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다연
[The Psychology Times=진다연 ]
감정은 가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처럼 느껴지곤 한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연인과 싸울 때, 합격을 고대하던 회사의 불합격 통보 문자를 받았을 때, 부하 직원의 실수로 상사에게 혼날 때, 흐르는 눈물을 멈추려 어금니를 꽉 깨물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은 언제 마주쳐도 썩 유쾌하지 않다. 이겨내지 못할 때는 패배감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부정적’이라는 형용사 앞에서 지레 겁먹게 된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정적이라 일컫는 감정들은 사전적 정의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이 절대 아니다. 오르막길을 걷기 위해 내리막길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또한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너무 과할 때는 충분히 비켜갈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가정원칙(As If principle)’에 따르면, 인간은 특정 행동을 함으로써 특정 감정을 유발시킬 수 있다. 즉, 행동함으로써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조절 할 수 있다. 감정의 고삐를 스스로 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문제가 되는 걸까? 감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부정적 감정의 소나기를 홀로 곧이곧대로 맞는 것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 주범이다. 이는 소나기로 그칠 것을 장맛비로 끌고가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모인 빗물을 남에게 끼얹는 것도 명백히 건강치 못한 행동이다. 이렇듯 부정적 감정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양극단적인 예시는 분노와 관련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찰스 스필버거(Charles Spielberger)는 분노 표현 양식을 △분노 억제, △분노 표출, △분노 통제의 세 가지 양상으로 나누었다. 분노를 오로지 자신을 향하게 하여 외부로 발산하지 않는 것을 분노 억제라 하는데, 이런 분노 억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면 우울증, 즉 ‘화병’이 생긴다. 반대로 자신이 아닌 특정 대상에 언어적, 물리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분노 표출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분노의 대상에게 화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상징적 대상에게 분노를 투영하여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분노 표출이 과도하게 되면 분노조절 장애로 이어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양상의 분노 표현은 정서 조절의 실패로 여겨진다.
화를 내서 화가 난다고?
분노를 해소하는 적절한 방법과 관련하여, 심리학자 개개인에 따라 그 의견이 첨예하게 다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로 불리는 지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폭력적인 생각을 억누르기 때문에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분노 해소의 방법으로 이불을 발로 차거나, 노트를 찢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 분노를 안전하게 분출시킴으로써 마음을 정화하는 ‘정화법’을 소개한다. 간접적인 분노표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화를 내는 행동은 도리어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가정 원칙에서 한 단계 나아간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에 따르면. 외부 자극으로 인해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고, 이 변화를 지각하고 나서야 감정이 유발된다. ‘웃으면 행복해집니다.’ 라는 문구를 종종 본 적 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라 생각하면 된다. 쉽게 말해, 제임스는 웃으면 행복해지고, 울면 슬퍼진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화를 내는 행동을 함으로써 분노의 감정이 생성되기 때문에, 분노의 해소를 위해서는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본다.
극명하게 갈리는 두 거장의 이론 중, 어떤 방법이 적절한지는 이후 발표된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뉴햄프셔 대학의 사회학자 머레이 스트라우스(Murray A. Straus)는 소원해진 부부 사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프로이트의 정화법을 채택하였다. 관계 개선의 해결책으로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억압된 분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치료적 공격’을 제시했다. 그러나 치료법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냈다. 언어적으로 분노를 표출하여 분노가 해소되었다면, 그에 비례하여 신체적 공격의 정도는 줄어야 할 것이다. 반면 치료 결과 언어적 공격을 많이 한 부부일수록 신체적 공격도가 증가하는 뚜렷한 경향이 확인되었다.
비슷한 예시로, 캘리포니아 대학의 에브 에베센(Ebbe Ebbesen) 연구팀은 한 기업에 의해 대량 해고를 당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하여, 기업을 향한 직원들의 분노 정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면담 대상자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기업의 시설, 위치 등과 같은 중립적인 질문을, 한쪽은 기업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감정이 어떤지 직접적으로 묻는 질문을 하였다. 이후 동일하게 이뤄진 평가에서, 면담을 통해 분노를 말로 표출한 직원들은 훨씬 더 높은 적대감을 나타내었다. 결국 분노의 표출은 더 큰 분노를 야기하는 것이다.
