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림
[The Psychology Times=이효림 ]
그날의 진실 : 38명의 목격자들
1964년 3월, 뉴욕타임즈에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가 올라온다. 기사의 제목은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기사는 2주 전 발생했던 끔찍한 살인사건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1964년 3월 13일,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약 35분간 무려 3번에 걸쳐 칼에 찔려 비명을 지르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윈스턴 모즐리라는 한 남성으로 밝혀졌는데,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골라 죽여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기사가 담고 있는 내용은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제노비스가 살해되던 현장에 있었던 38명의 목격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믿을 수 없게도 기사는 당시 제노비스가 살해되던 곳에는 38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이 중 그 누구도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제노비스를 보고도 구조는커녕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달했다.
해당 보도는 뉴욕 전역을 들썩이게 했고, 사람들은 방관자들의 기이한 행태를 무자비하게 비판했다. 이후 해당 사건은 ‘제노비스 신드롬’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키며,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한 ‘차가운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까? : 방관자 효과
제노비스 신드롬, 일명 방관자 효과란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도와주지 않고 상황을 방관하게 된다는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 물론 2007년 한 논문을 통해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다소 과장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으나, 제노비스 살인사건은 여전히 우리에게 방관자 효과를 설명하는 유의미한 사례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방관자 효과의 존재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던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비브 라텐은 학생들이 모여 토론하는 방에서 한 학생이 발작을 일으켰을 때, 다른 학생들이 도움을 주는지에 관한 사회 실험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방에 한 사람만 있었을 때는 85%의 참가자가 도움을 제공한 반면, 5명이 있었을 때는 31%에 불과했다. 즉, 혼자 있을 때 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개인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존 달리와 비브 라텐은 이러한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방관자 효과의 발생원인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다원적 무지’로, 다른 사람들이 개입하지 않는 것을 보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책임감 분산’을 들었는데, 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을 주도했던 두 사람은 다원적 무지와 책임감 분산에 의한 방관자 효과가 이기적인 소수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했다. 평소 남을 잘 돕던 평범한 사람들도, 위와 같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는 상황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 경우, 불특정 다수를 향해 도움을 외치기보다는 특정한 사람을 지칭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면, “도와주세요!” 대신, “노란색 셔츠를 입고 있는 분,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지목할수록 사람들은 상대방이 절실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침묵을 깬다는 것은
2022년 5월 11일, 서울 구로구의 길가에서 묻지마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의 피해자는 60대의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면식도 없는 한 남성에 의해 잔인하게 폭행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사건 현장을 비춘 CCTV에는 그날의 폭행 장면과 함께, 쓰러진 피해자를 그냥 지나친 50여명의 시민들이 담겨있었다. 약 15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극적으로 신고 되었으나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만약 그의 곁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라도 해당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빠르게 신고했다면 어땠을까?
방관자 효과의 사례는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무차별 폭행으로 한 골목에 쓰러진 건설노동자를 지나친 50명의 시민들, 양부모의 욕설과 아이의 울음소리가 자주 들렸음에도 관여하거나 말리지 않은 이웃 주민들, 근절되지 않는 체육계의 폭력 사건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학교폭력 피해자들까지. 만약 단 한 명이라도 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이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을까?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 대해 방관한 사람들을 하나같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괜히 끼고 싶지 않았어요. 저한테 피해가 올 수도 있잖아요.”, “제가 아니라도 도움을 줄 사람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꼭 제가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침묵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비극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현대 사회는 비정하다. 지나치게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이기주의로 변질되고 있으며, 소통은 줄어들고 사회는 단절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침묵을 유지하게 했다..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외침이 아닌,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날갯짓을 하는 작은 나비가 될 것인가.
우리는 이 긴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불합리 한 것에는 먼저 나서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저 상황을 지켜보며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 책임을 껴안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작은 행동이, 용기 있는 목소리로 시끄러워질 사회의 첫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니까.
참고문헌
캐서린 샌더슨. 박준혁 옮김. (2021). <방관자 효과 : 당신이 침묵의 방관자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나비 효과>. 쌤앤파커스
로저 R. 호크. 유연옥 옮김. (2001). <심리학을 변화시킨 40가지 연구>. 학지사. 444-456.
양유창. (2018). <영화 ‘목격자’와 제노비스 신드롬>. 매경프리미엄.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8/08/23298/
박민식. (2022). <피투성이로 죽어가도 모른 체... 수십 명 행인들은 왜 지나쳤을까>.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52017410002353?did=NA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anny8978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