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현
[The Psychology Times=한소현 ]
매일경제
'왕의 DNA’, ‘극우 뇌’.
교권 추락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최근,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 단어들이다. 이후 해당 단어는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발달 장애 혹은 ADHD 아동들을 치료하는 사설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단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덕분에 해당 사설 연구소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내 자식이 최고라 생각하는 부모’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교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4,000명에 육박하는 해당 연구소 카페 회원 수는 많은 부모가 발달 장애와 ADHD를 치료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현실을 외면하고 사이비 치료 방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사이비 치료법에 혹하는 부모들
해당 사설 연구소의 치료법을 맹신하는 부모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발달 장애, ADHD 환자 등 소수자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다양성이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또 둘째는 그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의지할 곳이 없어 사이비 연구소의 마케팅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내 아이가 치료 대상이라는 사실을 달가워하는 부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 이유로 권정민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이런 사이비 치료법에 빠지는 부모를 마냥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식이 곧 '나'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를 알기 위해 해당 부모들의 심리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본인의 자녀가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 때면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남들보다 뛰어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의식이 강한 동물이다. 그 이유로 많은 사람이 자신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들에게 ‘나 자신 평가’를 하라고 하면, 90% 이상의 사람들이 나는 ‘평균 이상’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특정 영역에서 평균 이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이때 자기 자신을 아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한 부모들은 아이가 문제가 있다면 마치 내게 문제가 있는 것 마냥 이를 부정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심리
또한 인간의 의존심리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안정적이고, 내게 행복감을 주는 것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불편한 불안감은 주변에 내 편이 없을 때 상승하며 내편을 찾기 위해 나선다. 내 아이가 치료 대상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만 가득한 세상에서 아이가 치료 대상이 아닌 특별한 존재라며 격려해 주고 내 편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누구든지 이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제의 치료법을 공유하는 대상은 수천 명으로,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다’라는 안정감과 ‘다수의 응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우리의 과제
여론의 비난과 의료계의 지적에 대해 문제의 사설 연구소 소장은 “나를 찾아오는 부모들은 최후의 보루로 자신을 찾아온다. 실제로 해당 치료 방법으로 효과를 본 아이들이 많은데 무엇이 문제”냐는 입장을 보였다. 우리는 여기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 장애 아동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17개 광역지자체 중 9곳에 거점 병원이 없어 10명 중 3명이 타 지역에서 치료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의료 접근성 문제는 현재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발달 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충분한 시간 동안 원하는 정보를 얻어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라고 권정민 교수는 밝혔다. 이 틈을 노린 것이 문제의 사설 연구소이다. 이들은 부모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충분한 시간 동안 성심성의껏 상담을 진행한다.
문제의 사설 연구소는 내 아이가 치료 대상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 놓인 부모들의 심리를 노려 엄청난 금전적 이득을 취했다. 왕의 DNA, 극우 뇌 등의 단어가 우리에게 심각한 교권 추락 문제를 제시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이슈는 우리 모두에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하고 소수자들 또한 차별 받지 않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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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문선,박기쁨,정성훈,and 우상우. "의존성, 회피성 성격특성의 심리적 특성과 중독성향 간의 관련성." 동서정신과학 14.1 (2011): 13-31.
이계정. 누군가에게 자꾸 의지하고 싶은 나에게. 서울: 팜파스, 2017.
[박진영의 사회심리학]좌절과 실망이 습관인 사람에게 . (2021).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47813.
자폐 아동이 ‘왕의 DNA’를 가졌다고? 부모 두 번 죽이는 ‘사이비 치료법’ . (2023).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8/22/20230822025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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