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


집에서 설거지, 청소, 옷장 정리 등을 해본 사람이라면 백번 공감할 말이다. 집안이 심각한 수준으로 어지럽혀진 상황이 아닌 이상, 집안일을 한다고 해서 웬만해서는 티도 안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큰데, 주변정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정리도 되고 청결한 환경에서 생활함으로써 질병에 대한 예방도 되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묵묵히 드러나지 않는 일이 잘 이루어져야만 우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학창 시절 공부에 전념할 때,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청소해주시고 빨래해주셨던 부모님의 은혜를 늘 잊지 않고 있다. 자취 생활을 하는 지금은 이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하고, 해나가고 있기에 당연한 것이 아녔음을 안다.


병원에서 필요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청소라고 생각한다. 병원이라고 하면 흔히 깨끗한 이미지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병원만큼 오염된 공간이 없다. 환자의 객담, 체액, 혈액, 대, 소변, 항생제 내성균, 병원 내 감염 등 균이 전파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고 특히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응급상황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든 몸 이곳저곳에서 체액이 분출되든 상관없이 우선 살리려고 달려들기 때문에 처치 후 주변 상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청소를 해주시는 분을 여사님이라는 호칭으로 의사소통한다. 참혹한 현장에는 언제나 여사님이 대걸레 자루와 클리넬 살균 티슈를 들고 나타나시는데, 한쪽에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처치와 간호를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여사님께서 묵묵히 현장의 참혹함을 지워나가 주신다.


그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어질러놓은 것을 손수 하나하나 집어가며 사랑으로 정리해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선생님, 혹시 균 감염은 어떻게 걸리는 거예요?"


접촉으로 전파되는 균에 감염된 환자를 보게 된 어느 날, 문득 여사님께서 내게 질문을 했다. 순간적으로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라며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이 스쳐 지나갔는데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기 위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말씀드렸다. 기회감염, 그러니까 정상인 상태보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감염에 취약할 수 있어서 균에 감염되기도 하고, 병원에서는 의료진의 손으로 전파되는 경우도 많다는 일반적인 예시를 들어 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시던 여사님이 입을 떼셨다.


"아 그렇군요. 저는 혹시나 제가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서 그런 줄 알고 마음이 쓰여서 그랬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균에 걸린 환자가 없었는데 오늘 보니까 환자분이 균에 걸렸다고 해서요..."


그 말을 듣는데 화들짝 놀랐다. 평소에 여사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중환자실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청소하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사님께 손사래를 치며 그런 생각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데 여사님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책임감에서 빛이 나고, 그 마음이 온전히 내게 전해져서 뭉클해졌다.


오늘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지는 않은가. 작은 일이라도 마음을 다해서 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또한 내게 무슨 일이 주어지든지, 묵묵히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고 해도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임하다 보면 큰 일은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생각한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6069
  • 기사등록 2023-04-28 23:43:0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