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타자를 향한 질문: 당신은 누구십니까? - 질문을 멈추는 범주화의 문제에 관해서
  • 기사등록 2022-03-29 07:42:45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박은지]




사진출처: pixabay.com  



‘안녕하세요. 저는 000입니다.’

 

모두 한 번쯤은 자기소개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서로가 낯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소개를 통해 자신을 알려주고,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짐작한다. 사실 우리가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 또한 ‘소개’라고 할 수 있다. 교육, 독서, 경험 등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소개받고, 이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식을 형성해나간다.


하지만 모든 지식이 직접적인 소개를 통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고, 그 정보들을 일일이 처리하기엔 인간의 사고능력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공통특징, 속성, 기능을 중심으로 유사한 대상들을 분류하고 집단으로 '범주화'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을 ‘꽃’이라는 범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소나무'라도 그것의 특징을 보고 ‘소나무’라고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 꽃과 소나무를 ‘식물’이라는 더 큰 범주로 묶어 분류할 수도 있다. 이렇듯 범주화는 한정된 인지능력을 가진 인간이 복잡한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잘못된 범주화의 문제



범주화는 사물이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낯선 타인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인물에 대한 범주는 그에 부착된 사회적인 의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물 범주와 관련된 고정관념을 그대로 적용하여 인식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범주화의 문제는 인터넷이 발달하며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양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그에 비해 어떤 것이 유의미한 정보인지 비판적으로 분별하는 사고능력은 확장되지 않았다. 


또한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은 지식을 습득할 때도 최소의 인지 활동으로 최대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인지적 경제성’을 추구한다. 어떠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직접 탐구하고 생각하기보다는 인터넷에 올려진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습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무비판적 수용'으로 얻은 정보들은 타자에 대한 섣부른 ‘범주화’로 이어진다.


인간의 뇌는 범주화된 정보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받아들인 정보들이 앞으로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편향이란 인간이 어떤 현상 혹은 특정 대상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이 새로운 정보의 인지, 논증,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 확증편향은 사고와 문제해결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해 주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무의식적인’ 인지과정이다.


즉, 우리가 비판 없이 수용한 정보가 우리의 일상 속 인지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길가에 핀 꽃도 같은 것이 하나 없다



범주화로 인한 편견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의 소개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20대 여성', 'INFP', '서울사람', '대학생', '철학전공’


필자와 대화 한번 하지 않았지만, 이 중 어떠한 범주는 실제로 누군가의 인식에 영향을 미쳐 필자를 구성했을 것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구성된 필자는 어떠한가? 당신의 범주화는 합리적이었는가? 


필자는 범주의 동일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범주화는 아주 효율적이며, 범주의 특성은 타자와 나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비합리적일 때, 혹은 합리적이더라도 범주만으로 타자와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할 때 그것은 편견이 된다. 동일성의 아래에 개인의 개성을 지워버리는 것, 그것은 곧 ‘동일성의 폭력’이다.




사진출처: pixabay.com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타자이고 

나 자신으로의 나의 귀환이 일어나는 어떤 최종적인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말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같이 내 안에도 내가 알 수 없는 타자가 존재한다. 우리는 '내 안의 타자'도 '내 밖의 타자'도 영원히 완벽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타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버틀러는 ‘말 걸기’를 통해 타자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우리의 ‘주체화’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나’도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을 탐색하는 ‘너’도 타자를 발견하게 된다. 

타자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범주라는 틀을 벗어나 질문을 건네야 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때서야 우리는 진정한 ‘개인’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기사

여러분의 새해 목표는 안녕하신가요?

슈드비 콤플렉스: 쉬지 못하는 사람들

아이들의 상처는 말하고 있다

나는 부모 이전에 자녀, 자녀 이전에 '나'이고 싶다






참고문헌

고영성,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스마트북스, 2013)

김은주. (2018). 탈근대의 윤리적 주체화와 책임의 새로운 지평.한국여성철학, 29(), 59-86.

김현철. (2014). 맥루언의 미디어 이론과 슬로철학.철학연구, 106(), 189-213.

이예경. (2012). 확증편향 극복을 위한 비판적 사고 중심 교육의 원리 탐구. 교육과학연구 , 43(4),1-31.

이현재. (2015). 도시민을 위한 인정윤리의 모색: 헤겔, 호네트, 버틀러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23, 5-31.

조혜자, & 방희정. (2006). 암묵적인 자기 범주화의 성차.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11(2), 245-265.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3132
  • 기사등록 2022-03-29 07:42:4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