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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상준 ]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을 지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이 문턱에 다다른 것이 느껴지는 요즈음입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이번 여름은 덥기도 더웠지만 참 길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여름 전국 평균기온은 24.7℃로 평년보다 1.0℃ 높았고, 이는 1973년 이래 4위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6월부터 8월까지 세 달 모두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고, 폭염일수는 13.9일, 열대야 일수는 8.1일로 평년(폭염일수: 10.7일/열대야 일수: 6.4일)보다 많았습니다.


특히, 여름철 석 달의 평균기온이 모두 평년 대비 높았던 적은 1973년 이래 51년 중 단 세 번만 있는 일이라고 하니 올여름이 길고 더웠다는 것이 그저 느낌인 것은 아닌 셈입니다.




무더운 날, 혹시 지구온난화가 걱정되시나요




지난여름, 한낮의 더위에 땀 흘리며, 혹은 열대야에 잠 못 이루며 "이게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 한 번쯤 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2011년 발표된 이 연구(Li et al., 2011)는 참가자들에게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확실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지 조사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해 보입니다만, 연구진이 알아보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그날의 날씨와 관련이 있는가?"입니다.




더운 날씨는 지구온난화의 증거?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설문에 답변한 날의 기온을 그날의 평년 기온과 비교하였습니다.

그리고 답변한 날의 날씨를 매우 추움, 다소 추움, 평범함, 다소 더움, 매우 더움 총 5단계로 분류하였습니다.


그 결과, 날씨가 더운 날 설문에 답변한 사람들이 지구온난화가 더 확실한 현상이라 여기며,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후속 연구에서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설문조사 사례비의 일부를 환경 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사람들은 날씨가 더운 날에 더 높은 금액을 기부하였습니다.


한편, 다른 연구(Donner & McDaniels, 2013)에서는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간 시행된 기후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그 시기의 날씨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고,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날씨가 더운 날에 지구온난화를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직관적 이론: 머릿속의 법칙들




두 연구의 결론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씨와 기후를 헷갈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직관적 이론(intuitive theories)으로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직관적 이론이란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터득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관적 이론이라는 것이 사실은 틀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갈릴레이가 이를 지적했을 때,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조차도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직관과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 왜 이러는 걸까요




한편, 기후변화는 허구이며 과학자들이나 환경 단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있습니다.

2019년 그는 "밖이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는 도대체 어디 간거냐? 우리는 지구온난화가 필요하니 제발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습니다.


미국의 한 상원의원(James Inhofe)은 회의장에 주먹만 한 눈덩이를 들고 와서 "우리는 2014년이 가장 따뜻한 해라는 말을 계속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지 아십니까? 이것은 밖에서 들고 온 눈덩이입니다. 밖은 정말 정말 춥습니다. 정말 이상하네요."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인 둘 모두 날씨와 기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구분하지 못하는 척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우리가 날씨와 기후를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겠지요.

 



직관의 함정




두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기후 변화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도 날씨가 더운 날에는 더 많은 기부금을 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직관적 이론이 너무나도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후와 날씨는 다르다는 지식은 알고 있지만, 우리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직관은 기후와 날씨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겠지요.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만




직관적 이론에 관련된 다른 연구(Goldberg et al., 2009)에서는 예일 대학교와 존스홉킨스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들에게 제시된 대상이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제한 시간 내 최대한 빠르게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평균 24년을 생물학 교수로 재직한 이들조차도 식물을 생물이라고 판단하는 시간이 동물을 생물이라고 판단하는 시간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의 직관적 이론 체계하에서, 생물이란 곧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직관적 이론은 지식의 유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다만, 직관적 이론이 너무나도 강력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절대 직관적 이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직관의 함정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너희는 너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직관적 이론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직관이 틀릴 수 있고, 꽤나 자주 틀린다는 것까지 모르는 사림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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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기상청. (2023. 9. 7.). 올해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 평년보다 1℃ 높았고, 강수량은 291.2mm 더 내려 [보도자료]. 

Shtulman, A. (2023). 왜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가? : 과학적 인식을 가로막는 직관의 한계에 대하여. 바다출판사.

Donner, S. D., & McDaniels, J. (2013). The influence of national temperature fluctuations on opinions about climate change in the U.S. since 1990. Climatic Change: An Interdisciplinary, International Journal Devoted to the Description, Causes and Implications of Climatic Change, 118(3–4), 537–550.

Goldberg, R. F., & Thompson-Schill, S. L. (2009). Developmental “Roots” in Mature Biological Knowledge. Psychological Science, 20(4), 480–487.

Li, Y., Johnson, E. J., & Zaval, L. (2011). Local Warming: Daily Temperature Change Influences Belief in Global Warming. Psychological Science, 22(4), 45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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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9-27 19: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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