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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소연 ]



꼭꼭 씹어 읽기


쓰기에 선행되는 것은 읽기다.


고백컨데 아줌마가 된 후에는 이십 대 때만큼 책을 읽지 못한다. 시간과 책이 널려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시간도, 서점도 도서관도 아주 멀리멀리에 있다. 달라진 점은 적은 양이지만 독서의 목적과 질이 달라졌다는 것.


지금은 쓰기 위해 읽고, 읽기 위해 쓴다. 예전에는 읽는 행위 자체를 위해 읽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보아도 내용을 새하얗게 잊어버렸다. 대체 왜 읽나 싶을 정도로. 책 속 세상에 몰입해 잠겨있다 깨어나면 꿈을 꾼 것 같았다. 그 꿈속에서 사는 것이 좋았다. 한바탕 꾸고 난 꿈은 곧 잊었다.


그렇게 현실과의 연결성을 끊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은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으니까.


그때도 글을 쓰기는 했지만 읽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었다. 단지 감정을 토로하는 글이었을 뿐이다. 일기에 가까웠다. 구체성도 없고, 스토리도 없는 감정만 뭉뚱그려놓은 자폐적인 글들이었다. 나만 읽고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글들. 내 경험과 상처들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내놓지 못해 마치 암호 같은 글들을 썼었다. 그런 글들이 수년간 쌓이다 보니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남들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해졌다.


다른 방식의 읽기가 시작되었고, 책의 종류도 바뀌었다. 소설만 즐기며 소설 속의 감정과 감성만 먹던 방식의 독서에서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좀 더 현실적이고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을 읽게 되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보고, 읽는 중에 떠오르는 즉시 글을 쓴다.


그런데 소설 외에는 완독 하는 책이 반 정도밖에 없다. 수많은 책들 중 의외로 끝까지 알찬 내용으로 꽉 찬 책은 많지 않다.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책 한 권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에너지를 똑같이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비어있는 모든 부분을 찾고 또 찾아내 완벽하게 채우는 것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그것을 잘하는 작가들은 틀림없이 성공한 작가다.



바람처럼 뱉기


견딜 수 없도록 쓰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던가, 문장이 타자기처럼 다다다 흘러나온다던가. 머릿속과 마음이 간질여져서 쓰지 않고는 못 참을 그런 날. 자다가도 쓰고 먹(이) 다가도 쓴다. 사실 자리 잡고 앉아서 글을 쓰는 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퇴고하면서 컴퓨터로 읽어보려 할 때만 책상 앞에 앉는 것 같다)


자리 잡고 앉아 써야 하는 것이 글이라면 내 일상에선 하루 30분도 허락되지 않을 거다. 웃기는 건 책상 앞에 앉으면 딴짓만 한 시간이라 허락된 시간조차 글쓰기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걸으면서, 일하면서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어 버겁도록 씹다 보면 문장이 되어 튀어나온다.


이부자리를 펴고 잠들었다 일어나고 먹고 씻고 다시 잠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 안에서도 몽글몽글 솟아나는 이야기들이 새삼 신기하다. 글 하나에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더 이상 쓸 게 없어!’하고 덮어버린다.


그러다 이삼일 있으면 쓰고 싶은 욕구가 나를 간질인다. 뭘 써볼까, 일상의 작은 것들을 찬찬히 꼬집어보다가 문득 잡힌 주제만 제목에 써둔다. 내용은 미지수다. 의식 밑에 그 주제를 넣어둔다. 부담스럽지 않게, 억지로 쥐어짜 내지 않도록. 다음 날 내용이 잡히기도 하고, 몇 주 후에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흘러나온 문장들을 수십 번 읽고 또 머릿속에서 리와인드한다. 완성할 때까지.


꼬깃꼬깃 써내기


누군가와 약속하고 쓰는 글은 참 어렵다. 의식 아래에서 충분히 담금질할 시간도 부족하고, 저절로 튀어나오는 내용으로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다. 상호 간에 요구하는 스타일이 다르기도 해서 협의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협의하는 과정에서 울컥 화부터 나기 십상이다. 당연히 수십 번 퇴고해야 할 초고를 검토하는데도 비판을 들으면 마음이 오그라든다. 퇴고 전에 마음부터 쪼물딱거리며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내게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다.


콩나물 다듬듯 한 문장 한 문장을 다듬으러 가기 직전이다. 아주 커다란 한 다라이를 담아두어 마음의 준비를 든든히 해야 한다. 커피나 와인 같은 것에 꼬깃거리는 속내를 좀 담가 두었으면 좋으련만, 카페인도 알코올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다. 맨 정신으로 달리려면 고기라도 든든히 먹어둬야겠다. 며칠 밤을 새야 할지 모르니까. 차분한 밤 시간이 문장과 나를 담백하게 다스리기에 가장 좋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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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07 1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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