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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인 것 처럼' 된다 - - 거짓말이 사실이 되는 세계에 사는 사람, 리플리 증후군 -
  • 기사등록 2022-10-17 07: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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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신선경 ]



범죄 수사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때 수사청에서는 그들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거짓말 탐지기'이다. 이 탐지기는 사람들의 신체 변화를 통해 거짓을 가려낸다. 즉, 우리 대부분은 거짓말을 할 때 땀을 흘리거나, 심장이 빨리 뛰기도 하고 특정한 행동을 자주 취하는 형태를 보이는데,  거짓말 탐지기는 바로 우리의 이러한 생리학적 변화를 감지하는 시스템을 활용해 거짓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말 탐지기를 100% 믿을 수는 없다.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사용하는 고성능의 검증된 거짓말 탐지기조차 그 정확도는 97%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능상의 오류일 수도 있고, 생리현상의 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거짓말 탐지의 대상자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유능한 거짓말쟁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유능한 거짓말쟁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거짓말쟁이,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Ripley Sundrome)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정신적 상태를 의미한다. 최근 '안나'라는 OTT 플랫폼 시리즈가 크게 흥행을 하면서 리플리 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로 인해 리플리 증후군이 일종의 '장애'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명칭은 미국의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있는 리플리 씨"에서 따온 말로 실제 의학계에서 사용되는 병명은 아니다. 그렇다면 병도 아니고 장애도 아닌 리플리 증후군은 정확히 어떤 정신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리플리 증후군의 특징 1. 숨 쉬는 듯이 편안한 거짓말 




일반적인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할 때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그것이 심리적 변화일 수도 생리학적 변화일 수도 있지만, 조그만 변화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 친구가 내 물건을 빌려가서 고장을 냈다. 그래서 굉장히 슬펐지만,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친구를 보자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 친구의 사과로 인해 '화남'의 감정이 사그라들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심리적 불편함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히 웃으며 '괜찮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이때는 심리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다. 반면 엄마에게 오늘 학원을 빼고 친구들과 놀러갔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잘 다녀왔다고 말하는 한 학생의 손이 흥건한 것은 바로 생리학적 변화이다. 이처럼 개인 차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느 정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리플리 증후군 환자들은 거짓말을 하는데 죄책감을 가지거나 눈을 깜빡이는 등 심리적, 생리학적 변화를 전혀 동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편하게 숨을 쉬듯이, 어떤 노력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쉽게 한다는 것만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모두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퇴근 시간, 상사의 약속이 있는 지 묻는 질문에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무 약속이 없는 경우에도 '있다'고 답하기도 하며, 어색한 사람이 무리한 부탁을 했을 때 속으로 굉장히 불편하면서도 겉으로는 '흔쾌히 돕겠다'는 표시를 하기도 한다. 자, 이처럼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또 어떤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리플리 증후군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리플리 증후군의 특징 2.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는 태도, 그리고 상습적인 거짓말 



바로 자신이 지어낸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가족으로부터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특징을 가진 사람을 A씨라고 표현하여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A씨는 어느 지방의 좋은 아파트에 사는 주부이다. 그녀는 아파트 내에 있는 목욕탕을 자주 애용하는데, 그곳에서 만난 자신 또래의 여성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내용이 매번 달라진다. 어느 날에는 자신의 딸이 이화여대 바이올린학과에 다니고 있으며 과 수석이라 30분 넘게 독주 연주회를 한다고 했다가, 또 다른 날에는 그녀의 딸이 덕성여대의 바이올린학과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작년까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으며 너무 힘들어서 정년퇴직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그녀가 근무했다는 초등학교의 학생의 학부모 말에 따르면 그녀는 방과후 교사였으며 학생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해고되었다는 것이다. 

