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경
[The Psychology Times=신선경 ]
글을 시작하기 전에,
성범죄는 다양한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특정 성별이나 나이,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글을 즐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여러 성으로 구성된 사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했을지 모르겠으나, 최근에는 거기에 다양한 제3의성까지 인정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들은 굉장히 큰 이슈들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범죄입니다. 이러한 시류에 따라 성폭력안전실태 조사를 실시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를 중히 여기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료 : 여성가족부 / 동아일보
2019년 실시한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 중 9.6%는 평생에 한 번 이상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통계에 비추어 성범죄 신고율을 추산해보면, 3,588,480건의 신고가 있어야 하나 실제로 2020년 성범죄 신고 횟수는 21,717건에 그칩니다.
자료 : 국가통계포털
물론 표본 집단이 1만 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수치를 정확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차 범위를 가만 하더라도 165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체 범죄를 정확히 추정할 수 없기에 성범죄의 신고율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특히 성범죄의 신고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 저조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요?
성범죄 신고율이 저조한 이유 1) 외적 이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확히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저는 크게 피해자 외적인 이유와 내적인 이유로 구분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선 피해자 외적인 이유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컨대, 신고를 해도 그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괜히 나의 몸이 찍힌 영상이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성적인 범죄를 당했다는 그러한 사실이 내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이 받을 2차 가해를 두려워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실제로 제가 최근 여성 인권을 담당하시는 공익 변호사 한 분과 만남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전히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 절차 내에서 피해자 인권 보호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하셨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증거 자료를 공적인 업무라고 보기 힘든 연락망을 통해 공유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왜 '적극적'으로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조사라는 명목 하에 떠올리기 싫은 그 상황을 여러 차례 진술하도록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과거에 비해 성적 표출이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정숙하지 못하다', '무언가 피해자가 잘못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저급한 문화를 없애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전개되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의 '처벌'과 '재범 방지' 그리고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유흥으로 삼는 이들도 우리 사회에, 우리의 옆에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2) 내적 이유
또한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심리적 의식 역시 그들의 신고율을 낮추는 원인 중 하나 입니다.
그들은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에 대한 적대감이나 분노', '불안과 우울', '가해자에게 다시 범죄를 당할 것 같다는 두려움' 등의 정서적 반응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범죄와 달리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낮은 자아 존중감'의 반응을 보입니다.
즉, 그들은 흔히 이미 자신은 더럽혀졌고 떳떳하지 못한 존재라는 수치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아픔에 공감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구석에 숨어 자신을 정신적으로 학대하곤 합니다. 또한 성범죄가 오랜 기간 지속된 경우 피해자는 자신이 성범죄에 가담했다는데서 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들은 피해자들은 암흑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비롯한 자학행위들은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아 존중감을 낮추고, 피해자들이 다른 사람을 쉬이 믿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와줄 이들에게까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그들이 손을 뻗어 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라며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런 정서적 반응들이 개인의 사고 영역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 피해자들은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됩니다. 예컨대, '성적인 피해를 당한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나, '가해자와의 성관계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성폭행이 아니다'라고 자기위로를 하기도 하며,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을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서와 사고로 인해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침해 당한 성적 권리를 되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대법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피해자들을 보호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고율은 저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사회는 이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사회적으로 피해자들의 신상보호가 절처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신고를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다면 친구 그리고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수사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범죄 피해자 인권 침해 등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법률안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즉, 수사 기록에 성범죄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증거물이 보안처리 되지 않고 기록되어 있거나,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수사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분위기의 전환입니다. 최근 성적인 인식이 변화하면서 다른 범죄에 비해 성범죄 신고율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암수의 비율이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성숙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은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거나 그들의 아픔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해야 한다고 그 누구도 말해도 되지 않을 때까지,
저 역시 노력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성폭력 피해자들의 특징, 비움심리상담센터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용어 재검토, 법률신문(법조광장), 황현호 변호사
성폭력안전실태조사2019, 여성가족부
범죄 통계2020, 경찰청 범죄통계 및 국가통계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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