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진
[The Psychology Times=한유진 ]
유행어로 보는 국민 심리
단언컨대, 팬데믹 시대를 풍미했다고도 볼 수 있는 단어를 찾는다면 바로 '소확행'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각 음절을 따와 만든 이 단어는 2018년 올해의 유행어 설문조사에서도 28%의 높은 득표율을 보이면서 당당히 국민 유행어 반열에 올랐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소확행을 자랑할 때, 각종 마케팅 회사에서도 발빠르게 이 단어를 온갖 광고에 가져다 붙이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곧 국가 기관 SNS 등에서도 이용되는 등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본래 소확행이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나타난 단어로 일상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강한 기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글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을 때', '반듯하게 개어져 서랍 속에 정리된 속옷을 볼 때' 느낄 수 있다고 몇 가지 예시를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소확행'이란 단어를 쓰는 경우는 꽤 다르다. 치킨이나 휘핑크림을 올린 카페 음료처럼 다소 가격대가 있으면서도 만족도가 높은 음식이나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온전히 자기 만족을 위해 구매하는 여러 사치품, 즉 화장품이나 전자기기 액세서리 등에 보통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크고 보람찬 소비보다 작고 하찮은, 그렇지만 충분히 내 기분은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을 법한 소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런 소비는 문화의 흐름과 사람들의 성향에 따른 개인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 소확행 유행의 이유에 대해서는 MZ 세대의 특이한 소비 방식, 트렌드의 변화 등 많은 추측이 있어 왔다. 하지만 사실 이런 소확행을 바라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바로 1929년 미국 대공황 시기의 여성 소비자들이다.
작은 소비가 인기를 끄는 이유
경기가 나쁘면 여자들이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경제학적으로는 굉장히 유명한 속설로, 실제로 대공황 시기에 미국에서 유독 립스틱 매출이 증가한 것을 두고 만들어졌다. 소득이 줄어든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의 물건에 돈을 덜 쓰기 시작했으나 립스틱과 같은 자그마한 사치품은 오히려 판매량이 늘었다는 것이다. 코스메틱 산업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에스티 로더 사에서는 실제로 자사 매출에 따른 립스틱 지수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비단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남성에게서도 나타났는데, 남성 노동자에게서는 넥타이의 구매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으며 립스틱뿐 아니라 매니큐어 등에서도 판매량의 증가가 확인되었다. 이에 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에 립스틱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립스틱 효과는 기본적으로 경기 불황기에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어느 정도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소비자를 심리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으면서도 금액 자체는 저가로 형성되어 있는 사치품이 잘 판매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경제 불황을 생각하면, 불황과 립스틱의 판매량은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는 소비자들의 눈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스크로 인해서 피부 관리를 위한 스킨케어 제품, 즉 로션이나 토너 등의 상품 판매량이 급증했고 스마트폰과 같이 금액대가 비싼 제품보다는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 등의 더 작고 비용 면에서도 저렴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향수 시장이 빠르게 급성장하고 있다. 이는 불경기에 작은 사치, 즉 소확행을 바라는 현상이 이미 경제 용어로서 존재할 만큼 당연한 수순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청년의 애환이 담긴 단어, 소확행
'소확행'은 '욜로'와 더불어서 기성 언론에게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아 온 소비 패턴 중 하나다. 끝나지 않는 불황기에 철없는 청년들이 헛된 소비에 매몰되어 있다고 손가락질이나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 보면, 그러한 작은 사치품에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청년들의 삶이 팍팍하고 녹록치 않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고생한 자신을 위해 보상을 주려는 심리가 제대로 표현될 수 있는 방법이 구매와 소비 욕구 충족 외에는 따로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소확행에 빠진 청년들에 대해 논하려거든, 현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기성세대부터 그 원인이 어디서 오는지 한번쯤 관심을 가져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사소한 행복을 찾으려는 행동은 어쩌면 큰 행복에 대한 욕망을 이미 포기한 청년층의 심리를 대변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난 기사
이민식, 안대천. (2014). 경기상황에 따른 여성고정관념형 제품의 광고효과에 관한 연구. 광고연구,(101), 21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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