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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출근해서 데이 근무 때 일하던 남자간호사 선생님의 얼굴을 봤는데 넋이 나가 있었다. 나는 '많이 힘들었지?'라는 말을 건네면서 남자간호사 선생님의 어깨를 토닥이며 지나갔다. 아무래도 오전 내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많이 시달렸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침 이번 주는 병원 인증평가기간이다. 수술은 여전히 많고, 침상은 꽉 차 있어서 정신없이 일반병동으로 환자를 보내고 다시 그 자리로 수술 환자를 받고 그런 와중에 평가단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가지고선 일을 빈틈없이, 실수 없이 해내야 한다.


인계를 받고선 투약 카드를 확인하고 약을 준비하고 정리하고 있는데 옆으로 청소해주시는 여사님이 다가왔다. 여사님의 얼굴을 봤는데 예전과 달리 최근 들어 부쩍 힘들어 보이셨다. 매일 일찍 출근하시고 성실하게 일하시며 늦게까지 수고해주시는 여사님이시기에 피로가 축적되셨으리라.


- 여사님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여사님 많이 지쳐 보이세요. 요즘 많이 힘드시죠?


- 그러게요. 요즘 힘에 부칠 때가 있어요. 근데 간호사 선생님들도 고생하시잖아요. 병원이 다 그렇죠 뭐. 다들 힘들고 지쳤어.


여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여사님의 삶을 떠올려봤다. 보통 여사님들은 매일 오전 6시쯤 출근하셔서 병원 구석구석 청소하고 환자가 일반병실로 이동해서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침대 및 장비를 깨끗하게 닦으시고 정리해주신다. 보통 점심시간 전, 후로 수술 환자가 많이 내려오기 때문에 점심식사시간은 뒤로 밀린다. 휴게공간도 적당한 장소가 없는 실정이고 일하시는 분들의 수가 적기 때문에 일하다가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도 있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음을 느낀다. 점점 나아지면 좋겠건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수술을 마친 환자의 침대가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마취과 의사 선생님은 [1] ambu-bagging을 하고, 흉부외과 의사 선생님은 [2] patient monitor를 보고 환자의 [3] vital sign을 확인하면서 내려왔다. 여러 명의 간호사 선생님이 수술 환자에게 달라붙어 각자 맡은 일을 수행했다. 맥박, 혈압, 산소포화도를 확인하고 동공반사는 잘 이루어지는지, 삽입되어 있는 주사 및 흉관 부위의 피부 상태는 괜찮은지, 배액이 많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소변은 잘 나오고 있는지, 수액은 적절한 속도로 들어가고 있는지, 약물의 용량은 어떻게 들어가고 있는지. 그렇게 수술 환자 정리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바로 다음 수술을 마친 환자가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이런 날은 정말 정신이 없다. 결국 출근한 지 1시간이 되어서야 내가 맡은 환자분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환자 사정을 마치고, 필요한 약물을 투여하고, 환자의 체위를 바꿔주는 등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면회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일하고 있는 흉부외과 중환자실은 외부의 균에 취약한 수술 환자가 있기 때문에 감염관리를 위해 면회객의 수를 1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시간은 점심, 저녁 각각 20분만 면회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20분을 면회하기 위해서 먼 타지에서 서울까지 오신 분들도 허다하고 하루 종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분들이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간호사의 입장에서는 궁금하신 것들을 최대한 많이 설명해드리고 있으며 필요를 채워드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중환자실 재원일이 3일 이상 지난 장기환자의 경우 보호자에게 현재 상황과 치료계획 및 방법, 예상되는 회복시기를 설명드리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 아니 수술한 지 1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더 중환자실에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돼요?


- 그래서 언제 퇴원할 수 있는 건데요? 왜 아직도 낫지 않는 거죠?


보호자의 격앙된 반응을 접할 때 드는 생각은 만약 내게 신과 같은 능력만 있다면 병원에 오시는 분들 다 낫게 해드리고 싶고 이 세상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니면 몇 월 며칠 몇 시에 상태가 호전될 거라는 정보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요즘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분들을 바라보면 진단을 받았을 때 단순히 하나의 질병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같은 질환들. 그리고 고령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수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더 악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지 젊고 건강했을 때의 모습 같이 극적으로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호전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언제 회복이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 가족의 입장에서, 환자분이 중환자실에도 너무 오래 계시고 보시기에 회복이 더디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이 드실 것 같습니다. 혹여나 상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을까 불안한 감정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환자 분의 상태가 언제 호전이 될지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 곳에 있는 의료진들 모두 환자분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힘 내주세요.


인계 시간이 되어 다음 선생님에게 인계를 주고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간호 기록을 남기는데 시간이 거의 자정 무렵 되어 있었다. 오늘도 난 밥 먹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바빠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근무하는 동안 인증 평가단이 오지는 않았다. 소소하게 감사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동기가 카톡에 남긴 말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하늘에 구멍 뚫린 건가 여름보다 비가 더 많이 오는듯하네'


그 말을 보고 탈의실 창문을 열어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우산이 없는데 어떡하지 생각하고 있다가 비가 언제쯤 그칠까 일기예보를 확인해 봤다.



현재 서해상에 위치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이 흐리고 비가 오고 있습니다.


특히,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제주도에는 시간당 20mm 내외의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고, 전남에도 시간당 10mm 내외가 다소 강한 비가 오는 곳이 있습니다.


이 비는 서해상에 위치한 저기압이 오늘 밤사이에 중부지방을 지나 동쪽으로 물러나는 내일 아침까지 이어지겠습니다. 또한, 저기압 중심이 중부지방에 위치하는 오늘 밤(21~24시)에는 국지적으로 시간당 20mm 내외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날씨가 흐리다. 비가 내린다.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살까 생각도 했지만 그 돈이 아까워 10분 거리인 원룸까지 달려가기로 결정했다. 다리는 탱탱 부어있고 배는 허기지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달려가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언제쯤이면 다들 맑아질까. 여사님도. 간호사도. 환자도. 보호자도.






[1] ambu-bagging : 구급 소생 백. 인공기도를 삽관한 환자의 경우 인공호흡기를 가진 채로 수술실로 이동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Ambu-bag을 정확한 속도와 깊이로 짜면서 이동해야 한다. Ambu-bag을 짜는 행위를 Ambu-bagging이라고 한다.

[2] patient monitor : 환자의 활력징후를 화면 상으로 표시해주는 기계.

[3] vital sign : 활력징후. 일반적으로 체온, 맥박, 호흡, 혈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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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24 06: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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