 

이 예시를 보면 리플리 증후군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특징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눈 깜짝 않고 태연히 자신의 학위를 속이거나 부자인척 행세를 하고, 이것을 사실인냥 말하는 것을 넘어 그 허구의 세계가 자신이 살아가는 실제라고 믿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후에 모든 거짓말이 탄로나도 당당히 자신의 거짓말을 이어나간다. 자신은 그 거짓들이 여전히 '실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리플리 증후군의 발생 원인 - 개인의 측면 


 

왜 사람들은 이런 증후군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리플리 증후군은 흔히 성취욕구가 강한 개인이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경우 많이 발생한다. 즉,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람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이 거짓말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되면 상습적인 거짓말을 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다 이러한 거짓말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되면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행동하는 리플리 증후군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리플리 증후군의 발생원인 - 사회적 측면 


 

나는 처음 리플리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그들이 좀 기이하게 보였다. '나'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항상 정직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 과도한 정직은 때로는 거짓보다 더 큰 상처나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짓은 거짓일 뿐'이다. 다시 말해 '거짓의 거짓의 거짓' 이라는 것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또 다시 그 거짓이 다른 거짓을 낳는다. 그러다 보면 그들은 '현실의 나'는 사라진 '허구의 나'만을 살아가게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이 말한 거짓말들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것이다. 왜 굳이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조금은 부족해도, 남들과 조금 달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나는 과거에 내 자신이 부끄럽다. 단 한번도 그들이 '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지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던져본 적이 없이, 그저 그들의 행동을 비판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 환경과 관점에 사로잡혀, 그런 삶을 사는 이들이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상하다고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이 들키지는 않을지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거나 자신들의 공동체 속에 끼워주지 않는지 매 순간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허구를 사실이라고 믿는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이들도 그 증상이 심각해지기 전에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들이 허구를 사실이라고 믿게 된 원인이 성취욕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인정욕구에서 기인한 이상 리플리 증후군에 도래하는 과정 속에서 일반 사람들보다 더 극심하게 사회와의 단절에 대해 심리적 불안감을 느겼을 것이다. 또한 편안하고 본인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같은 인간이기에,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 실제로 현실에서 떳떳하게 성취하여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런 리플리 증후군을 가지게 된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과도한 성취욕구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욕구를 가질 수 밖에 없게 하는 '사회'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천연 자원이 풍부한 국가도 아니고, 패권 국가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지구 상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나마 있는 '인적 자원'의 개발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인적 자원을 단 기간에 높게 성장시키기 위해 '경쟁'이라는 시스템을 과도하게 도입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불이 꺼진 고요한 밤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남 보다 더 나은 성취와 결과는 곧 성공의 지표라고 여겨졌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삶 그 자체를 평가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나는 리플리 증후군은 바로 이런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유니세프에서 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학업스트레스가 상당히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가지는 원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성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성공'하기 위한 가장 쉬운 길로 '공부'를 택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이 사랑하는 철학자이자 최근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 철학자인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을 가진 아이러니스트들이 연대를 하며 사회를 이뤄가야 한다고 한다. (로티의 표현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어 풀어 설명하자면) 우연적*으로 이 나라에 태어나 우연히 내게 형성된 다양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자아창조를 하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으며 서로 대화와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필연적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반드시 우리가 한국에, 이 시기에, 나의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되며, 한국어를 배우고 이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우리는 그동안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사회적 상황이나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이들이 처한 환경을 고려하기 보다는 그들을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와는 다른 '이상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이들을 돕고자 하기 보다는 멀리하고자 했다. 심지어 특정 커뮤니티에서는 무지성적인 비판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의 거짓말이 내게 불편할 수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다. 로티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관점을 관철하기 보다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먼저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에게 비난을 던지기 보다, 변화를 촉구하는 말 한마디를 먼저 건네주는 것은 어떨까?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이들에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요인이 그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지 모르나, 그 상황을 타개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본인'이기 때문이다.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족한 자신을 숨기고자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람들도 다 결점이 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은 다르다. 따라서 본인의 출발점이 조금 뒤쳐진 것 처럼 보이더라도 언제든 나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조금은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우리도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 당신들도 좌절을 버리고 일어서는 힘을 가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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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민경산 수지가 연기한 '리플리증후군', 허언증과 무엇이 다를까
콩글리스 인문학 중앙선데이 리플리증후군은 열등감에 반복적 거짓말 일삼는 증상

헬스 조선 수지가 연기한 리플리 증후군, 실제로는 없는 질환?

사이언스 온 거짓말을 사실처럼, ‘리플리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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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17 07: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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