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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상담자입니까?"
  • 기사등록 2020-08-04 16:11:29
  • 기사수정 2021-06-17 13: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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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은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일’일 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부와 명성이나 지위가 아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곧 다가올 설 명절에서도 제일 많이 오가는 덕담은 “금년에도 건강하라”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 속에는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상담은 마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

우리 모두는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면 “요즘 무슨 운동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예사롭지 않게 하곤 한다. 그렇다면 운동은 몸이 건강할 때 하는 것이 좋은가? 몸이 병들었을 때 하는 것이 좋은가?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동은 몸이 건강할 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라”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다.

마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 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마음의 건강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담(상담)이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상담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담을 받으시지요”라는 권유를 받는다면, 한편으로는 기분이 상하고 한편으로는 은근히 염려가 되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담은 이미 마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받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담을 권유받는다면, 자신을 문제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에 기분이 상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염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상담은 언제 받는 것이 중요할까? 그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마치 몸이 건강할 때 운동을 해야 하듯, 상담은 마음이 건강할 때 받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건강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우리 생활이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면 그 사람은 상담을 받기보다는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담은 마음이 건강할 때, 그리고 병들기 전에 받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건강을 지켜 줄 의무가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은 서로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는 것

상담(相談)을 한자로 풀어보면, 서로 상(相)자와 말씀 담(談)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담(談)자의 자획을 풀어서 설명해보면, 말씀 언(言)자와 불 화(火)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 속의 불인 화를 제때 풀지 못하고 쌓아두면 병이 생긴다. 이 병이 화병(火病)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화병이 많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바가 있다. 그래서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화가 났을 때 효율적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화가 두 개가 있다는 것(炎)은 이미 마음 속에 화가 쌓여있어 병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화가 풀린 것이 아니라 계속 마음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상태가 밖으로 표출되면 일반적으로 폭력적이 된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기물을 부수거나 또는 정말로 불을 지르기도 한다. 2008년 설날 연휴 마지막 날에 일어난 비극적인 ‘숭례문 방화사건’의 범인은 검거된 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고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시인했다.

폭력은 한편으로는 언어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화가 난 사람들은 ‘욕’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함으로서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화를 풀려고 한다. 실제적으로 화가 나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향해서 욕을 많이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최근에 우리 십대들이 폭력적이 되어 간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십대들이 다른 십대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괴롭혀서 피해를 당하던 학생들이 견딜 수 없어 자살하는 비극이 종종 일어난다. 또한 십대들이 욕을 많이 한다고 걱정을 한다. 십대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욕인 줄도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욕이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신체적으로 또 언어적으로 폭력적이 되어 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그들은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이다.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증상은 사회적 관계에서 철수(撤收)하는 것이다. 화가 났지만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점점 위축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이들은 ‘억울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화를 돋운 사람에게 적당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억울하고, 그런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들은 점점 사회적 관계에서 철수하여 집밖에를 나가지 않는다거나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된다. 


화가 심하게 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 상태를 나타내는 한자는 염(?)자인데, 화자가 세 개가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화가 너무 많이 나거나 쌓여서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말로 “뚜껑이 열리는” 상태이다. 이렇게 되면 폭력이 자제가 안 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화가 나서 싸움을 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죽이겠다”라는 내용의 욕을 한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그 당시에는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억울하고 우울해져서 살아갈 명분을 잃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 결과는 자살로 나타난다. 울화병을 심하게 앓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죽고 싶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홧병이 많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제일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화가 났을 때는 그것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 속에 쌓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가? 우리 조상들은 말(言)로 표현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준다. 어린아이들이 길에서 싸움을 할 때, 지나가던 어른들은 “싸우지 말고 말로 해라”고 타이른다. 방에서 안 나오는 자녀를 향해 부모들은 “나와서 속 시원히 말 좀 해라”라고 권유한다. 즉, 화가 났을 때는 말로 푸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혼자서 중얼중얼하면서 울거나 웃거나 하면 볼썽이 사나워질 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풀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옆에서 같이 대화를 해 줄 상대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상대(相)와 같이 대화를 통해 화를 풀어주어야 한다. 상담은 이제 그 뜻이 분명해진다. 상담(常談)은 “서로 상대방의 마음 속에 있는 화를 대화를 통해 풀어주는 것이다”

상담자는 듣는 사람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화가 나 있을 경우, 우리는 상담을 해 주어야 한다. 즉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화가 나 있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해야 하는가? 아니면 화를 풀어주려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해야 하는가?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화가 난 사람이 이야기를 많이 해야 화가 풀리게 된다.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 속의 화는 점차로 풀리게 된다. 그렇다면 화를 풀어주려는 상담자는 당연히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화를 풀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화를 내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욱 화가 나게 되고, 결국 관계는 소원해진다.

몇 해 전에 한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쓴 시(詩)가 모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아빠는 왜?”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이뻐해 주니까

강아지가 있어 좋다/나랑 놀아주니까

냉장고가 있어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주니까

아빠는/왜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자녀들에게 아빠는 왜 있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이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것을 본다. 아빠들 스스로 대답이 궁색해지면서 일반적으로 “돈을 번다”라는 대답을 한다. 그러면 돈을 벌지 못하면 더 이상 아빠가 아닌가? 더 이상 아빠의 구실을 못하는 것인가? 만약 우리 자녀들에게 “아빠가 있어 좋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까” 라는 말을 듣는 아버지가 행복한 아버지가 아닐까? 그런 아버지들이 많아지는 것이 불통의 사회를 넘어 ‘소통의 사회’, ‘건강한 사회’가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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