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시골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차 시간을 예측하기 힘든 일이 생겼다. 저녁 6시 반차는 이미 매진이었고, 1시간 단위로 있는 기차가 7시 29분 차부터는 예약이 가능했지만 일정이 더 늦게 끝날 것 같아서 예약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일정이 일찍 끝났고 7시 24분에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7시 29분 차를 예약하려는데 좌석은 이미 매진이었고 코로나 19로 인해 입석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뒤에 있던 기차표를 샀다. 그리고 일행에게는 이러한 사정으로 8시 표를 샀으니 우선 7시 기차를 타자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계속 운전을 하고 있던 용 거사가 내게 왜 기차 예약을 해 놓지 않았느냐고 다그친 것이다. 일정이 일찍 끝날 것 같지 않아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상황 때문에 7시 차는 못 탈 줄 았다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그랬더니 용 거사는 내게
"아니, 지금 그렇게 변명하는 게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 5분 연착된 7시 29분 차가 도착했다. 그리고 용 거사는 어떻게 갈 거냐며 기차를 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기차 창문 너머에 보이는 빈자리들을 가리키며
"저렇게 빈자리가 많은데.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면서 가면 되지."
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어찌 됐든 우리 셋은 기차를 탔다. 그리고 빈자리에 각각 찢어져서 앉았다. 다행히 역무원이 우리가 탔던 칸을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 자리 주인이 올지 몰라서 앉아 있으면서 불안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역무원 분에게 말했다.
"저, 죄송한데. 저희가 8시 차표를 샀는데요.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겨서 7시 기차를 탔어요. 혹시 자리가 취소되는 좌석이 있으면 차표를 바꿀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역무원께서
"주말이라 좌석은 없을 거예요. 이 표는 취소하면 수수료가 나오고…"
급한 일이 생겼는지 곧 해결해 주겠다 말씀하시고는 옆칸으로 이동하셨다. 그리고 잠시 후
"취소하고, 입석으로 다시 끊어 드릴게요. 4호차가 카페칸이니까 거기 앉아서 가시면 돼요."
"앗. 네! 감사합니다!!"
다행히 새마을호였던 8시 차에서 무궁화호 입석으로 바뀌면서 차비를 아낄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카페 칸으로 이동해 자리 주인이 나타날 염려가 없는 상태에서 마음 편히 천안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지하철 좌석처럼 되어 있는 카페 칸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나는 글을 쓰겠노라 하고 노트북을 용 거사에게 받아서 오는데, 다행히 화가 났던 용 거사의 마음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며 오늘 용 거사가 내게 화를 내고, 기차를 탄 이후에 내가 일을 해결한 상황 그리고 용 거사의 마음이 풀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떠올려본다. 사실 용 거사와 둘이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 용 거사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과 결정을 하고 그에 대해 내가 나의 의견을 얘기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다. 그럴 때 용 거사가 내게 많이 했던 말이 있는데,
❝
내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가 다 있어요.
맞다. 그 결정이나 선택 자체만 봤을 때 나는 용 거사가 그 선택이나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숨겨져 있는 용 거사만의 의사결정 과정을 알 수가 없고 그 결정만 두고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훈수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훈수 두는 것을 용 거사는 싫어한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듯하다는 거. 우리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내가 무언가를 할 때 표면적인 모습만 보고 엄마는 내게 이래라저래라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 저렇게 하면 어떻겠냐 의견을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말해왔다.
몇 주 전부터 각자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과 새벽에 그룹 통화를 하는데, 혼자 고군분투하며 사업을 하는 남동생이 어떤 고민이나 그에 대한 결정을 얘기하면 여동생과 나는 거기에 대해 '네가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하고 온갖 훈수를 두기 바쁘다.
오늘 용 거사와의 일을 겪으면서 엄마, 남동생과의 관계까지 돌아보게 된 것의 중심에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그래. 모두가 다 어떤 것을 결정하고 선택할 때는 이유가 있어.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지. 그 결정으로 인해 나 혼자만 영향을 받을 때는 상관없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결정이나 선택일 때 오늘 내가 용 거사와 부딪히고 서로 화를 내고 마음 상하는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
소통
❞
'아… 거기에 소통이 필요한 거구나.'
소통이 필요한 거였다. 내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가에 대해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떤 상황에 있어 늘 습관처럼 내 마음대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해 버린다. 그렇게 번개처럼 흘러가는 생각을 멈추고 '왜 그랬을까?'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