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The Psychology Times=윤소영 ]
출처 Pixabay
작년에 종영한 주말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밥 때문에 볼륜을 저질렀다고 고백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내는 고작 음식 때문에 볼륜을 저지르는 게 말이 되냐고 황당해하지만, 남편은 “밥이 그냥 밥이 아니야.”라고 털어놓는다.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 백상창 박사는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하러 온 부부들을 임상적으로 관찰한 결과, 남편이 이혼을 청구한 가정의 여성 대부분이 요리를 못하거나, 요리에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음식은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사람의 심리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다. 주변에서도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서 음식 때문에 싸우거나, 연인 간 메뉴 선택 때문에 다투고 헤어지는 경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 또한 어려서부터 편식과 다이어트 등으로 부모님과 다툰 경험이 있다. 이렇듯 음식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선택하고 먹는 과정에서도 당연히 인간의 뇌와 심리가 작동한다. 그렇다면, 식탁 위에서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심리학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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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탕, 젤리, 초콜릿 등 단 음식들을 먹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과학적으로 단 음식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임상 내분비학과 대사'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설탕을 섭취할 경우 스트레스에 의해 분비되는 코르티솔 호르몬을 떨어트리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두 번째 이유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자체가 맛을 인식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음식을 쓰게 느껴 단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에서 불쾌한 내적 상태에 있는 상황이 맛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냈다. 한 연구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해 무력감을 느끼는 임상군은 쓴 맛에 민감해져, 평균 대조군에 비해 같은 음식을 더 쓰다고 느끼고, 부정 정서를 경험한 개인은 기분 조절을 위해 높은 당도의 맛을 취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미각 경험에는 스트레스와 기분 요인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보다 극적인 효과가 확인되는 심리적 요인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병리적 성격 특성이다. 특히 대상에 대한 극단적인 이상화와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의 반복, 만성적인 허무함, 공허감 등의 특성을 가지는 경계성 성격 장애는 맛에 대해 특히 민감하다고 분석된다. 이들의 핵심 성격 특성인 자기혐오 수준과 맛의 지각이 서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만성적인 부정적인 정서는 맛에 훨씬 민감해지도록 만들고, 이는 과식이나 절식 등의 좋지 않은 식습관을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해 맛 지각은 음식의 자극에 있어 단순한 혀의 감각을 넘어선, 한 개인의 정서적 정보의 통합을 기반으로 한 복합적인 지각적 경험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기분에 의해 음식을 먹고, 또 음식에 의해 기분을 조절한다. 이는 섭식으로 정서를 조절한다는 가정을 하는 ‘정서 조절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정적인 정서를 느끼면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부정적이고 추상적인 자극을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섭식행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구체적인 섭식 반응으로, 인간은 자신의 정서를 조절할 수 있다.
정서 조절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정서에 반응하여 음식을 섭취하고 기분을 조절한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즉각적이고 과해지게 되면 이상 섭식행동이 발병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음식중독, 신경성 폭식증, 섭식 억제 등이 있다. 특히 최근 문제 되고 있는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은 짧은 시간 동안 통제력을 잃고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폭식 행동과, 체중을 조절하기 위한 구토, 이뇨제 남용, 과도한 운동 등의 보상행동이 반복되는 증상을 뜻한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 뒤에는 심한 죄책감, 허무함, 우울감이 들기 때문에 또 다른 심리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고, 구토와 약물 사용으로 인한 심장 및 콩팥 질환, 소화기관 문제, 역류성 식도염, 무월경 등 다양한 신체적 문제도 겪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배가 고프거나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데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짜 배고픔'이라는 심리적 허기를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일시적인 허기는 순간의 충동을 잘 넘어가야 하지만, 음식과 관련된 심리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 절제하지 못하고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음식 관련 심리 장애의 치료를 위해서는 심리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최근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몇 가지 방안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1. 폭식과 관련된 정보 제공, 자극 통제 등의 전략을 통해 식습관 정상화를 도와주는 단기 심리교육
2. 억제통제훈련(Go- No go task)을 통해 자극에 대한 반응을 지연하는 연습하기
3. 음식에 대해 생각하며 음식을 갈망하기 대신, 음식과 무관한 심상으로 주의 전환하기
4. 인지적 정서 조절 전략을 통해 음식에 대한 '회피' 대신 '수용'하기
5.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지를 수정하는 인지행동치료
폭식증과 같은 심리적 장애는 심리적인 관점에서 다가가 치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그들의 낮은 자아존중감, 충동성,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감소시키는 게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는 '영양학'뿐 아니라 '심리학'도 있다. 음식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는 심리학이 있고, 섭식 관련 이상 행동을 치료하는데도 심리학이 사용된다. 특히 자영업을 할 것이라면, 중요한 미팅 자리나 소개팅에서 음식점을 결정할 때라면, 혹은 내가 폭식이나 과도한 다이어트 등의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음식과 관련된 인간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다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음식, 즉 우리의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를 바꿔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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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세경. (2022). 음식 심리학에 대한 탐색적 고찰.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22(5), 393-403.
B. Bastian, J. Jetten, and M. J. Hornsey, "Gustatory pleasure and pain; The offset of acute physical pain enhances responsiveness to taste," Appetite, Vol.72, pp.150-155,2014
멜라니 뮐 , 디아나 폰 코프, 음식의 심리학:심리학자가 들려주는 음식에 담긴 42가지 비밀. 송소민, 서울:반니, 2017
음식 심리학에는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도 많지만, 필자는 보다 완벽한 '나'를 위해 강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 속, 가장 문제가 되는 폭식증 등의 음식 관련 심리 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음식 심리학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과 심리학 이론을 더 소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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