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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신민 ]



나는 설을 맞이하여 퇴근 이후 저녁 비행기로 본가에 내려갔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수많은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당연히 퇴근길이라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40분 동안 캐리어를 옆에 두고 사람들의 옷깃이 스치거나 밀려서 고단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지치지만, 고생을 감수할 만한 이유가 있다. 엄마가 준비한 된장찌개와 삼겹살이 나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엄마의 된장찌개는 감칠맛이 혀에 감돈다. 흰 두부는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씹힌다. 연두색 애호박은 적당히 씹히는 맛을 낸다. 마지막으로 된장찌개 국물을 밥그릇에 자작거리게 넣으면 구수함과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흰쌀밥과 어울려 적당히 짭조름한 맛을 낸다. 아들이 엄마의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모습은 마치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이상적인 모자지간으로 보인다. 정작 엄마와 나의 관계는 면이 까슬까슬해서 자주 입지 않아 서랍장에 묵힌 니트 같다. 


내가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에 엄마는 종종 독립한 아들을 도와주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에는 두 차례 정도 간호대학 입학을 권유했다. 타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아들을 도와주지 못했다며 사과했으면서 다른 진로를 권유하는 행동은 무슨 마음일까? 다른 날에는 나에게 혼자서도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이직계획을 물어봤다. 독립해서 잘사는 아들이 고마우면서 나의 이직 계획은 왜 물었을까? 문제없이 살고 있으니 이직 계획도 없을 텐데 말이다. 엄마의 사랑은 마치 부드러운 생선살을 먹은 뒤 입에 비린 맛이 남아돌듯이 개운치 못하다.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김장 만들 때 쓰는 큰 고무대야를 식탁 위에 두고 가득 채우라고 재촉한다. 나는 고무대야와 같은 엄마의 마음그릇을 메우고 싶지 않다. 대신 나는 아주 기다란 나무 식탁 맨 가장자리에 앉는다. 식탁은 너무나도 길어서 엄마에게 나는 마치 저 멀리 있는 점으로만 보인다. 한 식탁이지만 서로가 점으로만 보일 정도로 거리를 두어 각자의 마음그릇을 챙기는 게 오래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엄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방식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아들도 자신의 마음그릇을 이 사람 저 사람 앞에 두고 얼른 채우라며 다그쳤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교육했었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활동으로 생활기록부를 알뜰하게 챙겨야 한다며 청소년 활동 관련 센터와 목록들을 내밀었다. 스스로 학생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사라 생각했지만 내 욕심을 쏟아내기 바빴다.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냈다고 자랑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내가 가보지 못했던 상위권 대학 캠퍼스를 아이들에게 대신 밟아보라고 떠밀었던 몽리였을까?


거울 앞에 섰을 때 비친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흰색 도화지처럼 태어나 주 양육자 손에 자라기에 그들이 가진 색이 묻기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그릇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채우려는 욕심이 짙은 남색이라면 나에게는 인디핑크도 칠해졌다.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을 안연히 바라보았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한 상 차려놓기도 하신다. 내 곁에 감도는 따뜻한 파스텔 색감의 인디핑크는 사랑을 표현하는 태도이다. 사회복지사가 된 아들도 언제부터인지 핸드폰 하는 아이들을 안연히 바라봤고, 시험 기간에 고생하는 학생들을 위해 직접 만든 떡꼬치와 쿠키, 핫초코를 내놓기 바빴다. 그들이 남긴 무수히 많은 색상 중 무슨 색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나의 손에 달려있다. 이미 덧칠해진 부모의 색도 내 손에서 움직이는 붓질에 따라 다채로운 빛깔로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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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2-20 10:16:29
  • 수정 2024-09-20 15: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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