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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신치 ]


몇 해 전 여름의 시작, 지인 포도밭에 일손이 필요해 아침 8시부터 두 시간, 오후에 세 시간 정도 일을 하게 되었다.


농사의 '농'자도 잘 모르는 내가 농사를 경험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뿐이다. 대학교 1학년 방학 때 '농촌 활동'에 참여한 것. 그때는 신입생 때라 친구들이랑 친한 선배들이랑 엠티 하는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여름 뙤약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담배 잎을 따다가도, 동네 어르신들이 주시는 '참' 먹는 재미에 쏙 빠져 예정되었던 열흘이 금방 지나갔다. 이때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농사의 추억이다. 뭐 어쨌든, 농사와는 전혀 친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던 나는 먹는 방법만 알았지, 내 입에 들어오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배속까지 들어오게 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져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6월 초에 포도밭에 가게 된 나는 당연히 '잘 익은 포도를 따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포도밭이라고 도착했더니 내게 익숙한 보랏빛 포도는 보이지 않고 온통 초록색으로만 가득하다.


"자, 여기로 모두 모여 보세요~!"


포도밭 주인이 나눠주신 가위를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는 나를 비롯해 포도밭에 그날의 일꾼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오늘은 세 가지만 해 주시면 됩니다. 포도 줄기들을 꼬이게 만드는 넝쿨손들을 잘라주세요. 그리고 포도 잎사귀와 같이 자란 곁가지들을 쳐 주세요. 마지막으로 포도송이에 송이가 하나 더 붙어 있는 어깨 송이들을 자르면 됩니다.


포도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기 같은 상태다. 포도밭 주인분의 말씀을 따라 정해진 양의 햇빛, 바람, 흙의 양분 등을 반드시 자라야 하는 포도로 갈 수 있게, 양분을 빼앗는(?) 아이들을 걸러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밭농사나 논농사의 '한 이랑'처럼 포도나무도 하나의 '이랑' 단위로 줄을 지어 있었다. 한 이랑의 양쪽에 한 명씩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가지치기를 하는데, 다행히 내 앞 이랑에서 포도밭을 일구는 포도밭 주인이 작업을 하고 계셨다. 작업한 지 이십여분 정도 지났을까? 뒤편에 있던 다른 분이 다시 포도밭 주인에게 물었다.


"포도송이에 어깨 송이가 있는데 원래 송이랑 어깨 송이 크기가 비슷하면 둘 다 놔둬야 해요?"

"아, 그럴 때는 둘 중에 더 크고 건강한 송이를 놔두고 다른 송이를 자르세요. 작년에는 아까워서 둘 다 놔뒀는데, 그랬더니 둘 다 품질이 안 좋아져서 상품성도 떨어지고 맛도 없더라고요"



포도잎, 포도송이, 곁가지, 넝쿨 등 오밀조밀하게 꽉 채우고 있어 틈이 안 보이던 포도나무에서 잘 자라야 하는 다른 줄기들을 꽉 붙잡고 있던 넝쿨들과 작은 새순부터 포도잎보다 훨씬 커져버린 곁가지들까지 모두 쳐 내니 포도나무 줄기 곳곳에 여유가 생겼다. 내리쬐는 햇빛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바람이 통과할 틈도 생기고, 남은 생명들이 흡수할 수 있는 물과 영양소의 양도 공유할 대상이 줄어든 덕분에 훨씬 늘어났다. 




얼마 전부터 일하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솔로 생활 8년 만에 나타난 연인과 보내고 있다. 연인이 내 의사를 묻지 않고 거의 매일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연인이 오지 못하는 날에는 꼭 친구들과 만나는 일이 생기거나 일하는 곳에서 늦게까지 있어야만 하는 행사가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져 버린 이런 상황을 처음 맞이했을 때 내 시간을 빼앗아 가는 연인, 지인들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이 시간이 즐겁기도 하지만, 얼른 집에 가서 혼자 있고 싶어.'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몹시 피곤했다. 




일주일에 세 번 있는 명상 수업 시간, 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복잡한 생각들을 비우고 나니 현재의 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목말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과 욕심을 일정 기간 놓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미련과 '해야 하는 일을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버리자,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즐거움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 느껴보지 못한 '함께 있는 기쁨'이 나를 찾아왔고, 과거의 경험에 머물러 있거나 미래에 대한 갈망과 기대에만 가리어져 전혀 보이지 않고 즐기지 못했던 '지금'을 발견했다.


버리고 비우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을 얻었다. 버린 만큼 채워지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버린 것보다 더 많이 채워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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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4-20 19:54:40
  • 수정 2023-04-20 19: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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