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원
[The Psychology Times=방주원 ]
소울메이트를 믿으세요?
'소울메이트'. 텔레비전이나 책, 그 외의 여러 콘텐츠에서 이 단어를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소울메이트'란 '같은 영혼을 가진 것처럼 생각이나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교감지기'라고도 한다. 흔히 영혼의 짝꿍, 영혼의 동반자라는 단어로도 쓰이는 이 개념은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망 속에 꽤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오랜 시간 친밀하게 지내온 친구라든가 생각이 잘 맞는 애인, 선생님이나 가족 구성원까지 소울메이트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하다.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소울메이트'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거나 언젠가 영혼의 단짝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11년 미국에서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 한 명의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73퍼센트에 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울메이트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위험하다. 자신의 자존감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그 위협은 소울메이트가 나의 믿음을 저버렸을 때 발생한다. 영혼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그만큼이나 생각해 주지 않을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서운하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상대에게 보였던 애정을 곱씹으며 실망의 구렁텅이로 서서히 걸어 들어간다. 극단적인 경우 자기연민에 빠지거나 그에게 잘못했던 일을 반추하는 등 자존감을 뚝뚝 떨어트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 과정이다. 우선 소울메이트가 할 수 있는 행동과 할 수 없는 행동을 자체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그렇다. 친밀하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어떠한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소울메이트보다 스스로의 '진심'(대개 친구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은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리곤 생각한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그럴 수도 있다.
다소 허무할 수 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상대에게 기대를 갖지만, 그 기대가 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소울메이트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면 당연하게 다가오는 사실이 잘 적용되지 않는 까닭은 어쩌면 '소울메이트'라는 개념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와 영혼이 통하니까, 말하지 않아도 나의 진심을 알아주니까' 등등의 이유로 상대방을 소울메이트로 상정하는 것은 막연한 기대이며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일 수 있다. 자존감이 건강한 수준으로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진심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인정이 없다고 해서 자아가 불안해지지 않기 때문에 '너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을 전환해보자. 당장 나부터는 살면서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알아주었는가? 매순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그렇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모든 관계와 마음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상대방이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도, 그러한 실망감 때문에 자책할 필요도 없다.
결국은 '나'.
'그렇다면 나와 영혼이 통하는 소울메이트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글에서 전하고자 하는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아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나부터 스스로 마음을 돌아보고 인정해 주는 시간을 갖는다면, 굳이 또 다른 영혼의 단짝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내가 제일 중요하다. '나'를 괴롭히는 원인이 나의 기대라면 그것을 과감하게 없앨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소울메이트를 찾아 헤매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소울메이트는 결국 당신 안에 있는 '나'라고 말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면, 어떤 불안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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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허지원. (2020).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경기: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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