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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좌절한 아이를 다시 일으키는 방법 - 공감보다는 실패 경험이 때로는 더 효과적이다.
  • 기사등록 2023-02-09 0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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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페르세우스 ]


어제저녁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분위기가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1호가 샤부샤부 육수에 넣은 야채처럼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수학 때문이었습니다.

 

1학기 수학 복습을 위해 틈틈이 풀고 있던 심화 문제 중에 골치깨나 썩이는 문제가 하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다 하다 안 되어서 좌절감까지 느끼는 상황이 이른 것이죠.




일단 제가 무슨 문제인가 싶어서 문제집을 살펴보았고 후다닥 풀어서 2호에게는 알려주었습니다. 공대 나온 아빠니까 이 정도는 해야겠죠. 1호는 계속 속이 상했는지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ㅇㅇ가 속상했구나~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 풀리면 당연히 속상하지~ 원래 이 문제집 자체가 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만 있는 거잖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니까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라고 말해주며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어도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거기에 다른 친구들은 벌써 중학교 수학을 배우는 친구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자기는 너무 수학을 못하는 것 같다고 속상해하자 어쩔 수 없이 제 만능 치트키를 꺼내 들었습니다.




저는 사실 고등학교를 2등으로 입학했습니다. 동문회에서 주는 장학금까지 50만 원을 받고 입학을 했죠(1등은 100만 원입니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우쭐함으로 자만심에 사로잡혀 1학년 1학기 공부를 등한시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2학기 첫 번째 전국 모의고사에서 그 대가를 처절하게 치르게 되었습니다. 수리탐구영역 I(수학)에서 8점을 받고 만 것입니다. 한 자릿수 맞습니다. 그때는 수탐 1과목의 만점이 80점이었고 2, 3, 4점짜리 문제가 있었으니 총 30문제 중에서 3~4문제 밖에 못 맞춘 것이죠.

 

정말 놀라운 점은 그렇게 공부를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성적표를 보면서 덤덤하기보다는 엄청난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뻔뻔했죠. 제가 이 정도입니다. 그때 받았던 성적표가 지금 찾아보면 없는데 그 이유는 제가 갈기갈기 찢어버렸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때부터 각성을 하고 미친 듯이 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좌고우면 하던 철없는 시절은 결국 사필귀정이 되었고 분기탱천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절치부심, 와신상담하겠다는 마음으로 심기일전하여 권토중래하게 된 것이죠(뜻 다 알고 쓰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고2 첫 번째 전국 모의고사 때 80점 만점을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그런데 이 성적표도 없네요. 이 성적표는 절대로 안 찢었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간 건지...).


  

1호에게 이 이야기를 열심히 해주자 그 이야기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기분이 좀 풀리는 모양입니다. 수학 때문에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아빠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이 실패담은 제 인생을 지금까지 꾸려오는데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울 때도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네요.



때로는 아이의 좌절에는 공감보다는 실패담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행히 1호는 다시 기운을 차렸고 계속 어렵게 느끼고 있던 문제를 저와 함께 풀면서 이해도 하고 멘탈도 회복했습니다. 진짜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함께 풀어보시죠!! ^^

제가 가진 자녀교육 철학 중의 하나는 공부를 스트레스받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교육 전문가이자 작가이신 임작가께서 강조하신 공부 정서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죠.

 

그렇게 신경을 쓰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장 살폈던 과목이 국어와 역사였는데 갑자기 수학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을 보니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럴 때 잘 보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학년 때까지는 아이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면서 수학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설명을 해주는 저도 내공이 쌓였고 듣는 아이도 습관이 자리가 잡혀서 서로 호흡이 잘 맞아졌습니다.

 

현재 학원을 가지 않고 현행으로 밀고 있는 제 수학교육 방식이 지금은 저희 동네에서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빛을 발할 것이라 믿고 계속 가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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