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처음 만났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A는 세월호 속에서 세상을 떠난 학생들과 같은 나이였다. 소식을 뉴스로 들었을 뿐인데도 같은 하늘 아래 살던 동급생들의 죽음은 A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A는 그동안 자기 삶에는 없었던 생과 사의 주제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했다. 


삶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과의 접촉은 조심스럽다. <삶과 죽음>은 처음부터 세트였고 그 순서는 뒤바뀔 수 없어서 삶이 정립된 다음에야 죽음이 소화될 수 있는 법인데 생명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전에 들어온 죽음은 아차 싶으면 사람을 그쪽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A의 가슴앓이도 그중 하나였다. A는 자신에게도 닥쳐올 죽음이 두려웠으며 어차피 그렇게 떠날 인생 열심히 살면 뭐 하나 싶어 허무했다.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불안에 기력을 빼앗겨 무기력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이 소화되지 않자 상징적인 죽음인 공포, 허무, 불안, 무기력의 증상이 나타났다.


삶이 준비된 후 찾아올 만큼 친절한 죽음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별이 충분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는 상실로 남을 텐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세월호와 이태원의 상실 앞에서 우리가 모두 황망한 상태로 멈춰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A는 어떻게 자기 인생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내 삶의 자리에서 상실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애도. 슬플 애(哀)와 슬플 도(悼). 슬프고 슬퍼하는 행위. 살아있는 사람들이 삶의 자리에서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빈자리를 슬퍼하고, 기억 속에서 죽은 사람을 사랑하고, 다시 돌아와 자기 삶을 사는 ‘삶으로의 초대’.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소화하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방법이 애도라고 한다. 사별 후 오랫동안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염려하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슬퍼하는 게 정상인지’를 묻는다. 무엇이 정상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언제까지라고 물었지만, 괜찮은 애도와 그렇지 않은 애도를 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하였는가’와 ‘자기 삶을 다시 살 준비가 되었나’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충분히 슬퍼한 뒤에 자기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가? 애도의 과정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음의 자리로 넘어가면 증상이 일어난다. 죽은 부모를 쫓아가는 꿈을 꾸기도 하고, 사건 기사들을 강박적으로 찾기도 하고, 죽은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연민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인생의 허무함에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증상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면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애도의 길을 다시 걸어야 할 것이다. 



애도는 살아있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지막인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의 후반부, 해리는 기절한 상태로 삶과 죽음의 중간세계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스승인 덤블도어 교수를 만난다. 죽어가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죽은 자신을 의지하는 해리에게 덤블도어 교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죽은 자를 불쌍하게 여기지 말고 살아있는 자들을 불쌍하게 여기렴. 그중에서도 사랑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Do not pity the dead, Harry, pity the living, and above all those who live without love).” 이 말속에 애도의 핵심이 있다. 애도는 남은 사람들이 슬픔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의식이고 과정이다. 산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죽은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베스트이기 때문에 우리는 장례를 치르고, 꽃을 놓고, 그들의 남은 가족을 위로하는데 정성을 들인다.         



애도를 통해 우리는 떠난 사람들을 기억 속에 저장한다.



A는 이름도 모르는 동급생들을 위해 조촐한 의식을 치렀다. 그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웠을지를 공감했고, 연이어 뉴스를 볼 때 본인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떠올렸고, 잠시 묵념하였다. 이름도 모르는 동급생들에게 하고 싶은 작별 인사는 정작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공감하고, 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의식적으로 작별하는 의식이 필요했다. 죽음이 우리 삶에 찾아왔을 때 우리 모두에게는 특별한 애도의 의식이 필요하다. 유가족에게는 시신을 확인하고 장례를 준비하는 일이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위해 안타까워하며 한 줄 위로의 글, 한 송이 꽃, 또는 묵념을 남기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먼저 떠난 사람을 우리 기억 속에 저장하고 그들을 잠시 삶의 자리로 초대한다. 




이태원에서 먼저 떠난 분들, 

유가족들,

절망스러운 소식을 접한 우리 모두를 위해 

깊은 애도를 합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5013
  • 기사등록 2022-11-11 13:48:1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