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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민지 ]


pixabay



완벽함 뒤의 불안감, 그 상관관계


당신은 '완벽함'을 선망하고 바라는가? 

질문을 바꾸어 보겠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불안'에게 잠식당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최근, 내 주변에는 불안 증세를 겪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불안의 정도는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고 증상도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두에게 공통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이 비쳐 보이는 듯했다.


이 글은 20대 청춘들의 살벌한 취업 준비 속 그들의 정신적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필자가 직접 관찰자이자 조력자의 시선으로서 바라본 경험을 서술한 글이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망쳐 버린 나날들


나에게는 A라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몹시도 야무지며 머리도 좋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져서 불의 또한 두고 보지 못한다. 다소 불같은 성정을 가지긴 했지만, 정말 멋진 친구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 친구의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해졌다. 다행히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걸핏하면 누군가와 다툼을 벌이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휴학 후 반 년 간의 유학 생활 뒤에 복학을 한 나는 A의 너무나도 달라진 모습을 마주하고서, 몹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성격이 불같은 친구이긴 했으나, 분명 그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었으니까. 영문도 알 수 없는 채로 한동안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가까운 주변 친구들도 몹시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A에게 누군가 좋은 마음에서 우러난 충고나 조언을 해도 듣는 건 그때 뿐, 곧 화를 내거나 트집을 잡으며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오히려 걱정 어린 조언일수록 기분 나빠했으며 무조건 비관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하기도 했다. 때로는 몹시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또 언젠가는 무척 우울해하며 방 안에만 틀어박혀 한동안 나오지 않기도 했다. 


아무도 A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진정한 불안감 해소란 내면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마침내 모든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사정인 즉슨 이렇다. 당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던 A는, 자신과 맞지 않는 이중 전공 때문에 나날이 떨어지는 평점으로 마음고생이 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에 대한 해결은 커녕 불안한 본인의 미래와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 갈 뿐이었고, 그것이 결국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본래 A는 총 평점 4점대를 유지했던 야무진 친구였던 만큼, 완벽주의 기질도 몹시 강했다. 아마도 그랬기에 더더욱,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다가왔던 것이리라.


완벽주의라는 강박, 우울증, 실망감, 자존감 하락, 스트레스 등등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당시 A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그리고 그 근원이 되는 부분은, 본인이 늘 자신하고 꿈꿔오던 파란만장한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드디어 입을 연 A가, 본인을 제외한 모두가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만이 뒤처진 것 같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여기서 증세가 더 심해진다면 A가 마침내 자기 혐오감까지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였다.


나는 A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한 명의 앞선 경험자이자 그녀의 진실된 친구로서, 내 마음이 꼭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내 이야기의 서두는 많은 역사적 인물들, 위인들은 큰일에 앞서 대부분, '불안 장애'를 겪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다음에는, A의 손을 잡고 말해 주었다. 




네가 겪고 있는 그 감정이, 네가 이상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니야. 

나도 겪었고, 많은 사람이 겪었고,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의 누군가도 반드시 겪고 있을 몹시도 보편적인 감정일 뿐이야. 

오히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지나고 보았더니, 내가 삶을 충분히 잘, 열심히 살아왔다는, 더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었더라. 

너는 분명 지금 무척이나 힘들겠지. 그저 버텨내는 것만도 벅차겠지만, 그래주었으면 좋겠다. 

그럼 언젠가는 이날의 고통이 밑거름되어, 네가 바라던 미래에 한 발짝 더 가까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스스로를 깎아 내리고 상처입히며,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곤 하지. 

그런데 내가 보는 너는 말이지, 힘든 상황에서도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하는 대단한 사람이거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주변에 너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돼.  

네 생각보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참 많아. 

그리고 그들은 너를 적극적으로 도울 거야.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내 말을 가만히 듣던 A는 말이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울었고, 그렇게 울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바라보기도 했고, 때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또다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고개를 든 A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마침내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무척이나 후련해진 얼굴을 하고서.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불안감을 길들여라


당신은 완벽할 수 없다. 

아니, 정정하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완벽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현재 겪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글의 주인공인 A가 불안증이 완치되었느냐 묻는다면, '결코 아니'다. 당연하지. 불안에 '완치'란 없으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그것을 내면에 품고 살아간다. 그저 무뎌지고, 건강하게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뿐이다.


만 23세 전후. 아직은 철없던 20대 초반을 벗어나, 차갑고 살벌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스펙을 쌓고, 취업 준비를 하느라 모두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시기. 

나만 지나치게 뒤떨어진 것 같고, 누군가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본인의 자존감을 미친 듯이 깎아내리는, 그런 시기. 

정말 암울한 시기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시린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찌하랴. 이 또한 견뎌내어야지. 견뎌내는 자가 결국, 마지막에 성공이라는 트로피를 거머쥐고, 웃음을 만면에 띄울 것이니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불안이라는 감정은 너무나도 보편적인 감정이다. 나만이 '유별나게' 겪는 감정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으며, 그 누구도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감정이란 무척 섬세하고 깨질 듯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감히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건방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불안증을 겪고 있고 혹여 그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나의 경험담이 그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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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04 10: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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