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The Psychology Times=이하영]
‘기쁨은 잠깐이고, 이내 허탈함에 빠집니다. 마치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죠’
정상에 선 느낌을 묻는 질문에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산의 정상에 올랐지만 기쁨과 뿌듯함보다는 순식간에 허탈함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 엄홍길 대장 등과 같이 산악인, 체육인을 비롯하여 많은 현대인들은 이러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pixabay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급격한 감정의 변화는 왜 일어나는 걸까? 그 해답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상승 정지 증후군’에 있다. ‘상승 정지 증후군’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를 경험한 사람보다, 오히려 목표를 달성한 이들에게 찾아오는 무기력함, 우울감 등의 증상을 뜻한다. 눈앞에 놓인 계단을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끝내 목표 지점에 도달했지만 늘 오르던 계단이 사라지자 오히려 허탈함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으로, 정상에 오른 이후에 사라져버린 삶의 방향성에 깊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상승 정지 증후군의 원인
상승 정지 증후군은 명확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다양한 상황과 감정이 뒤섞여 발생하는 복합적인 심리 현상이라고 말한다.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는 은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발레리나 김주원에 대해 ‘김주원이 더는 올라갈 목표가 없다고 생각할 때 허무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상승 정지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경북대학교 김춘경 교수 등을 비롯하여 5명의 공동 집필자가 집필한 상담학 사전에 의하면, 누군가는 높은 직위에서 만족스러운 직업적 삶을 영위하다 예상치 못 하게 다른 부서, 직장으로 이동되었을 시에 이 증상을 느낀다고 한다. 승진 등의 지위 상승으로 삶의 만족감을 채워왔던 사람이 새로운 환경 혹은 상승이 아닌 후퇴의 경험을 겪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다. 상승 정지 증후군을 다른 말로 중년기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생애 주기를 참고했을 때 대부분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안정적인 시기를 지나 새로운 인생의 곡선을 만나게 되는 흔한 시기가 중년기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는 육체적, 심리적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을 마주쳤을 때 삶의 허무함을 느끼며 발생한다. 자신이 지금 영위하는 삶과 행하고 있는 일들과 목표가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며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pixabay상승을 향한 강박을 버리기 위해...
이처럼 중년기의 사회적, 개인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상승 정지 증후군은 특정 나이를 넘어 모든 현대인에게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포괄적인 심리적 현상이다. 앞서 엄홍길 대장의 사례가 말해주듯이, 맹목적인 목표 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온갖 열정을 쏟아 어떠한 일을 행했지만 목표에 도달한 순간 사라져버린 상승의 계단에서 비롯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승 정지 증후군과 마주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한 후 상실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와 잠시 쉬어갈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늘 과열된 채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상승만이 정답이라 낙인찍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쉬어가고 때로는 하강하는 것 역시 우리 삶의 큰 교훈을 준다. 왜 가끔은 멈춰야지만 보이는 것들 있다고 말하겠는가. 끊임없는 상승을 갈구하다가 꼭대기에서 추락하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쉼을 가지며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삶이 아닐까?
참고문헌
김춘경. (2016). <상담학 사전>.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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