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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이전 직장에서는 재밌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옷 잘 입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대회이다. 대회명도 쿨하게 <고등학생 간지대회>. 참가자들은 패션 감각으로는 일가견이 있다는 고등학생들이었고 심사위원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패션계의 셀럽들이었다. 그리고 대회를 재밌게 보던 나는 옷을 사러 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한 번 쇼핑을 갈 때 그 시즌에 필요한 아이템을 몽땅 사는 워킹맘으로, 매일 비슷한 옷을 작업복으로 입는, 패션 실용주의자이다. 


패션 실용주의자가 효율적인 쇼핑을 하기 위해서는 실험정신을 일단 보류해야한다는 사실을 나는 지난 후회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가령 동네룩과 출근룩 중 한 가지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선택에 적절한 옷을 사야 ‘어제 쇼핑을 했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니’라며 후회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옷장을 열면 비슷한 색과 비슷한 형태의 옷이 비슷한 구도로 진열되어 있다. 그런 나에게 이 대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데 학생들이 패션쇼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이템을 가지고 제 나름의 믹스 앤 매치(mix and match)를 즐기는 모습이 자유롭고 통쾌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하게 되면 믹스 앤 매치를 하는구나감정도 그래. 



어른의 감정은 ‘믹스 앤 매치’다. 웃기다와 슬프다를 혼합한 ‘웃프다’는 말이 딱 그렇지 않은가. 처음 ‘웃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속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우리는 육아서적을 통해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는


 "우리 oo가 많이 슬프구나" 


라고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주라고 배웠다. 상담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이 말은 반만 맞는데 그 이유는 양가감정 때문이다. 양가감정은 “두 가지의 상호대립되거나 상호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교육학용어사전, 2022)”를 뜻한다. 위에 말한 ‘웃프다’가 좋은 예시이다. 웃기면서 슬픈다는 건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되지만 인간이란, 그것도 어른이란 슬픈 동시에 자기가 처한 현실이 어이가 없어 웃을 수 있을 만큼 복잡한 존재이다. 인간의 복잡성을 어떤 말로 정확히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러니 시인이, 

 

 "왜 사냐곤 웃지요.”

 

한 줄에 고단함과 서러움, 체념 중에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모두 담아낸 것이 아닐까(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상위의 공감은 복잡한 인간 상태에 대한 이해와 시도이다.  



그러니 “우리 oo가 많이 슬프구나”가 제대로 공감의 기능을 하려면 육아서적은 독자에게, 아이의 발달 단계 중 언제 즈음부터 양가감정이 생겨나는지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어른의 믹스 앤 매치 감정의 세계로 빨리 들어가며, 어른이라도 정서적으로 덜 자란 사람들은 한 가지 감정에 충실한 반영과 공감을 오래 받아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이고 말이다. 

 

 “엄마, 내 마음 읽으려고 하지 마. 그리고 지금 그거 맞지도 않거든?”

 

어느 날 아이는 정직한 반영을 시도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직한 반영과 공감으로 충분한 위로를 받던 아이가 자랐다. 이제부터 해야 하는 시도는 세련되고 정교한 상위의 공감이며 이런 공감은 기술을 넘어선 진심의 영역이다. 인간이란 본래 복잡한 존재라서 아무도 그 마음을 다 알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시도 때문에 위로받는 공감, 상위의 공감이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시도다. 

 


 

어울리지 않는 미스 매치도 때론 멋있다.


 

'믹스 앤 매치'도 멋있지만 때론 어울리지 않게 튕겨 나온 '미스 매치(miss match)'도 멋있다. 비극 중 감독의 연출로 구성된 절묘한 농담 한마디는 관객들이 슬픔 이면에 숨겨진 희망을 만나게 한다. 제 안의 희망에 접촉할 수 없던 관객이 ‘거기서 농담이 왜 나와’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카타르시스의 눈물 한 방울을 흘릴 수 있는 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인간의 모순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생 간지대회>의 어린 예술가들도 처음에는 기본적인 톤과 조합을 외우고 익혔겠지. 초보 엄마의 정직한 반영과 공감처럼 말이다. 패션의 기본기를 갈고 닦은 후에야 자기만의 '믹스 앤 매치'에 대한 확신과 자유를 즐겼으리라.  

 

“저건 좀 과하다. 욕심부렸네.”

 

덕분에 나 역시 한껏 들뜬 시청자가 되어 그들의 과한 욕심까지도 간지라고 여기며 즐길 수 있었다. ‘상위의 멋과 상위의 공감이 서로 통한다’를 사유하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면서 말이다. 옷 잘 입는 사람들은 나름의 믹스 앤 매치를 즐긴다지?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도 그래. 감정의 믹스 앤 매치를 헤아리려고 노력하지. 어른의 감정은 웃기면서도 슬프고, 난리 부르스거든. 그게 또 멋이니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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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28 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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