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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스펙 경쟁에 익숙하다


 

취준생들은 이미 예전부터 스펙경쟁을 ‘학생시절부터’ 익숙하게 경험해왔다. 중학교 때에는 앞서 갈 수 있도록 공부와 미래의 꿈을 위한 스펙을 쌓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1차 취업이라고도 불리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았다.


그 중에서도 취준생의 예행연습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은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다. 이른바 ‘대입 전쟁’이라고 불렸다. 학생들은 각자 본인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가리지 않고 스펙을 쌓았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본인들이 직접 동아리를 만들어 주도적으로 스펙을 쌓기도 했다. 

 


여기서도 심리적 요인이 생겼다. 스펙을 만드는 ‘학생들끼리의 격차’가 생기면서, 암묵적인 강박 관념이 이 시기에 생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뭐라도 가리지 않고 해야 대학에 갈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몸을 잠식한다. 수시가 70% 이상을 차지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이미 강박적 자기계발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다.

 

대학에 오면 강박적 자기계발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감은 더 커진다. 취업은 대입과 다르다. 좀 더 빡빡하고 더 삭막하다. 지금까지는 학교라는 제도권 안에서 살았지만, 취업은 어찌 보면 세상에서 처음으로 ‘심리적·육체적 독립’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부터 오는 막강한 압박감은 취준생들을 더 옥죄어온다. 

 

취준생들은 무언가를 쉬지 않고 열심히 해야지만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 고정관념은 어릴 때부터 느꼈던 스펙에 대한 상대적인 격차와 이미 취업 시장의 뛰어든 사람들의 취업 현황을 생각하면 더 짙어진다.


또 말도 안 되는 ‘가짜 실패감’도 찾아온다. ‘난 취업을 잘 못 할 것 같아.’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막연한 부담감과 그로부터 오는 가짜 실패감이 나를 잠식한다. 아직 실패해보지도 않았는데, 미리 실패감이 드는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든 취업을 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스펙을 쌓기에 급급해진다. 

 


스펙 쌓기에 연연하다보니 기이한 상황도 벌어진다. 목표가 ‘취업’이 아닌 ‘단순한 스펙 쌓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의 직군과 관련된 스펙이나 전혀 상관없는 스펙 등 이력서에 단 한 줄이라도 적힐 수 있는 것들은 마구잡이식으로 쌓는다. 문제는 그로 인해 취업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게 아닌, “오늘도 스펙 하나 쌓았다!”라는 직관적 쾌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목표의 변질로 스펙 쌓기에만 치중하다 보니 강박적으로 스펙만 막 쌓는 것이다. 그 스펙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취준생의 강박적 자기계발에는 ‘코로나 시대로 인한 영향력’도 분명하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근 2년간 비대면 수업이 진행됐다. 밖에 나가서 수업을 들을 때 보다, 혼자서 무언가를 처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한 공개채용을 실시하는 기업들의 수가 대폭 줄었고, 취업 시장의 문 자체가 좁아졌다.


취준생들은 내가 취업하지 못하면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취업이 어려워졌어.’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편함, 우울감이 증폭되며 ‘다 내가 못나서 그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은 스펙 쌓기에 대한 강박으로 당연하게 이어진다.


강박적 자기계발은 이처럼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로 인해 취준생들을 힘들게 한다.



2.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쉽지 않다. 취준생의 입장에서 보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강박적 자기계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심리적으로 부담이 생겨 강박에 잠식되어가는 자기계발의 형태는 어렵지만 단호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벗어나기 힘들다. 

 

심리적으로 발생된 문제는 심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우선 ‘나에 대한 확실한 믿음 가지기’다. 여기서 말하는 확실한 믿음이란 “난 잘났으니까 나를 믿어.”같은 개념이 아니다. ‘객관적인 확실한 믿음’을 뜻한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제3자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나의 심리 상태와 나의 생각과 결합된 진짜 나의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내가 가장 잘 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혹시 강박적인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꼼꼼하게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잘 아는 단계를 넘어 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내가 잘하는 부분은 더 향상시키고 내가 못하는 부분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보완한다면, 더 성숙한 자기계발 · 향상적 자기계발로 돌아설 수 있다.




두 번째는 ‘한 발 뒤로 물러서기’다. 한 발 뒤로 물러서 힘을 빼고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취준생들은 안 그런 것 같다가도 ‘강강강’, ‘앞으로만 앞으로만’ 자기계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진만 하는 자기계발은 너무 쉽게 지친다. 세상을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라는 법이 있나. 가끔 옆길로 새기도 하고, 뒤로 후진도 해보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취준생들은 옆이나 뒤로 빠지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이 글의 기자도 포함이다. 하지만 누구도 앞으로만 달리라고 나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다. 혹시 모른다. 힘 빼고 다른 길로 돌아갔는데, 그 길이 지름길이 될지도. 




세 번째는 ‘미러링’ 이다.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목표에 도달한 사람들 중에는, 분명 나와 같은 강박적 자기계발에 빠진 사람이 있다. 취준생의 인터넷, SNS 활용 능력을 바탕으로 검색해보자. 나와 비슷한 강박적 슬럼프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본인의 해결책에는 나의 문제도 해결해줄 수 있는 실마리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나의 입장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대표 예능 PD인 나영석 PD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할 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어야 한다.’라는 강박에 빠져서 어떻게 하면 웃음을 줄 수 있을지 고통스럽게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예능에서 꼭 웃음만이 정답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해서 나온 프로그램이 ‘삼시세끼’이다. 지금 삼시세끼의 틀은 수많은 방송사에서 차용할 만큼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미러링은 어렵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내가 자꾸만 강박적 자기계발에 빠지려 할 때, 앞서간 선배들이 극복했던 방법들을 나만의 생각으로 해석해서 따라 해보는 것이다.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잘못된 길로 향하는 나에게 브레이크 정도는 되어줄 수 있다.




마지막은 ‘내가 사랑하는 나를 만들기’다. 나를 사랑해야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내 목표에 도움이 되는 스펙들을 좆는 것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나를 만들기 위한 스펙을 쌓는 것이다. 취업은 이번에 못 한다고 내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가 한 번이 아니다. 때문에 나를 위한 다양한 스펙을 쌓을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영화만 보는 것이 나를 위한 스펙이 된다. 사람들과의 소통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열심히 준비해 강연대회에 나가보는 것도 나를 위한 스펙이 된다. 내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나의 목표를 위해 스펙을 쌓아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스펙을 쌓으면, 취업을 넘어 내 인생에 대한 행복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아직 취준생이다. 누군가는 “너는 아직 필드(취업전선)에서 뛰어보지 않아서 몰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하며 나를 위한 스펙들을 쌓으면 행복은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취업 같은 하위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취준생의 입장에서 강박적 자기계발 극복은 쉽지 않았고, 여전히 쉽지 않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극복하려고 노력 정도는 해봐야 한다. 나를 확실하게 믿고, 지칠 땐 한 발 물러설 줄 알고, 선배들의 극복 방법을 따라 해볼 줄 알며, 내가 사랑하는 나를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최소한 강박에 스며들어가는 나를 조금씩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기자 : 송하민, 양원준, 정윤경 기자 




* 참고문헌

1. 허창구, 2020, 스펙경쟁 사회에서 자기계발 동기와 자기계발 강박이 취업준비생의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 2-20페이지

2. 이상준, 변숙영, 2016, 청년층 채용시장에서 스펙 유형에 관한 연구 - 도대체 채용시장에서 어떠한 스펙이 중요한데?,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교육문화연구, 255-27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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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29 14: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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