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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이해름 ]


봄이 서서히 물러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해의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5월, 여러분의 삶은 어떤 형태를 띄고 있나요? 



 

제가 떠올리는 봄은 굉장히 시끄러워요.


웅크렸던 줄기들이 허리를 피며 얽히고 넘어지듯 예기치 못했던 나날들이 툭 하고 튀어나와 저의 일상을 집어삼키기도 하거든요, 물수재비처럼. 꼭 봄에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을 간지럽히는 봄 바람을 기다리면서도 어느 구석 한 켠에 밀어두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양귀자 작가의 <모순> 도 꼭 속 시끄러운 오월을 보여주는 듯하여 들고 왔습니다. 책 속 여자 주인공 안진진은 특유의 서늘한 시선으로 스물 다섯의 삶을 늘어놓아요. 그녀의 독백이 모순 가득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돋보여요. 이 책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어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서평이나 독후감을 미리 읽지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 자신이 받아들이는 대로 책을 음미해 달라고 합니다. 저 또한 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줄거리는 생략할 게요.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 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을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양귀자. 모순. 15P)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문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삶을 부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부피를 불어넣어야 할까. 주인공 안진진은 드라마 속 공주도 아니었고, 박차고 올라가는 세상의 주인공도 아니었어요. 너의 삶과 나의 삶을 구별하지 못하는 우리, 나는 욕하지만 남이 욕하는 것은 싫은 우리, 타인의 삶을 자꾸만 흘끗 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양 갈래의 길에 방황하는 내가 있는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인물이 바로 안진진이에요. 



 

‘삶이 주는 불편함’


『모순』 은 이 불편함을 싸늘하면서도 그 안에 끓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희미하게 외치는 문장들로 자리잡고 있어요. 우리의 삶을 부정하지도, 모호한 것들을 꿈꾸지도 않는 딱 그 만큼의 선. 이 책은 그 선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순적인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깨끗하고 얼룩진 삶을 살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외치고 싶어서, 그래야 숨통이 트여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던 삶의 일부분에 손을 얹어 고개를 바로잡아 줍니다.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편안 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페이지들이에요.

 

내 안의 외침과 나의 행동과, 나에게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한 방향은 아님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 모순점들을 이해하고 두 팔 벌려 안아줄 때 비로소 나만의 삶에 색을 입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야 말로 우리 삶의 본질에 한층 더 다가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 똑같아서 더 비교되는 쌍둥이 자매, 이모와 엄마. 이모가 엄마이길 바라는 마음도, 도망간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사랑하는 마음도, 자신에게서 그를 발견하는 것도,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고 있는 모습도, 주인공 안진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두 남자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한 남자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 때, 마냥 달콤하다고 속삭이지 않고, ‘이런 게 사랑이었나’ 하는 안진진. ‘타인의 불행이 위로가 된다’ 고 솔직하게 말 할 수 있는 안진진이기에 이 책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아요. 

 

‘희미한 존재에게로 가는 사랑.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다.’ 

(양귀자. 모순. P102)

 

‘인생은 한 장의 사진이 아냐. 잘못 찍었다 싶으면 인화하지 않고 버리면 되는 사진 하고는 달라.’

(양귀자. 모순. P106)

 

여러분은 덩어리를 어떻게 조각하고 싶나요? 

그러니까, 인생의 양감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가고 싶냐는 질문이었어요.

5월에 흩날려가는 봄바람에 따라 여러분의 삶도 일렁이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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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양귀자. 1998. 모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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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03 10: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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