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금
[The Psychology Times=김남금 ]
@포르투, 포르투갈
“혼자 여행하면 무슨 재미예요? 안 무서워요?”
혼자 여행 다녀왔다고 하면 종종 받는 질문이다. 하나도 안 무섭고 안 심심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종종 무섭고 심심하다. 혼자 여행하면 불편한 점도 많다.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는 몇 배는 조심해야 하고, 기차를 기다리면서 캐리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끌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음식도 이것저것 궁금한데 1인분만 시켜야 한다. 표를 사고, 음식을 주문하고, 길을 묻는 기능어만 하루 종일 사용할 때도 있다. 이런 날 저녁이면 가슴에서 찰랑거리는 감정어를 방출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 왜 혼자 여행하나? 혼자 여행하면 대체 무슨 재미가 있길래.
일본 가가와현에 나오시마 섬이 있다. 다카마쓰항에서 페리를 타고 한 시간쯤 가면 닿는다. 이 작은 섬은 1989년 재생 프로젝트 전까지 버려진 섬이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이 프로젝트를 후원한 사람의 발상 전환 덕분에 폐섬 전체가 갤러리로 바뀌었다. 낡은 집들도 갤러리로 다시 태어났다. 여러 미술관 중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하고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이 함께 만든 미술관, 미나미데라가 있다. 벽이 높고 창 하나 없는 검은색 목조 건물이다. 미술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건물 크기에 비해 좁은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깥과 단절된 짙은 어둠에 갇혔다. 두 눈을 크게 떴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뿐이었다. 와락 겁이 났다. 앞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몰랐고, 어둠 속에서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가이드는 계속 일본어로 말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청각도 어둠에 갇힌 것 같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몸을 나무 벽에 바짝 붙이고, 두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찬찬히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가이드의 말소리보다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두 발로 걷고 있었지만, 기어가는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두려웠다. 계속 벽을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옮겼다. 앞 사람이 내는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했다. 어둠에 조금 익숙해지자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벽을 다 지나고 한가운데 있는 뻥 뚫린 공간에 서 있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인 직사각형의 푸르스름한 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넓은 공간에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자유롭게 걸은 후 미술관 벽을 더듬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잊고 있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짐작했는가? 바로 순수한 어둠 속에 관람자를 가두는(?) 시간이었다. 30분도 채 안 되는 ‘어둠 속에 있는 시간’이 관람자들의 잠들어 있는 감각을 휘저었다. 희미한 빛을 찾아내는 일은 관람자의 몫이었다.
혼자 여행은 이 미술관의 전시품처럼 모든 감각을 흔드는 ‘순수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처음 혼자 여행하면 혼돈 속에 던져져 마주치는 모든 것에 예민해진다. 영혼을 잠식하는 초조와 불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라서 모든 감각이 외부로 열리고 깊은 잠에 빠졌던 의식이 슬금슬금 깨어난다. 본능에 따라 보고, 듣고, 체험하는데 무게를 두면서 퇴화했던 예민함을 되찾는다.
어떤 대상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감각도 훈련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을 떠올려 보자. 어린아이들에게 오감이 발달하도록 악기도 가르치고, 그림도 그리게 하고, 동물원에도 데리고 간다. 아이들은 경험치가 적어서 보는 것마다 감탄하고, 질문하고, 반응한다.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지속적인 오감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무시한다. 오감 계발이 차단된 어른은 번잡한 일상에 매몰되어 어떤 것을 보아도 시큰둥해져 커다란 자극만을 추구하게 된다. 미디어 광고가 과장해서 선전하는 것을 갈망하고 선망하도록 길들여진다. 시간이 생겨도 무엇을 할지 몰라 불안하다. 어른이 추구하는 즐거움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자유여행은, 특히 나 홀로 여행은 처음에는 대혼돈이다. 목적지까지 헤맬 수 있고,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다. 자신의 한심함을 마주하는 시간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자신과 대화라니? 우리는 항상 다니던 길로만 다니고, 익숙한 감각만 사용하고, 늘 보던 것만 보기 때문에 생각도 쳇바퀴를 돈다. 헤매는 시간을 통해 익숙한 감각과 사고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헤매면서 자신만의 시간 리듬을 알게 된다. 자신의 속도를 찾으면 ‘삽질’해도 눈치 안 보고, 마음이 안 내키면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 가고 싶은 카페에 들어가서 맥주나 커피 한 잔 두고 멍하게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시간 아깝다고 보챌 사람도 없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싶은 적은 없었나?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싶은 적은 없었나? 자유여행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행 후 가장 생각나는 것은 이국적 건축물이나 풍광이 아니라 오롯이 혼자 헤맸던 시간이다. 낯선 골목에서 뜻밖의 것에 혹하고, 쾌청한 하늘을 보고 기분이 날아오르고, 찾아가려던 식당에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았을 때 쾌감을 느낀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안 했던 시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나른한 여유를 그리워하게 된다. 날이 저물면 느른함이 몸을 뒤덮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쓸쓸함과 지루함이 마음을 잡아당겨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미래를 생각하며 막연한 불안 속에서 걷는 대신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 눈앞에 마주한 사소한 일을 헤쳐나가며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혼자 여행의 매력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걷다가 포기할 찰나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맛보는 안도감, 여행지에서 스치는 나와 같은 처지의 여행자들과 쌓은 짧은 인연이 현재의 나를 이룬다. 여행을 통해 사물에, 사람에게, 집착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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