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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신치 ]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서른 즈음에>, 김광석



이 노래의 가사를 온전히 음미할 수 있는 나이 서른이 되었다. 서른 살 생일이다. 이십 대의 어느 날에는 빨리 서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왠지 서른이 되면 삶의 방향이라는 것도 정해지고, '안정'이라는 테두리 속에 살고 있을 것 같았다.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명함도 바뀌어 여자 서른에 맞이할 수 있는 커리어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열심히 고객을 만들고, 돈을 모아 5천만 원이 모이면 항공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영업활동을 하면서 고객을 만드는 것도, 돈을 모으는 것도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영업과 잘 맞는 사람이 아니었고, 돈을 잘 모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술과 사람을 너무 좋아했으며, 매달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에 숨이 막혀 힘들지라도, 오늘은 사람을 만나 술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진짜 사람이 좋고 술자리가 좋아서 그랬는지  스스로도 견디기 힘겨운 아주 두꺼운 가면을 쓰고 다니는 나 자신을 술에 취하면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신 건지. 그나마 겨우 벌던 돈은 각종 유흥비와 택시비 그리고 영업비로 모두 지출하고, 마이너스 폭은 점점 커져만 갔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꾸었던 '꿈'과는 점점 멀어졌고 '현실'이란 녀석과 타협하고 안주하고 있었다.


스무 살에는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서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명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또 스무 살에는 '도전'이라 불릴 수 있는 행동과 선택들이 서른에는 '방황'이 되었다. 20대에 실험하고 도전하며 즐겁게 사는 이들을 보며 '부럽다'라고 생각했지만, 서른이 되니 '저 때 나는 뭐했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3  대학입시를 앞두고 첫사랑에게 삐삐 음성메시지로 이별통보를 받았던 때 앞으로 내 생에 이보다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만큼이나 아프고 괴로워 방 한 구석에서 무릎을 두 팔로 감싸고 앉아 고개를 처박고 엉엉 울었다. 그렇게 서른까지 가는 10년의 시간 동안 젊은 베르테르가 알베르트에게 얘기했던 한 소녀의 심연이 내게도 여러 번 찾아왔다.



스물일곱 살부터 현실에 대한 괴로움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양분 삼아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아홉부터는 인생에 있어서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방황의 씨앗이 마치 꽁꽁 얼어붙고, 영양분도 전혀 없는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어느 이름 모를 강인한 풀 한 포기처럼 싹트기 시작했다. 그 어떤 잡초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으로 싹트고 있다. 이렇게 나의 서른은 내가 꿈꾸었던 온실 속 화초가 아닌 돌무지의 이름 모를 잡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연에 들어서면 어떤 전망이나 위안이 없는 사방이 캄캄한 어둠에 둘러싸여 모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다. 


베르테르의 말처럼 인간 본성이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 결국 인간에게 가능한 선택이란 죽음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소녀도, 베르테르도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하지만 서른이 될 때까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이 심연은 한 번 왔다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님을,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베르테르가 선택한 '죽음'이란 방식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찾아 올 그 순간들에서 조금 더 현명하고 덜 아프게 벗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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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10-02 09:42:14
  • 수정 2024-10-02 09: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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