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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엄마 소진 증후군, mommy burnout symptom


아기의 잠든 숨소리를 확인한 뒤 아기 곁에서 조용히 빠져나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기의 세상은 ‘온 세상이 온통 엄마’ 그 자체였다가 점점 엄마 대체자들로 둘러싸인 세상으로 변해간다고.


아이는 의존에서 독립으로 나아간다. ‘꼭 엄마여야만 해’에서 ‘꼭 엄마가 아니어도 돼’로,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에서 ‘이제는 엄마가 없는 것이 더 좋아’로 성장해간다. 전적인 의존에서 부분 의존 또는 부분 독립으로, 그리고 더 큰 독립으로 가는 여정이다.


아이의 발달과 성장의 여정을 따라가며 엄마의 여정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 아이의 모든 것이었던 엄마는 결국에는 뒤에서, 멀리서 아이를 응원하는 자가 되어간다. 하나로 겹쳐진 두 개의 동그라미 안에 있던 아이는 자라면서 조금씩 엄마의 동그라미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의존에서 독립으로 가는 모든 여정은 아름답고 이 과정을 함께하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세상 어떤 관계보다 끈끈하다. 하지만 의존의 시기를 버텨주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질 때가 많다. 또 엄마의 자리를 지키며 소멸되어가는 ‘엄마 아닌 나’를 마주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엄마 소진 증후군에 시달린다. 그 증상은 이렇다.




-몸과 마음이 너무 쉽게 방전된다. 자고 일어나도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상태. 아침부터 활력이 없다.

-일상에서 재미있는 것이 별로 없다. 즐겁게 하던 일조차 안간힘을 써야 겨우 할 수 있게 된다.  

-퓨즈가 짧아도 너무 짧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화를 낸다.

-심장이 뛰는 속도는 빨라지고 잦아드는 속도는 느려졌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을 때가 많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이리저리 소진되고 마모된 것을 느끼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 나 대신 아이들을 돌보 아줌마로서 내가 ‘엄마 아닌 나’로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사람. 엄마 대체자가 필요하다.



혼자서는 다 해낼 수 없어서


막상 엄마 대체자를 구하기로 하자 마음에 양가감정이 일었다. 아기를 맡겨야 할 이유와 아기를 맡기지 말아야 할 이유 사이에서 자꾸만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소개받은 베이비시터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겉으로는 아이가 준비되지 않았을까 봐 걱정했지만, 사실은 내 마음이 더 걱정이었다. 어쩌면 아이를 맡기는 일에 있어서 아이의 준비만큼이나 엄마의 준비도 중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이비시터가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선 순간, 나는 크게 안도했다. 하나의 고개를 넘어서 하나의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베이비시터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육아를 돌아보게 되었다. 장난을 치고 놀면서도 경계를 분명히 해주는 것이 나에게는 항상 어려웠다. 나는 언제나 바빴고 너무 진지했고 분명한 말보다 잔소리를 더 많이 늘어놓았다. 내가 세운 규칙을 아이들보다 먼저 깨는 사람도 언제나 나였다.


반면, 그녀는 분명하고 투명했고 간단한 용어와 흔들리지 않는 몸짓을 구사했다. 사실 그 분명함은 엄마에게 필요한 덕목이면서, 엄마이기에 구현하기 힘든 덕목이기도 했다. 이것은 엄마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육아의 영역이 있기에 엄마 혼자서 육아를 다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엄마라도 안 되는 것, 엄마이기에 더 안 되는 것에 대한 ‘육아 아웃소싱’이 반드시 필요하다. 잘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다 해내려 애쓰기보다 혼자서는 다 해낼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돌봄 노동의 가치


아이 셋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긴 김에 내가 힘들어하는 살림 영역 중 하나인 청소도 도우미를 써볼까 싶었다. 그런데 비용을 계산하다가 너무 비싸서 망설이게 되었다. 아이들을 맡기는 비용이 한 시간에 삼만 원에서 사만 원 정도였다. 살림의 모든 영역이 아니라 딱 한 부분만 포함한 것이 말이다. 이를 다시 해석해보면, 엄마의 노동을 시간당으로 환산해낼 경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삼만 원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시간당 적어도 삼만 원을 지급받아 마땅한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통장에 찍히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이 수치를 우리 마음속에 잘 새겨져야 한다. 없던 돈이 생겨야만 버는 것인가. 쓸 수도 있었던 돈을 쓰지 않는 것도 버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살림을 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이 벌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번다.



여러 사람의 이어달리기


베이비시터 이모가 온다고 이야기했을 때 첫째의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 내 돌보미 이모 childminder도 생기는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에서 들뜸과 흥분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친한 친구 몇몇에게는 돌보미 이모가 있는데, 자신에게는 ‘엄마만’ 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엄마 대신 다른 사람이 아이를 돌보는 것을 결핍으로 받아들이지만, 아이는 ‘엄마 만’ 있는 상황을 오히려 결핍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엄마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 대체자가 오는 상황을 결핍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니, 아이들에게 엄마 대체자는 또 한 명의 엄마, 그러니까 ‘엄마들’이 생긴 것으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신’이 아닌 ‘추가’인 것이다.


또 한 명의 엄마, 추가된 엄마는 엄마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것은 결국 돌봄의 겹이 두터워지고 육아의 질이 높아지는 일이다. 내내 아이 곁에 머물면서 소진된 모성을 채워주는 것, 한 사람의 오래 달리기가 주는 위태로움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어달리기가 주는 안정감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소진’에서 ‘충전’으로 가는 일이다.

    

좋은 엄마의 조건


베이비시터가 돌아간 뒤 거실에서 그녀의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막내가 방석을 들어 보이며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예전에 어떤 육아서에서 하루 세 시간은 엄마 냄새를 맡게 해 주라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생각을 뒤집어서, 하루 몇 시간쯤은 엄마 냄새가 아닌 다른 냄새를 맡게 해 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엄마 소진 증후군을 엄마 대체자를 세워 해결해보려던 시도에 대한 임상 보고서를 쓴다면, 그 보고서의 잠정 결론을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 같다.




1. 좋은 엄마의 조건에서 ‘아이와 내내 함께해주는 엄마’라는 조건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아기와 내내 함께해주는 엄마’라는 조건을 지워야, 엄마들은 좋은 엄마에 가까운 엄마로 기능할 수 있다.


2. 아이들도 엄마가 내내 함께해줘야만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서로를 그리워할 시간을 가진 뒤에 뜨겁게 다시 만나 서로의 모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좋은 엄마이다.


3. 엄마로 사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이 번다. 엄마의 돌봄 노동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 환산을 해볼 필요가 있다.


4. 엄마 대체자를 찾는 여정은 좋은 ‘엄마들’을 겹겹으로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5. 우리는 한 사람의 외로운 오래 달리기가 아닌 여러 사람의 이어달리기를, 한 겹의 위태로운 육아가 아닌 여려 겹의 단단하고 다정한 육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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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28 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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