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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해연 ]




장순자 백반집 vs 윤율혜 백반집, 배가 고픈 당신의 선택은?!


 


온종일 굶어 배가 주린 당신의 앞에, 각각 이름을 내건 장순자 백반집과 윤율혜 백반집이 있다. 당신은 어떤 식당에 들어갈 것인가? 예상하건대 다수의 발걸음이 전자의 백반집으로 향했을 것이다. 필자는 지인에게 ‘장순자 ‘할머니’ 집이 더 진득할 것 같다’라는 감상도 들을 수 있었다. 음식의 맛과 서비스, 주인의 내공 등 식당과 주인에 대한 여타의 정보들은 주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짧은 순간 ‘이름’ 하나로 판단을 끝낸 것이다. 이를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고려해야 할 사항과 연관이 없는 요인이지만 그것이 유창해 보이는 경우, 그 요인에 영향을 받아 왜곡된 판단을 내리곤 한다. 그 대표적인 요인이 바로 앞서 제시한 ‘이름’이다. 그렇다면 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이름의 유창함이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름은 사람의 인상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1993년에 이루어진 카소프 박사의 연구 결과 우리는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의 국적과 성별, 연령대 등을 유추하며 이러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심리 분야에서 인상 형성과 이름에 관해 선행되었던 연구들에 의하면, 이름은 실제로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상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앞서서 이름의 ‘유창함’이 우리의 사고와 판단에 영향을 미침을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름에 관한 ‘유창함’이란 무엇일까. 이름 중에는 발음하기 쉬우며 흔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민수, 미영, 순자 등이다. 반면 발음이 어려우며 흔치 않은 이름도 있다. 율혜, 창혁, 근욱 등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이름들은 정보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 수준에서 차이를 보인다. 발음하기 쉽고 흔한 이름들은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쉽게 처리되기 때문에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이 높다. 반대로 발음하기 어렵고 흔치 않은 이름들은 정보 처리 과정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처리 유창성이 낮다. 이러한 속성은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정보와는 별개로 이름 자체가 갖는 속성이다.

 

 




유창함’, 그 영향력에 대하여




이름의 유창함 정도가 우리의 사고 및 판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행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호주에 있는 멜버른 대학(the University of Melbourne)의 심리학 교수인 사이먼 라함과 그 동료들은 2012년 연구에서 사람들은 발음하기 쉬운 이름일수록 더 큰 호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하였다. 유창성이 높은 이름들은 앞서 말했듯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쉽게 처리된다. 이 쉬움, 수월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친숙한 정보일수록 처리가 수월하다’라는 내재이론을 사용해 대상이 친숙하다고 판단하고, 이 판단은 자연스레 대상에 대한 호감까지 증가시킨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대상에 대한 익숙함, 친밀감, 호감 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 이름의 유창성이 우리의 지각 혹은 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인 최초의 연구이다. 처리 유창성은 이름의 뜻과 배경 등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정보와는 달리 정보 처리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나 문화의 차이에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효과이다. 

 

이름의 유창성 효과는 비단 사람의 이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의 이름이 우리의 가치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밝힌 연구가 있다. 연구자들은 플린크스, 탠리와 같이 발음이 쉬운 회사 이름과 율림니어스, 쾌온과 같이 발음이 어려운 회사 이름을 만들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발음이 쉬운 회사(유창한)의 주식은 높이 평가했고 발음이 어려운 회사 (유창하지 않은)의 주식은 낮게 평가했다. 회사 이름을 제외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후 연구자들은 실제 주식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냈다. 뉴욕 증권 거래소의 주가 변동을 추적한 결과, 발음이 쉬운 이름의 주식이 발음이 어려운 이름의 주식보다 성과가 더 좋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던 것이다. 발음과 주식의 성공과 실패. 세 가지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인과관계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름의 발음은 사람들의 가치 평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곧 이름의 유창성 효과가 우리의 지각과 사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고, 다양한 문화권에 걸쳐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임을 시사한다.

