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The Psychology Times=윤소영 ]
출처 Pixabay
다음 빈 칸에 자신이 생각나는 단어를 채워보자.
1. 내 휴대전화의 기종은 ( ) 이다.
2. 나만 ( ) 같은 사람들과 ( )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걸까?
3. 우리 좀 더 ( )하면 ( ) 할 수 있을 거야.
4. 내 반려동물의 이름은 ( ) 이고, ( )처럼 생겼다.
이제 위의 문제들을 가려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이 실험은 폴커 키츠, 마누엘 투슈라는 독일 심리학자가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실험을 필자가 간단하게 각색해본 것이다. 물론 짧게 각색하여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자신이 직접 써넣은 단어, 즉 나와 가장 관련이 있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예를 들어 1번 문제 같은 경우 ‘휴대전화’나 ‘기종’이라고 답하는 사람보다 빈 칸에 직접 채워 넣은 ‘자신의 휴대전화 기종’을 더 오래 기억해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즉 우리의 두뇌는 막 생각해낸, 즉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기억보다는 나와 관련이 있는 기억을 훨씬 오래 저장한다. 이것이 바로 내 생일을 비밀번호로 설정하면 훨씬 기억이 잘 나는 이유다.
위와 같은 결과는 두 가지 효과 때문에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생성효과다. 생성효과(Generation effect)는 우리 자신이 ‘생성’한, 즉 직접 만들어 낸 정보나 단어는 그저 읽기만 해도 훨씬 쉽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이 효과는 앞에서 한 실험 방식으로 쉽게 입증되는데, 실제로 한 실험에서 참가자에게 복잡한 글을 주고, 빈 곳을 채우게 한 후 어떤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묻자, 그들은 자신이 직접 써 넣은 단어를 특히 또렷하게 기억했다고 한다. 심지어 형광펜을 칠하거나 빨간 펜 등으로 표시해 둔 단어보다, 빈 칸에 자신이 채워 넣은 단어를 훨씬 효과적으로 기억해냈다. 즉 우리의 두뇌는 직접 생각해내고 만들어 낸 정보를 다른 정보보다 아주 잘 기억해낼 수 있다.
다음은 자기 참조 효과다. 자기 참조 효과(Self-reference effect)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뇌는 ‘자신 참조’, 즉 자신과 관련된 정보에 훨씬 더 주목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 참조 효과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일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예는 바로 타인의 생일을 기억할 때이다. 만약 친구의 생일을 듣고 ‘나보다 하루 빠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날짜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두뇌는 자신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고, 자신에게 해당하고, 자신과 가까운 정보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생성효과와 자기참조효과는 정보를 쉽게 코드화하여 우리 두뇌가 정보를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 없고, 불필요한 정보까지 모두 통째로 기억해낼 필요도 없다. 따라서 무궁무진한 정보를 ‘작게 줄여’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쓸 수 있어야 한다. 이 코드화 과정, 즉 알맞게 상상해서 정보를 기억해두는 것을 ‘심적 표상’이라고 한다.
즉, 심적 표상이란 사물, 관념, 정보 등 뇌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상응하는 심적 구조물이다. 대표적으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구조적인 것 등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친구의 머리카락 색은 어떠한가? 목소리는 어떠한가? 어떤 향이 나는가? 만약 학교라면, 어떤 자리에 앉았는가? 이런 정보들이 모여 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사람을 통째로 저장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그에 상응하는 코드로 바꾸어 쉽게 저장해두는 것이다. 이 때 도움을 주는 것이 생성 효과와 자기 참조 효과이다. 그 친구의 자리가 내 뒤라면, 나와 향수가 같다면, 내 생일과 비슷하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훨씬 쉽게 기억해낼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보를 기억할 때 우리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해내면 훨씬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처음 만나는 사람을 두고 ‘나와 같은 기종의 휴대전화를 쓰는구나.’라고 생각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암기할 때 ‘내 생일에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났구나.’ 처럼 생각해보는 것이다. 다른 기사를 읽으면서도 거기에서 다룬 이야기들과 관련된 상황을 직접 겪은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만약 없다면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그 이론과 심리학적 효과를 더 오랫동안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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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폴커 키츠, 마누엘 투슈.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북라이프. 2020
안데르스 에릭슨, 로버트 풀. 1만 시간의 재발견(노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 비즈니스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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