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소연 ]
1. 삶은 스킨십을 위해 존재한다.
엄마 뱃속에서 아기는 온몸으로 일체를 경험한다. 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두 사람의 결합은 완벽한 포옹이다.
태어난 아기는 엄마와의 분리된 감각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엄마와의 분리를 인식하는 순간, 스킨십에 대한 갈망은 시작된다. 눈 떠있는 순간 젖을 물고 엄마 품을 갈구한다. 떨어져 있는 순간이 길어지면 불안은 커진다. 불안이 불어날수록 잠든 순간조차 스킨십에 매달린다. 스킨십과 불안은 역수 관계다. 자궁에서 분리된 순간부터 생겨나는 어찌할 수 없는 관계다.
아이는 매일 엄마와의 스킨십을 가슴에 쌓으면서 자란다. 엄마와 포옹하고 있는 시간과 면적은 점점 줄어든다. 사춘기, 몸과 마음을 독립하면서 격렬한 분리를 겪는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 새로운 스킨십을 할 상대를 찾아 나서는 시기다. 타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새로운 스킨십을 경험한다. 태어난 순간의 안정감을 찾아 헤맨다.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안정감. 그 안정감이 삶의 끝까지 내 것이 되길 갈망하며 결혼을 한다. '엄마/아빠 같은 사람은 안 만나야지'해도 결국 부모와 비슷한 색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엄마와의 스킨십이 충분했으면 그것이 그리워서, 부족했다면 그것을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아기를 가지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한 덩어리로 겪는 완벽한 포옹, 그리고 분리. 아이가 성인이 되어 둥지를 떠나면서 스킨십을 잃은 나이, 허무함과 우울을 겪는 일은 흔하다. 이 시기를 부부관계에서 보상받지 못하면 황혼이혼으로 이어진다. '다 늙어서 왠 바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늦은 나이에 불륜이 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손자 손녀의 등장으로 스킨십의 갈망을 채운다. 노년에 떨어진 체력만큼 잠시 잠깐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꾸 재촉한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고. 때를 놓치면 큰일난다고.
2. 삶은 스킨십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갓 태어난 아가가 나를 찾는다. 작은 손은 내 얼굴을, 팔을, 가슴을 비비고 꽉 꼬집는다.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고. 팔과 다리를 버둥대며 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뱃속에서 존재하던 그 안정감이 그리워서. 탯줄 대신 젖을 물고 늘어진다.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때의 스킨십은 평생, 분리를 경험하는 시기를 버티게 해 주는 동아줄이다. 아이를 독립시킬 때, 연인과 이별을 맞을 때,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낼 때.
함께 하는 매 순간 평생 잊지 않을 격렬한 포옹을 담아주고 싶다. 그 어떤 시기에도 불안을 경험하지 않도록. 스킨십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그리고 늘 불안을 경험했던 나를 위해서도 우리는 더 깊이 껴안는다. 내일이 없을 듯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3.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분리는 젖 떼기다.
탯줄 대신 물고있던, 엄마의 혈을 마시던 젖을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아기는 경악한다. 단순히 밥이 끊기는 문제가 아니다. 엄마 품에서 느끼던 완벽한 안정감을 잃는 순간이다. 삭막한 세상에 내동댕이 쳐지는 감각에 가깝다. 눈을 감고 뱃속에서 웅크리던 자세로 입만 열면 자동으로 흘러들어오던 꿀 같은 물줄기는 이제 없다. 바로 앉아, 숟가락을 쥐고 스스로 먹을 것을 입에 넣어야 한다.
그래서 설명해주어야 한다. 긴 시간에 걸쳐,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기에게 손짓 발짓 그림이라도 그려가며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이제 젖은 없다고. 스스로 서야 한다고. 너는 그만큼 강한 아기라고.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할 거라고.
엄마와의 관계가, 만 4세까지의 경험들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첫 분리, 첫 이유식, 첫 사회생활. 세상에 나가 경험할 이별과 상실을 건강하게 겪으려면 엄마와의 첫 경험을 잘 해내야 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천천히 받아들일 시간과 함께. 놀라지 않도록.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매일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분리와 고립의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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