 

처리 유창성 효과의 영향을 고려하고 활용한 사례는 우리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이 영화를 본다면 (두 영화 모두 안 봤다는 가정하에) ‘추격자’와 ‘밤의 열기 속으로’, 두 가지 중 어떤 영화를 선택할 것인가? 필자의 지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 결과 대부분이 전자의 영화를 선택했다. 이쯤에서 비밀 한 가지를 밝히자면 ‘밤의 열기 속으로’는 할리우드 형사물로, 2008년에 개봉한 ‘추격자’의 원제이다. 원제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낯설어 고민하던 제작사는 입에 쉽게 붙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영화 제목을 ‘추격자’로 수정했고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의 경우 물성을 띠지 않는 경험재 상품이다. 직접적인 소비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상품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어 선택에 더욱 어려움이 따른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 라브루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소비자는 영화의 핵심 내용 및 이미지가 잘 응축된 제목의 의미를 쉽게 분석할 수 있을 때, 간접적 경험을 보다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상품에 대한 모호성이나 불확실성을 덜 느껴 선호도가 올라가게 된다. 반면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영화 제목의 의미를 쉽게 해석할 수 없을 때, 소비자는 이러한 과정을 유쾌하게 지각하기 어렵고 의사결정에 대한 확신 또한 갖기 어렵다. 즉 영화의 제목이 소비자에게 쉽고 확실하게 와닿는 경우를 유창성이 높은 경우라 볼 수 있을 것인데, 이럴 때 소비자는 영화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유창함은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이렇듯 유창함은 우리의 정보 처리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유창함의 정도를 가늠해 인지적 판단을 내리며,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체계적으로 검증,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창함이 우리에게 약이 된다고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건, 유창함으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름의 유창성 정도에 따라 직업 추론을 달리함을 증명한 실험이 있다. 직업은 비교적 더 ‘따뜻함’이 요구되는 직업(사회복지사, 요리사 등)과 비교적 더 ‘유능함’ (냉정함, 비판적임)이 요구되는 직업(경찰, 검사 등)으로 나누었다. 사람들은 발음이 쉽고 흔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따뜻함이 요구되는 직업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반면, 발음이 어렵고 흔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유능함이 요구되는 직업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후 진행된 실험을 통해 직업의 사회적 인식과 이름의 유창성 수준 간의 적합성 여부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 및 태도 또한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 구체적으로 고용주의 입장이 된 실험 참가자들은 유능한 속성이 요구된다고 여겨지는 직업에서 남성의 것이라 생각되는 이름을 더 선호했고 따뜻한 속성이 요구된다고 여겨지는 직업에서는 여성의 것이라 생각되는 이름을 더 선호했다. 또 그에 맞추어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름의 유창성 수준과 그에 따른 판단이 그저 추론에 그치지 않고, 태도 및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익숙하고 쉬운 게 최선이라는 잘못된 판단 아래, 상당히 자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름을 수없이 소개하고 받으며 살아간다. 몇 번이고 불리며 부른다. 이름은 이토록 중요하다.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이름이며 동시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측면에서조차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선택의 길에 있을 때 이 영향력을 묵과한 채 ‘익숙함’ 혹은 ‘쉬움’만을 활용하는 건, 적당히 정답과 비슷해 보이는 걸 고르는 노력 없는 태도는 아닐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택의 과정을 인식하고 의식하며 때로는 의심해 보는 태도. 그것이 혹시 모를 잘못된 판단을 예방할 수 있는 첫 번째 발판이 아닐까.



 


참고문헌

1. 안우경, (2023), 『씽킹 101 :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 흐름출판 

2. 김정운, 이루리, 고민정, (2020), 『영화 제목의 처리 유창성이 상품 태도에 미치는 영향: 상상적 유창성의 매개효과를 중심으

   로』, 상품학연구, 제38권 제1호, 183쪽, 187쪽 

3. 김주미, (2012), 『사람 이름의 처리 유창성이 인상 형성에 미치는 영향』,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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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21 14: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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