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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황선미 ]




“당신이 어제 그렇게 말했잖아”

 

부부는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가리고 싶다고 하였다. 사실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으면 그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상담실에 왔을까. 부부 갈등이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가려질 수 있는 종류의 문제라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참과 거짓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누가 진실의 편이고 누가 거짓의 편인지 가를 수 있는 권리와 책임도 없다. 그 능력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일단은 ‘휴....’ 안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문제는 우리 삶에 중요한 이슈이니 전문가로서 할 수 있는 영역을 생각해본다. 분명 부부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였는데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 


한 집에 사는 둘의 기억이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1. 모든 인간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존 그레이(John Gray) 박사가 2012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를 출간한 이후로 이 문장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심지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남녀관계에 대한 시원한 한계를 그어주었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행성 출신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서로에게 이질적인 존재이니 상식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 '외계인과 같은 존재와 잘! 살기 위해서는 그 세계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배울 필요가 있겠군', 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문장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 

 익숙한 옛 출간본 표지
(사진 출처: aladin 홈페이지>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가 어디 남자와 여자 뿐일까. 인간의 성격 분류 중 아주 기초적인 분류 체계인 <외향성 vs. 내향성>만 살펴보더라도 휴식에 관한 선호도부터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까지 얼마나 다른지, 각자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어찌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인간의 DNA에 선함이 심겨 있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거칠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양방향의 단순한 성격 분류에서 한 층 내려와 인간의 내적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상담실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누구는 외롭다고 하고 누구는 불안하다고 한다. ‘외롭다’와 ‘불안하다’라는 언어가 타인에게 가 닿을 수 있는 표면이라고 할 때, 표면 아래의 세계에서 각자는 또 얼마나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을까. 다름이 경이롭다. 

 

 



2. 두 세계가 만나면 신비한 역동이 일어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 정현종- 



 



자기만의 추상 세계를 소유한 인간이 제한된 물질 세계에서 타인과 공존해야 한다.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시인은 나처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시인은 다만 실존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소망을 ‘섬’에 담았다. 

 

시의 낭만에 누가 될까 걱정되지만 상담자의 시선을 덧붙이자면, 남녀 사이가 복잡한 이유는 두 세계가 다르기 때문만이 아니라 중간 지점인 섬에서 신비한 역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역동이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패턴을 말하는데 얼마나 복잡한지 행복한 성인 둘이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는 단순한 생각으로는 현상을 다 담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실제 인간관계란 A+B=C 라는 단순한 수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왜 그러냐고?  


1) A와 B는 보이지 않는 끌림으로 서로를 선택했고, 같이 살면서 AB라는 상호작용을 만들어낸다.

2) 그리고는 그 상호작용 안에서 서로에게 자기의 일부를 심어 놓으며 동일시하는 신비한 일을 한다. 

 

 



3. 투사적 동일시의 비밀



이런 현상이 정신 분석에서 말하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다.  

‘투사’가 자기 안에 담고 있기 힘든 마음의 내용물을 타인에게 밀어내는 방식이라면 ‘동일시’란 자기 안에 있었으면 하는 내용물을 타인에게서 가져와 마치 그 타인과 비슷해지는 방식이다. 밀어내고 가져오는 일을 동시에 하다니. '열 길 물속을 알기보다 어려운 것이 한 길 사람의 속'인데 그런 둘이서 특수한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그 하모니가 또 다른 상호작용을 만들어 낸다는 데 한 집에 사는 둘의 기억이 다를 법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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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15 19: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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