유교 사회가 낳은 ‘화병’, 치료법도 유교에 있다
우리나라는 화병(火病)이 문화고유장애로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분노를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회다. 오래 이어져 온 유교 사상 아래에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으며, 공동체를 위해 분란을 야기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던 탓이 크다. 이로 인해 남성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남성답지 못하며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여성은 가부장적 문화와 악습으로 인한 억울함을 드러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화병이라 해서 참기만 하는 것, 즉 분노 억제만이 문제는 아니다. 과도한 분노 억제 뿐만 아니라, 옳지 못한 대상을 향한 분노 표출도 화병의 증상에 해당한다. 분노 조절의 문제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유교에서는 분노 조절에 대하여 아주 올바른 해법을 제시한다. 유교에서는 오히려 감정을 억압하거나, 감정 자체가 없는 무정(無情)의 상태를 지양한다. 감정을 드러내지만, 알맞은 방법으로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그 알맞음의 조건은 △감정이 때와 상황에 맞아야 하며, △그 감정의 정도가 적당해야 한다.
이를 참고하여 필자가 생각하는 건강한 분노 조절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가정원칙’을 활용해 우선 안정을 취하자.
: 지금까지 글을 읽으며, ‘난 화날 때 소리치면 속 시원해지고 좋던데?’, 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것도 결국 분노 억제 아닌가?’ 하는 의아함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를 해석함에 있어서, 분노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화가 났을 때, 즉각적으로, 또는 공격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더욱 큰 분노를 유도할 뿐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화가 났을 때 충동적으로 행동에 옮기지 말고, 화가 나지 않은 평온한 상태를 연기함으로써 이성을 먼저 되찾아보자. 이때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고 안정을 취하는 것은, 분노억압이 아닌 분노조절의 과정임을 잊지 말자.
2. 분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 안정을 찾게 되었다 해서 분노했던 이전의 상황을 잊으려고만 하는 등 회피해서는 안 된다. 또는 분노를 무조건 나 홀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돌려서도 안 된다. 이것이 곧 분노 억압이며, 자기 파괴적 성향을 보이게 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나의 분노를 이성적으로 마주 보며, 분노의 대상과 원인을 확실히 하고, 상황에 맞는 분노였는지, 분노의 정도는 적당했는지 판단해보자. 만약 대상이나 상황, 정도가 적절치 못한 분노였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을 갖자.
3. 분노를 알맞은 방식으로 해소하자.
: 남아있는 분노의 잔재를 해결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분노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특정한 분노의 대상이 있다면 차분한 대화를 해볼 수도 있고, 분노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면 앞으로 변화해야 할 부분에 대해 고민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생산적인 방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취미생활과 만남 등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긁어낼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을 직접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결국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분노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아야 한다.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의 저자이자 임상 심리상담가인 충페이충은, 분노를 야생마에 비유한다. 분노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데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분노에 맞설 것이 아니라 동행해야 하며, 그 방향이 도움이 되는 방향이도록, 그렇지 않을 때 즉시 멈출 수 있도록 잘 길들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분노를 무작정 풀어놓고 남들을 다치게 하지도, 분노를 잠재우려 온 몸을 던져 이곳저곳 멍들게 하지도 말자. 감정의 고삐는 결국 본인이 잡고 있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분노와 함께, 기나긴 삶의 여정을 달려 나가는 연습을 해보자.
참고문헌
리처드 와이즈먼. (2012).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경기도 파주시:웅진 지식하우스
성동권. (2022). 유교문화의 학문 대학의 감정과학. BOOKK.
신도현. (2019). 조선이 사랑한 문장. 행성B
충페이충. (2022). 심리학이 분노에 답하다. 미디어숲
이원희 외. (2009). 간호사의 특성분노 및 분노표현이 직무만족, 조직몰입,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 간호행정학회지, 15(4), 540-541
원더풀마인드 [Website]. (2017). URL: https://wonderfulmind.co.kr/4-tips-get-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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