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연
[The Psychology Times=김성연 ]
학기 말이 다가옴과 동시에 대학생들은 밀려드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중에서도 조별 프로젝트인 ‘팀플’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모든 팀플이 원활하게 진행되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는 일이기에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나 역시 최근에 팀플을 진행하면서 난항을 겪었다. PPT 디자인을 맡으신 조원분이 개인 일정으로 인해 피드백을 반영하지 못한 탓에 결국 발표 담당이었던 내가 새벽까지 자료를 수정한 것이다.
대학생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흔히 ‘버스 탔다,’ 혹은 ‘버스 태워준다’라고 표현한다.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조원을 버스 안에 앉아있는 승객에게, 할 일을 대신 도맡아 프로젝트를 이끌고 가는 사람을 버스를 몰고 가는 운전기사에게 비유한 것이다. 사실 내가 버스를 태워준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조별 프로젝트에서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늘 존재해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조원들이 할 일을 대신해왔다.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결국 또다시 버스를 태워주고 있는 나. 도대체 왜 그럴까?
지나친 이타심은 결국 나를 소진되게 만든다, ‘조력자 증후군(Helper Syndrome)’
정신의학신문에 따르면 ‘조력자 증후군(Helper Syndrome)’은 남다른 직업 정신과 사명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생겨, 남의 일에는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많은 신경을 쓰면서도 정작 자신의 어려움이나 괴로운 문제는 남에게 털어놓거나 도움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전력을 다해 남들을 도와주려고 하다 보니, 그것이 곧 업무의 과중을 초래하고 심적인 부담감으로까지 이어져 정신 건강이 악화하는 것이다. 이렇듯 조력자 증후군은 큰 이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므로 의료진, 교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등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 돌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가 팀플에서 버스를 태워주는 이유도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 크다 보니 다른 조원들이 할 일을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남들을 돕는다는 행위 자체는 이타적인 행동이기에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조력자 증후군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정작 자신이 힘든 점들을 털어놓지 못하고, 도움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함에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태워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역할까지 대신하는 일이기 때문에 체력적, 정신적 에너지를 두 배로 소모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부담이 된다’라거나 ‘이런 부분은 조금이라도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단 한 번이라도 조원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며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많아졌고, 결국 우울감에 시달리는 나날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버스를 태워주는 것이 힘든 일임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매 학기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조력자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에 있다. 바로 남을 도와주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조력자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남들을 잘 도와주기에 ‘천사 같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칭송받고, 그로부터 보람을 느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벽 내내 다른 조원분이 완료하지 못한 PPT 자료를 대신 수정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발표까지 연달아서 했기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만 ‘최고예요,’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조원들의 말들에 힘들었던 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격려와 칭찬으로 미화된 기억들은 결국 다음 학기 팀플에서 또다시 버스를 태워줄 명분을 만들어주게 된다.
효과적인 도움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볼프강 슈미트바우어(Wolfgang Schmidbauer)는 저서 <무력한 조력자>에서
조력자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조력자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완벽함’을 남을 도와주는 것의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과연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남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내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던 것 같다. 돌아보면 조원분이 완성하지 못한 PPT를 새벽 내내 수정했던 것도 끝을 알 수 없는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이상적 완벽함이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고 책에 쓰인 바처럼 말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나에게 남은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과 자책, 결과에 대한 집착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흔히 말하는 ‘번아웃(Burnout)’ 현상을 가져다주었다.
저자는 책에서 조력자 증후군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도움의 전제조건은 바로 자신과 타인의 약점과 결핍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도움을 받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는 스스로에게도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이 기반이 되어야 자신이 괴롭고 힘든 점 역시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혹시 지금 팀플에서 버스를 태워주느라 혼자 힘들어하고 있다면 기억하자. ‘완벽한’ 조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완벽하지 않으면 어떤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빛나는 존재이다.
출처:
- [정신의학신문]. (2021).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0212
- 볼프강 슈미트바우어. (2013). 무력한 조력자 : 남을 돕는 이타적인 활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서울: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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