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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혜령 ]



아이 키우면서 내 바닥을 보는 것 같아요

매사에 불안하고 마음이 급해요

육아하면서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우울해서 아이한테 웃어주는 게 힘들어요



오늘도 육아를 하면서 불안과 짜증 사이를 줄타기 하셨나요? 아이랑 단둘이 붙어있는 시간이 너무 우울하셨다고요.



상담가라서 그런지 주변분들이 저에게 마음의 문제를 많이 토로하곤 하는데요. 그 중에는 아이를 돌보면서 겪는 내면의 어려움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위 문장은 제가 직접들은 말들 중 일부이고요. 저도 육아를 하는 입장이라 귀를 쫑긋 세워 듣습니다. 공감도 되고 때로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하는 사실에 위안도 됩니다. 어떤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기도 해요.


저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아이를 키우며 어려움에 맞닥들이곤 하는데요. 우울이나 짜증과 거리가 멀었던 신생아 시기를 지나(물론 그 시기만의 다른 어려움이 있었지요!), 아이의 자아가 커지기 시작하는 18개월 무렵. 저는 매일같이 한계를 경험했습니다. 그 즈음 해외로 이사를 나와 환경변화에 적응하느라 온가족이 힘든시기이기도 했지만요. 아직은 논리가 없고 격렬한 떼쓰기가 취미인 (이맘때의 흔한 모습이죠 ㅎㅎ)아이를 마냥 넓은 가슴으로 받아주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귀여움지수도 그만큼 상승하는 시기라 아이는 엄마를 아주 들었다놨다 했고요. 어쨌든 그 즈음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짜증을 냈던 것 같아요. 욱하면서 의도치 않게 이미 짜증이 터지고 마는 일들이 저에게도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아니겠습니까? 무려 심리상담사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고 있고요. 쉽게 예민해지는 저를 용납하기가 힘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어떤 날은 기분이 바닥을 쳤다가, 비슷한 상황을 여러번 겪고 나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결국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로 나아갔죠. 아이에게 버럭할까봐 조심스러웠고 저의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정조절이 안되는 저 자신을 보는게 제일 힘들었고요..


문제에만 집중하다가 'How'로 나아가니 그 자체로 좀 나아지긴 했습니다. '얘는 왜이렇게 말을 안들어.' -> '나는 왜 이런걸로 짜증이날까?' -> '어떻게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로 나아가고 있었어요.


선배 육아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그간 정신없다는 핑계로 쉬고 있었던 명상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관련된 책이나 영상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러나 어떤 방법이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특단의 조치같은 건 없었습니다. 육아는 장기전이었고, 명확한 답이 있는 수학문제같은게 아니었거든요. 무엇보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모든 엄마가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과 원인도 달랐어요. 그래서 찬찬히 저 자신을 살펴보며 조금씩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노력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만큼 더 나은 길이 보이기는 합니다. 저와 같은 어려움을 마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제가 그동안 공부하고 정리한 이야기를 이 곳에 해볼까 해요.


우선 쉽게 오해하고 있는, 그러나 꼭 명심해야 할 두가지 내용을 먼저 나누어 볼게요.


1. 인간은 동물이다. 엄마도 동물이다.

2. 아이는 '타인'이다.





 1. 인간은 동물이다. 엄마도 동물이다!


우선은 저의 모든 감정과 행동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물론 아이에게 버럭하는 행동을 긍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짜증이 나거나 아이에 관해서 걱정과 불안이 생겨나는 그 모든 것들이 육아를 하면서 흔히 생길 수 있다는 거에요. 왜냐면 우리는 감정을 가진 동물이거든요. 


아이를 한 번 잘 관찰해 보세요. 특히 아직 사회화가 덜된 영,유아 시기의 아이 말이에요. 잘 웃는만큼 잘 울고, 뜻대로 안되면 짜증내고 소리지르고, 그러다가도 금새 또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른이라고 다를까요? 단지 겉으로 조금 더 다듬어졌을 뿐 마음은 다르지 않지요. 아직 필터링 되지 않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아, 나도 저 아이와 같은 똑같은 사람인데, 저 아이가 짜증내고 화나는만큼 나에게도 그럴수 있겠구나!'


네 맞아요. 아이와 나는 같은 인간! 동물이니까요. 아이가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짜증나고 떼를 쓰는 것처럼, 모습만 다를뿐 그 감정은 우리에게도 생겨나는 것이잖아요. 생각해보세요. 내맘대로 안되는 일 때문에, 내뜻과 다른 타인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괴로워했던가요. (마음처럼 안되는 나 자신이 제일 괴롭고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어른이고 공부한 사람이고 상담가라고 해서 꽤나 이성적인 인간존재! human being이라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던거죠. 내 안에는 고상하고 성숙한(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는') 감정만 있을거라 믿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면서 어른스럽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면서 화가났던 거고요. 어떻게보면 '어른스러운'이라는 표현은 참 위험한 거에요.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강박속에 나 자신을 끼워넣거나,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요. 어른! 부모!라는 이름에서 벗어난다 싶으면 쉽게 스스로 비난하기도 하죠. '넌 엄마라는 사람이 왜 이모양이야.'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거야.'  


