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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빛나는 이유는 우리가 지나왔기 때문일 거야
  • 기사등록 2023-08-30 19:05:55
  • 기사수정 2023-08-31 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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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정지혜 ]


내 눈앞에 있는 현실의 벽들이 높게 느껴지고, 미래가 어두컴컴하게 보일 때면 문득 과거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미래에 관한, 더 나아가 삶에 대한 고찰 없이 즐겁게 호흡할 수 있었던 시절, 사회의 관념 속에 갇히지 않고 내가 가장 나로서 존재했던 시간.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서 그럴까, 우리는 늘 과거를 욕망한다.

 

“청춘이란 무엇인가? 기껏해야 미숙하고 설익은 시간, 얄팍한 감정과 불안한 생각들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던가.”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포스터이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로 이루어진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때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하여 시리즈 최고 시청률 18.8%를 달성해 대히트를 쳤다. 사건의 단순한 재현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시대에 배어있는 향수와 추억을 아름답게 영상매체로 끌고 온 것이 [응답하라 시리즈] 히트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팝의 시작을 알린 H.O.T와 젝스키스, 서울로 상경한 청년들, 이웃들 간의 정, 88올림픽 등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루는 근간들을 주제로 다루어 그 시절을 겪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한국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드라마가 이웃들 간의 정이 두텁고 복잡한 고민 없이 살았던 청춘의 과거를 추억하게 했던 것이다.


‘저 때 좋았었는데’, 울고 웃었던 기억이 모여 푸르른 사계절을 형성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진다. 친구에게 절교를 고했던 날은 어린 날의 귀여운 다툼이었으며, 무언가를 위해 힘들게 노력했던 날은 빛나면서 달콤한 땀방울이었고, 진심으로 무언가에 푹 빠져있었던 날은 나의 또 다른 발판으로 도약하게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저 때’가 좋았을까?


우리는 종종 좋지 않았던 과거를 미화하고는 한다. 절대적인 것이 아닌 기억은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겪는 것에 대한 과거의 생각으로, 동일한 사건을 겪어도 개인에 따라 느낌과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 친구와 인연을 끊었던 것이, 힘들게 투쟁하여 원하는 것을 쟁취했던 것이, 방에서 혼자 울었던 일들이 당시에도 아름답게 빛났던 것이었을까? 사람의 자아는 기억의 집합체이며, 그 때문에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의 자아는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 때 긍정적인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회복하려 한다.

 

이렇게 추억의 안 좋은 점들을 억제하여 좋은 부분들만 기억 속에서 꺼내는 것을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 장수했던 인물로, '므두셀라 증후군'은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한다.


관련된 영화로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어른 제국의 역습]이 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공감하는 이 영화는 켄과 미셸이 20세기의 냄새로 세상을 20세기로 돌려놓고자 한다. 20세기의 향수에 젖어 어린 시절을 만끽하는 어른들과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들. 이러한 세대 차이는 실제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에서도 보이는데,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성인이 되고 보니 나도 과거에 잠기고 싶다’라는 반응이 평가의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모두가 과거를 그리워함에도 불구하고 켄과 미셸의 계획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고자 하는 짱구가족에 의해 무산된다.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각자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기쁨의 순간들을, 자기가 개나 돼지 혹은 곤충이나 벌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들을.” -김연수, 원더보이


힘들었을 때 좋았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인생을 더 찬란하게 만들어주는 열쇠가 되곤 하지만 왜곡된 과거에 매몰되어 있으면 현재를 살아가지 못한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현재. 지나간 과거는 왜곡하지 않고 어린 날 썼던 일기장처럼 가만히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비결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YTN 사이언스 [응답하라 내 첫사랑의 추억!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이유는?]. (2017). URL: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1709061557091972

라이프성경사전 [므두셀라]. (2006). URL: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392284&cid=50762&categoryId=51387

오스카 와일드(지은이), 서민아(옮긴이). (2013).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블랙 장르의 재발견01. 예담

김연수. (2012). 원더보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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