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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효림 ]



자유를 버린 사람들 




우리는 세계사를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로 정의한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얻기 위한 시민혁명, 노예가 아닌 한 인격체로서 대우받기 위한 노예해방운동, 투표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한 참정권 운동과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화 운동까지. 역사 속 많은 사람들은 무수한 노력 끝에 ‘자유’를 얻었고, 이것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여기. 자유를 버린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초, 근대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도래한 ‘자유’의 시대에 역행하는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공동체 단위에서의 완전한 통합을 지향하며 개인의 개성을 지우고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국가 권력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전체주의’라 불리는 이 정치사상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 히틀러의 나치당,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의 형태로 진화되었고,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잔인한 역사로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비이성적인 국가 형태를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 통제를 바탕으로 한 선전 등이 존재했지만, 전체주의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힘을 키웠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왜, 오랜 투쟁의 역사를 통해 얻게 된 자유를 스스로 버리고 권력에 스스로 복종한 것일까?

 

해당 질문의 답을 우리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대표적인 사회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나치즘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한다. 특히 그는 독일인들이 나치즘에 빠진 원인에 대한 연구로부터 자유를 포기하고 도망가려는 근대 사회 인류의 경향성에 대해 분석한다.




자유, 그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가져온 비극 



근대 자본주의에 이르기 전, 우리가 흔히 암흑의 시대라 부르는 중세 시대가 있었다. 엄격한 봉건제와 교회 중심의 중세 시대에서는 독자적 개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에 따라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였으며, 종교를 근거로 통합된 공동체의 일부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화하였고,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를 통하지 않고 신자와 신이 직접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중세 세계관의 무너짐과 동시에, 개인의 자유가 신장한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근대 자본주의 시대 아래에서 원하는 만큼 일을 해,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을 직접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제공된 자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진정한 근대적 의미로서의 개인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중세 사회 당시 확실한 체제의 일부로서 얻을 수 있었던 소속감이나 안정감이 사라지게 되었다. 자유로워진 대신 사회로부터 쉽게 소외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자리하게 된 노동자들은 노동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노동에 종속되어 제대로 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게 된다. 그저 공장의 한 부품으로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와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해지면서, 그들이 느끼는 불안, 무력감 그리고 소외감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

 

이러한 불안정 환경 속에서 전체주의가 등장한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일 나치즘 그리고 일본 천황제 파시즘까지. 이들은 당시 중산계층들이 가지고 있던 상실, 고립, 공포 등의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며, 근거 없는 민족적 우월감을 제공해 국민들로 하여금 전체주의 파시스트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그들의 선동적 리더십과 강력한 권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된 새로운 질서와 비전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빠르게 자리 잡았고, 결국 그들은 스스로 독재 권력을 지지하고 신성화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결국 자유가 주는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선택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유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지독한 인간소외와 사라진 소속감이 남았다. 전체주의와 같은 비극적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자유가 주는 뼈아픈 대가를 극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이를 위한 방법으로 ‘적극적 자유의 실현’을 제시했다. 적극적 자유란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의 삶을 사는 것, 혹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자아정체성을 바로 잡는 것을 뜻한다. 프롬은 인류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는 쟁취했지만,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무엇으로의 자유’는 수용하지 못했다며,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해야 기존의 자유가 주던 소외와 고독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소외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두 번째는 인간이 자기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 

우리가 겪는 소외는 단순히 집단이나 조직에서의 소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를 따를 것을 요구받거나, 비도덕적인 원칙임에도 억지로 복종하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 이 모든 것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소외일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남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회 다수의 생각이나 의견에 무작정 동의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과 의견을 끊임없이 묻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 확립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인지하는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진짜’ 자유로워진다.

 

지금 당신은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혹시 소외로 인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지는 않은가.

나에 대해 알고 정의하는 것이 ‘진짜’ 자유의 첫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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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에리히 프롬. 김석희 옮김. (2020).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박한규. (2008). 열광의 정치 :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대한정치학회. 15(3). 12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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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2-30 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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