애가 찡찡대고 짜증내고 소리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듯 제 것도 (제가 보이기 싫어했던 그 감정들도) 아주 당연한 것이었어요. 아이들은 거짓이 없고 꾸며내는 게 없으니 더 선명하게 보일뿐입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울고 화내는데 인간인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로봇처럼 되진 않잖아요.


우리가 동물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살펴봅시다. 동물은 욕구를 가진 존재에요. 기본적인 욕구 즉, 먹고 자는 건 매일매일 채워져야 합니다. 살아있다면 혹은 살아가려면 채워져야 할 기본적인 욕구에요. 이 것이 결핍되면 생존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기에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체는 반응을 해요. '밥줘!! 재워줘!!'라고 신호를 보내요. 배고픔을 느끼고 졸리고 피곤해지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예민해지는 것으로 감각할 수 있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쉽게 짜증이나요.  


아주 어린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경우 이런 기본적인 욕구가 부족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잠이 부족하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니까요. 만성적 피로에 시달립니다. 항상 예민한 상태로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을거에요. 게다가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거나 해로운 것을 입에 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요.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그런 상황을 바로바로 포착해서 대처할 수 있는 것이고요. 


이런 이유로(기본적인 욕구 결핍 + 아이의 안전 살피기)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마음은 평화롭고 차분할 수가 없는거에요. 느긋하고 나른한 상태로 어떻게 아이를 기민하게 돌보고 살필 수 있겠어요. 당연히 더욱 동물적인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돌보는 행위 자체가 매우 본능적인, 원초적인 것이에요. 아주 고차원적이고 우아한 학문 혹은 예술 같은 것이 아니잖아요.  TV나 SNS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육아의 장면들 때문에 쉽게 오해할 수는 있겠지만요.



# 육아는 동물적인, 원초적인 행위

  '뇌'를 통해 이해해보자


앞서 육아를 하면 더욱 동물적인 상태가 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말은 우리 뇌에서 편도체가 몹시 활성화 되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편도체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에 위치해 있는 부위인데요.  '위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영역이에요.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는 경보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편도체가 보내는 신호에요. 불안을 느끼면 우리는 불안을 낮추기 위한 대처를 하게 됩니다. 원시시대에는 불안을 감지함으로서 맹수나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거고요. 현대에 와서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거나 취업준비를 열심히해서 밥벌이를 하는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죠. 편도체 덕분에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주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지만, 이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계속 불안과 긴장 속에 있으니 몹시 피곤한 상태가 됩니다. 뇌에는 불안을 잘 조절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두엽이 있지만, 피곤한 상태에서는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피곤할수록 우리는 더 원시적인 상태가 되어 편도체에 끌려다닐 뿐인거죠.


뇌의 깊은 곳에 자리한 편도체(AMYGDALA). 이 영역은 우리가 다른 포유류와 똑같이 공유하는 뇌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육아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인 겁니다. 아직 스스로를 돌볼 힘이 없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뇌는 편도체가 아주 적극적으로 작동을 하는거죠. 뇌에서 계속 '위험해!! 위험해!! 정신차려! 니 자식이 위험해!!!' 이런 메세지를 계속 주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불안하고 예민해져있겠어요. 안그래도 잠도 부족하고 밥도 제대로 챙겨먹기 어려운 상황인데 더더욱 맘편히 잘수도 먹을수도 없겠죠. 날카로워져 있으니 부부싸움도 더 쉽게 일어날거고요. 지속되다보면 지나치게 소진되어 우울증이 오기도 할 겁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문제는 '과도하게' 예민해져있는 상태로 감정조절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아이와 자신을 더 위협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겁니다.


정리해보면, 육아를 하면서 불안과 분노와 짜증과 같은 감정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수면이나 식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욱 예민해져있을 거고요. 어린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결국 '생존'이라는 원초적인 행위이기에 더더욱 편도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어 있어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개와 고양이도 자기새끼를 건드리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거죠. 그러니 '나는 왜 이모양일까.' '나는 왜 이렇게 감정컨트롤을 못할까' 하는 자책으로 내가 나를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육아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잖아요.


돌이켜보면 저는 저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것 같아요. 아주 이성적이고 의지로 모든 걸 성숙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과신했어요. 그런데 그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방법이 보입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고 동물이라는걸 인정하고나니 나를 채찍질하기 보다는 강형욱씨가 강아지를 조련하듯 나를 조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우리는 편도체가 과민반응을 하지 않도록 즉, '정말 필요한 때에만' '적절히' 반응하도록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민반응을 낮출 수 있는 방법, 나를 조련하는 방법은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고요. 다음 글에서는 꼭 명심해야 할 두번째 사실인 <아이는 '타인'이다>를 주제로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 볼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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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8-28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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