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영
[The Psychology Times=천지영 ]
인생에서 ‘나의 집’을 가지는 것은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의 익숙한 꿈이다. 인생의 목표가 ‘내집마련’인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자가(自家)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꿈과 목표로 삼은 만큼, 매달 일정 금액을 월급으로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 집을 소유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일반인이 집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상당한 부담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경제 상황에서는 주택가격상승률과 소득상승률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중·저소득층의 주택구입능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경제적 부담과 시간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하우스푸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하우스푸어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하우스푸어’란 “집은 소유하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과 세금 부담으로 인해 실질적 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 주로 부동산 상승기에 무리하게 대출받아 내 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매월 막대한 이자 비용을 감수하고 있는 아파트를 가진 빈곤층”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넓은 범위에서 단어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직장인 수준의 소득을 가지면서 그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용으로 지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산다는 뜻의 ‘영끌족’이 있다. 이들은 주택을 구매할 때 집값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대출받아 구매하기 때문에 대출금과 그 이자가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생활비, 의료비 등 생활의 다른 측면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가 어려워진다. 내 집 마련에는 성공했지만 사실상 빈곤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우스푸어의 대표적인 예로 2017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남자주인공을 볼 수 있다. 작중 그는 집을 사기 위해 1억 8천만원 가량의 대출을 받고 매월 이자로 80만원이 넘는 금액을 납부한다. 그가 세운 소비 계획을 보더라도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대출이자다. 작중 크지 않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 주인공이 이자와 함께 대출금을 모두 갚기까지는 약 30년이 걸리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세입자를 들여 보증금 없이 매달 30만원 가량 월세를 받는 선택을 한다. 드라마 설정상 하우스푸어를 극단적으로 나타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주인공이 대출금을 갚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절약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방송 화면 캡쳐
이번 생은 처음이라 방송 화면 캡쳐
하우스푸어로 살아가는 이유
그렇다면 이들은 왜 무리한 부담을 지면서까지 집을 사려고 하는 것일까? 이들이 하우스푸어가 된 배경을 기준으로 유형을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는 비자발적으로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이다. 의도치 않게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을 보면서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평생 집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만약 앞으로도 부동산 가격이 현재와 같이 오른다면 지금 집을 샀을 때 자산을 크게 불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 경우로 볼 수 있다. 월급이 오르는 속도는 집값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해서 부동산 가격이 올랐을 때 대출을 통해 집을 산 사람들은 이후 금리가 오를 경우 그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사실상 금리가 오르면 집값은 떨어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의적으로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은 어떨까? 앞서 언급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수입과 지출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철저한 소비계획을 세워 자발적으로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이들은 앞서 언급한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바로 ‘목표’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내 집 마련을 한가지 목표로 삼은 사람은 그 목표를 조금 더 빠르게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출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인식이 있다면, 떨어지는 집값과 오르는 이자도 ‘내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인식 없이 막연한 불안감과 ‘내년에 집값이 몇 배는 더 오른다고 하더라’는 소문에 의지해 의도치 않게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은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을 ‘내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자신의 선택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 선택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힘든 모습을 보인다. 사실 부동산 매입과 같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의사결정에서 나름대로 신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에 따라 그 신중함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면서 하우스푸어의 삶을 선택한 사람과 그 반대의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인생에 어느 정도 수준의 통제력이 있고, 계획적인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하우스푸어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당한 대출이자를 부담하면서도 합리적인 소비 생활을 할 수 있고,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몇 년 전 하우스푸어라는 단어가 유행했을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대출 끼고 집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일이다.’, ‘투자에 실패한 것이다.’라며 비판적인 인식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대출 없이는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이 상식선에 이르렀고 하우스푸어는 자연스럽게 라이프 스타일의 한 유형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목표 의식과 그에 따른 계획이다. 만약 과거에 비판받던 이들이 계획된 소비를 통해 은퇴 전에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다면 목표 달성에 따른 성취감, 만족감과 함께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 의식과 계획된 소비 없이 의도치 않게 하우스푸어가 된 사람들은 그들이 비판받던 것과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해서 집을 사냐’고 질문한다. 이에 주인공은 자기 집에서 노후를 보내다 임종을 맞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그게 자신의 꿈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각자 인생에 가치를 두고 있는 부분이 다르다. 주인공은 자신의 집을 소유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고,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하우스푸어의 삶을 선택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자신의 인생에서 주거환경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면 그에 걸맞은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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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철, 「생애최초 자가소유 지원정책의 체계화방향」, 『정책리포트』제342호, 서울연구원, 2022
우선희, 「주거여건이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부동산연구』 제33권 제2호, 한국부동산연구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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