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The Psychology Times=루비 ]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으니 시간이 부족함을 매번 느낀다. 그럼에도 한가한 것보단 바쁜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면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꼭 어려운 일은 아니기도 하고, 바쁜 가운데에 샘솟는 아드레날린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 주말 하루를 새벽부터 여행이라도 떠나면 그 기쁨은 더 배가된다.
지난주 목요일 2교시에는 동료장학 수업 공개가 있었고, 그때 다른 회의로 미뤄졌던 협의회가 오늘 이루어졌다. 여러 수업자 선생님들과 참관자 선생님들의 소감과 질의응답을 들으며 교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학생들의 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는 경우가 많고,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차시 40분 안에 교사와 학생의 수업 작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보여주기 식 수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학급별로 분위기도 판이하다. 일사불란하고 질서 정연한 반, 마치 대안학교처럼 교사와 학생이 격의 없는 반, 생동감이 넘치고 자유롭게 이야기가 오가는 반 등. 그 어느 반이 더 낫고 어느 반이 더 모자라다고 할 것 없이 그 자체로 다 학급의 개성이고 특성이지 않을까. 다양한 선생님과 학급을 경험하면서 아이들도 성장하고 무언가 깨달아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교실이라는 작은 왕국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을 지닌 교사를 만나는 일이 학생들에게도 그 자체로 살아있는 경험이 아닐까 하는. 학교라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배우는.
그럼에도 굳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교사상, 학급상을 고르자면 나는 학급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을 드러내고 표현할 때, 그것이 진정 살아있는 교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 나를 감추거나 포장할 필요가 없는 포근한 안식처 같은 교실, 자유로운 놀이터 같은 교실이 초등학교에서 추구해야 하는 교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의 아동문학가이자 초등교사였던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 <손과 눈과 소리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원숭이 우등생이라고 알아?"
"‥‥‥?"
내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자, 이타미가 말했다.
"죽마도 타고 미니 오토바이도 타는 원숭이들이 있지. 이 녀석들은 원숭이 사회로 돌아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야.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알겠냐?" 본문 185쪽
교대생 시절 처음 이 대목을 읽고 우리나라 현실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마음이 뜨끔했다. 살아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고 주야장천 외치지만 몇십 년째 변하지 않는 교육 현장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에 들은 강연에서 송길영 빅데이터 전문가는 학생들은 다 알고 있다는 취지로 말씀을 하시며 교사들이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그 말씀에 공감을 했다. 어린 학생들은 누구보다 새로운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고 받아들인다. 메타버스와 가상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들은 밀레니엄 교사들보다 더 정보 습득력이 빠르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낡은 지식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또 다른 소설 <모래밭 아이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보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지만, 일단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고 독서량도 늘려 교과서 수업 이외의, 뭐랄까 '특별 방송' 같은 수업을 되도록 많이 하도록 노력하겠다." 본문 239쪽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교사가 늘 자기 연찬의 시간을 갖고 끊임없이 배우며 견문을 넓히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가르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이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경험과 내공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나는 요즈음 퇴근 후에 '시 창작 수업'과 '중국어 교육 연구회'와 '클래식 감상 수업' 등을 공부하거나 몸 담으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연수도 듣고 있다. 때론 피곤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시간을 쪼개서 내가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과 노력들이 값진 보물이 되어 결국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부메랑으로 되돌아갈거라 생각하니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아는 게 부족하면, 한 차시 수업도 내가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기 쉽고 그러다보면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교사의 발문과 학생의 대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그것 자체가 커다란 수확이고 진정 배우는 기쁨을 맛보는 살아있는 수업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학생의 진정한 가능성은 교사의 예측을 초월한 엄청난 것이라며 하이타니 겐지로는 말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교사인 나는 바쁜 하루하루가 참 좋다! 이렇게 차곡차곡 전문성을 쌓아간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