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인간이 자기 욕구를 인정하기 시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욕구와 상상의 조합으로 인간은 나아간다.
  • 기사등록 2023-03-22 23:02:12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상담실의 왼쪽 벽에는 나비 그림이 걸려있고 오른쪽 벽에는 로데오에서 볼 수 있는 뿔소의 그림이 걸려있다. 하얗고 노란 삼십 마리의 나비가 창공을 날아다니는 그림은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홀가분한 자유를 느끼게 한다. 반면 크고 맑은 눈으로 보는 이를 응시하고 있는 뿔소는 역동성을 머금은 채 도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작품에 대한 이런 해석은 작가의 의도와는 빗나갈 수도 있는 보는 사람의 투사이다. 투사란 정신분석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자아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욕망이나 동기가 타인에게 귀속화되는 것”(교육학 용어사전, 투사)을 뜻한다. 


무엇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일까? 

제 안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키워진 분노, 죄책감, 수치심, 열등감, 공격성, 욕구와 갈망들. 투사되는 것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들여다보기도 두려워하는 내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용기를 내어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면,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1. 투사되는 것은 자신의 욕구이다. 


 

현실치료의 창시자 글래서 박사(William Glasser, 1925-2013)는 인간에게는 생존, 사랑과 소속, 힘, 자유, 즐거움이라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고 하였다. 현실치료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가 안전하게 생존하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소속하고 싶어 하고,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싶어 하며,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어 하고,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존재다. 다섯까지 기본욕구가 있다는 측면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욕구가 가장 중요한 반면,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의 욕구가 우선적이라 관계의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내용이 그의 설명이다. 


영화 <런치박스(2013)>에서는 정년퇴임을 앞둔 외로운 남자 주인공에게, 남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여자 주인공이 만든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다. 잘못된 배달이지만 도시락은 집밥의 온기를 가장 원했던 사람에게 전달된 셈이다. 도시락과 함께 배달된 인간의 온기를 충분히 채우고 난 후 그는 이전까지는 그냥 지나쳤던 출퇴근 길, 거리에서 판매하는 그림을 보기 시작한다. 기성품으로 그려진 그림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언어 이전의 표현양식인 그림은 인간이 자기 마음을 투사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주인공이 그림을 보며 내뱉는 대사는 사실, 화가의 의도와는 크게 상관없는, 집밥의 기운을 얻은 그가 욕구를 펼쳐나가는 힘의 표현이다. 





2. 욕구는 상상의 기반이 된다.


 

인간이 자기 욕구를 인정하기 시작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과거 속에 살지만, 상실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남자 주인공은 이제는 없는 아내의 자리를 확인하며 현재를 이어 나가기로 선택하였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여자 주인공은 자기가 원하는 미래로 변화의 한 걸음을 내디뎠다. 적극적인 회피를 마무리한 것이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피하는 행동은 생각보다 강한 힘으로 그 방향 역시 욕구를 향해 움직인다. 남자 주인공이 가장 원했던 것이 사랑과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던 것처럼, 여자 주인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집 밖의 삶이 또한 그녀가 꿈꾸었던 자유인 것처럼 말이다.


다시 양쪽 벽의 그림을 바라보니 삼십 마리의 나비와 한 마리의 소는 그 자리에 그저 머무를 뿐이다. 그러나 그 대상에 투영된 나의 욕구와 매주 방문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합쳐진다면 한 편의 SF 영화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홀가분한 나비의 날갯짓과 묵직한 역동성은 내 안에 있거나 혹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 그걸 투사하면서 나오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는 공감하고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겠지? 투사되는 것은 욕구이지만, 알아차려 가꾸어진 욕구는 상상하는 힘의 기반이 되어 과거를 수용하게도 하고 미래를 꿈꾸게도 한다. 

 




3. 욕구와 상상의 조합으로 인간은 나아간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것이 투사이다. 예술세계로 들어서면 투사의 경향성은 더 짙어진다. 가끔은 인간의 투사로부터 자유로운 창작과 해석이 존재할까 궁금하다. 안전을 유지하고 싶고, 사랑을 느끼고 싶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고, 즐거움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대안은 그걸 상상의 세계로 데리고 가서 이루는 일이다. 그렇게 이루고 싶은 욕구와 상상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우리는 작품이라 부르며 아끼고 즐긴다. 


인간은 소화할 수 없는 산물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내뱉을 만큼 자기를 사랑하고, 상상으로라도 욕구를 펼치고 싶을 만큼 힘이 센 존재이니 새삼 인간성에 대한 놀라움과 감사를 느낀다 .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5961
  • 기사등록 2023-03-22 23:02:1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