친구였다는 거예요.



친구라기보다는

그냥 같은 반 아이에 가까웠던 아이였기에

이름도 얼굴도 선명하지 않은 그 아이가,

그날 이후로도 그렇게 가깝지 않았던 그 아이가,


그날 저에게 가져다준 부채 바람이,

그 감정을 바꿔주는 감각이,

그 사소한 배려와 친절이,

아직도 이따금씩 생각나요.


생각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나도 사람들에게

그런 바람을 주는 사람이면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방이 나를 몰라도,

내 이름이든 얼굴이든 표정이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오래가는 따스함을 주는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걸로 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두 가지 기억의 공통점은

출처와 대상을 모른다는 데에 있어요.


이 기억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언제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행한 아주 사소한 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무엇이 어떤 이유로 어떤 삶의 순간에

누군가의 마음 풍경위에 떠오를지는

아무도 몰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 순간을 사는 것,

때로는 살아내는 것.


삶의 아름다움을 마주한 순간에는

어떤 순간에든 그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고

어떤 순간에든 그 이야기를 꺼내 줄 수 있게

우리의 마음 곳간 속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



당신도 누군가의

출처 없는,

얼굴을 모르는

어떤 위로를 남긴 사람일 거예요.


바로 그런 이유로 당신은,

우리 모두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의 순간들은,

소중하고 아름답고 절실해요.


너무 힘들 때면 잘 살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힘을 빼고 오늘은 살아만 주어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앉아서도

여전히 '아픈 과거 속'을 헤매게 되기도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우리는 또,

지금 여기에 앉아서도 과거의 아름다움을

언제든 꺼내어 펼쳐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 놀라운 능력을 오늘, 지금 써요.

그리고 기억해요.


누군가가 출처와 얼굴 없이 행한 어떤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오늘 삶을 더 잘 살아내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듯이.


오늘 내가 행한 어떤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오늘 삶을 더 잘 살아내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저는 어떤 삶의 아름다운 순간도 잃고 싶지 않아요.

특히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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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26 07: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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