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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안예린 ]




1996년 8월 23일, 서울 용산 후암동 어느 한 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집 안에서 발견된 것은 네 살배기 아이와 이미 숨을 거둔 엄마의 시신. 그러나 단순 사고로 취급하기에는 수상한 구석이 너무나 많았다. 경찰은 집 안을 둘러보면서 누군가가 엄마를 살해한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고의로 방화를 저지른 일이라고 추측했다. 증거는 있지만 목격자는 없는 상황. 증인이 된 사람은 고작 4살 된 아이였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7월 14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후암동 방화 살인사건의 전말을 공개하였다. 살해당한 흔적이 남은 엄마의 시신과 불이 난 집 안 상태는 이것이 사고가 아닌, 명백한 살인사건임을 알렸다.


그러나 유일한 단서는 4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의 말이었다. 아이는 ‘애기 아저씨’가 엄마와 자신을 때렸다고 말했다. ‘애기 아저씨’는 아이 할머니의 오랜 지인이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그는 “4살짜리 아이의 말을 어떻게 믿냐?”고 범행 사실을 부인하였고, 법원에서도 겨우 4살 된 아이의 증언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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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 제146조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든지 증인으로 채택되어 증언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는 말은 즉, 사고가 발달하지 못한 아동의 증언이라도 효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아동 증언이 인정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피해 아동의 진술을 온전히 신뢰하기에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사고를 당한 아동의 대부분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그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서 발언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동기에 겪는 부정적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티가 나기 마련이었다. 어렸을 적에 겪은 일이 성인이 되고 트라우마로 발현될 수도 있었다. 후암동 방화 사건도 이와 같은 사례로 해결되었다. 결국 4살 아이의 증언은 크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용의자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 길로 피해 아동은 아빠와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그 후 2년 만에 다시 열린 재판에서 피해 아동은 사건 당일의 기억을 대부분 잊은 상태였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말도 잊어버린 아이가 용의자의 얼굴을 보자 겁에 질린 채 책상 밑으로 황급히 몸을 숨긴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더라도 그날의 공포가 아직까지 남았다는 증거였다. 결국 인정받지 못했던 4살 아이의 증언은, 무의식이 반영한 공포로 그 효력을 발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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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의 ‘2021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집계된 전체 신고접수 건수가 2020년에 비해 약 27.6%로 크게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동학대의심사례만 무려 52,083건으로 96.6%의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외의 동일신고는 768건(1.4%), 일반상담은 1,077(2.0%)였다. 이처럼 아동을 상대로 한 사건ž사고가 꾸준히 증가하는 데에 반해 여전히 아동 증언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동의 증언이 진술로 인정되려면 여러가지 사정이 검토되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는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후암동 방화 사건에서도 보았다시피 아동의 기억은 때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동의 발언도 물론 중요하지만 표정, 태도, 목소리 등의 신체적 혹은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상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피해 당시에 겪는 부정적인 사건을 모르지 않는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니, 보다 아동의 상태를 신중히 살피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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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정연. "보건복지부 2021년 아동학대 주요통계". [아동학대대응과]. (2021).

"아동학대 피해자의 증언, 아이의 말이라고 듣지 않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베이비뉴스]. (2021).

URL: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136

'꼬꼬무' 후암동 방화 살인사건 전말 공개...4살 아이의 증언. [국제뉴스]. (2022).

URL: https://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8798

'꼬꼬무' 후암동 방화살인 내용은?. [금강일보]. (2022).

URL: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22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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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11 13: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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