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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진현 ]



최근 영화 <서울의 봄>을 다시 한번 보았다. 처음 볼 때는 순수히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했다면 두번째에는 영화의 세세한 연출이나 대사들에 몰입했다. 처음 볼 때도 인상 깊었지만, 보면 볼수록 이 영화가 그토록 인기몰이했던 이유가 분명해져갔다. <서울의 봄>은 1300만 관객을 달성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9위, 한국 영화 중 6위를 달성하며 한국 영화 역사 속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영화의 흥행은 비단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1300만 명의 심금을 울리기 위한 감독, 배우, 스태프의 땀방울들은 하나의 주제를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흘렀을 터. 영화 속 주제와 연출의 연관성 속 심리학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아보자.




전두광 VS 이태신, 그 선악 구도의 필요성


<서울의 봄>은 얼핏 보면 '전두광'이라는 인물 하나의 캐릭터 분석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12.12 사태 전반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사건 중심의 영화이다. 하룻밤에 어떻게 나라의 권력 체제가 뒤집어졌는지 표현해야 하기에 사건들을 빠른 속도로 나열한다. 김성수 감독은 이동진 영화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이유로 영화 속 선과 악의 대립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선과 악의 대립은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직관적이기에 사건들을 받아들이기 쉬워지며, 그러면 인물 설정에 큰 시간을 쏟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인물의 설득력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립을 더 명확하게 하고자 한 감독의 노력은 영화 인물들의 각색 속에서 드러난다. 극중 '이태신'은 실제 인물 장태완 장군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두광'의 대립 세력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이태신은 바뀐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실제 인물에서 비교적 크게 각색된 등장인물이다. 장태완 장군은 불같은 성격에 사투리를 쓰는 등 얼핏 보면 극중 전두광의 성격과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태신은 그에 비해 좀 더 침착하고 단단해보이기까지 한다. 김성수 감독은 이에 관하여 전두광을 '뜨거운 불', 그리고 이태신을 '깊은 호수'에 빗대어 서로의 대립을 더 명확하게 하고자 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고 동일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효과는 분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전두광의 대머리가 더욱 빛나는 이유


그렇다면 이런 선과 악의 대립은 왜 캐릭터의 깊이나 과거 이야기 없이도 이야기가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게 할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흑백논리(Splitting)의 오류 속으로 들어간다. 럿거스 심리대학원의 객원교수 낸시 맥윌리엄스는 이런 선과 악의 흑백논리는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상용되는 방법이라 설명한다. 수많은 회색의 빛깔을 검정색과 흰색으로만 구분하게 된다면 그 셀 수 없는 회색들을 분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대립 구도를 더 명확하게 나타내는 방법 중 하나로 김상수 감독은 인물의 각색 뿐만 아니라 음영의 대조를 적극 활용하기도 하였다. 어두운 곳은 더 어둡고 밝은 부분은 더욱 밝게 하는 '로우키 조명'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강한 음영 대조는 영화 속에서 주로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된다. <서울의 봄>에서 해당 조명 효과는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에 더불어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하는 빛과 어둠의 대립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극중 전두광의 대머리가 더욱 빛나는 이유이자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그토록 강한 분노를 일으킨 이유일 터이다.




군중을 휘감는 전두광의 힘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 속 전두광의 가장 강한 무기는 회유의 힘으로, 그렇기에 이 회유에 당하지 않는 이태신이 그의 완벽한 대립자가 된다. 실제로 영화 속 수많은 인물들 사이 연결되는 통화음은 그들 대부분을 전두광의 편으로 만드는 효과를 보여 최종적으로 전두광의 승리로 이어지는 핵심 전략이 된다.


이런 회유의 힘은 영화 속 연출에서도 드러난다. 전두광의 자택에서 하나회가 모였을 때, 전두광과 노태건은 쿠데타를 함께 모의하기 전 모든 문을 닫고 불을 끈다. 이 어둠은 모임에 참여한 모두에게 익명성을 부여하고, 그 익명성은 모임에 참여한 모두를 일종의 군중으로 만들어버린다. 하나회 사람들도 서로 하나회인지 잘 모른다는 영화 속 언급처럼 이미 익명성이 어느정도 부여된 하나회 속에서, 이 어둠의 밀회는 그 익명성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군중 속 회유의 심리학


군중의 심리적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 중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프랑스 심리학자 구스타프 르 봉은 그의 책 <군중심리>에서 개인이 군중이 될 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르 봉에 따르면 군중 속에서 개인이 얻는 익명성은 그들의 자아와 책임을 상실시킨다. 이들에게 군중의 목표나 감정들을 전염시키면 개인은 결국 군중의 목표나 감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군중에 소속되는 순간 군중은 단순하고도 극단적인 발상만 가능하여 리더가 그들에게 간단한 메시지를 반복하여 인식시키면 이는 빠르게 전염되어 군중이 그를 따르게 된다.


이런 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저명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에서 '몰개인화'라는 개념으로 소개되기도 하며 군중심리가 부여하는 익명성이 어떻게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증명되었다. 그렇게 어둠 속 밀회의 모두는 불이 꺼진 순간 군중이 되어 전두광이라는 리더가 하는 모든 말에 순응하게 되어 있으며 그들의 쿠데타는 그 순간 시작되었다.


범죄심리학자 로런스 앨리슨과 에밀리 앨리슨의 저서 <타인을 읽는 말>에서는 "당신이 누군가와 한번 [라포르를 통해] 유대 관계를 맺으면 상대방이 당신을 적이라고 여기더라도 당신을 공격하기 어려워진다”며 타인을 회유할 때의 효과적 전략으로 '라포르(Rapport)'를 꼽는다. 전두광은 이 라포르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로런스와 에밀리 앨리슨은 라포르 전략의 네 가지 기본 원칙으로 솔직함(Honesty), 공감(Empathy), 자율성(Autonomy), 그리고 복기(Reflection)를 꼽는다.




<서울의 봄> 속 전두광의 회유 분석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밀회를 분석해보자. 최소한 당시 모인 사람들에 대한 전두광의 솔직함은 분명하다. 권력 세력을 뒤엎어 우리가 권력을 가지자는 말보다 솔직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전두광의 공감은 사실 “하나회는 하나”라는 말에서부터 무의미해진다. 전두광이 하나회 신입 인원을 자신의 자리에 앉힐 때처럼, 그들은 이미 하나이기에 공감은 이미 끝난 셍미다. 전두광이 쿠데타 세력에게 보여주는 자율성 아닌 자율성은 전두광이 제30경비단에서 문을 열고 “이제라도 집에 가실 분은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물론 사실상 협박과 다름없는 말이었지만, 이때 부여된 자율성은 그곳에 있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 같은 효과를 가진다. 


가장 중요한 복기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고 대화를 주도하는 기술인데, 전두광은 밀회 당시 대령 이하들에게는 별을 달지 못해 느끼는 억울함에 대해 묻고, 장성들에게는 곧 전역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대해 질문하며 그들 모두가 지닌 두려움을 복기 시킨다. 이미 가족과도 같은 친밀함을 보이는 하나회 속에서 이런 회유까지 하는 전두광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확실히 회유가 맞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소위 “전화기 액션”이라 불리는 <서울의 봄>의 회유 시퀀스들 속 전두광의 라포르 전략이 육군의 수많은 장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을 공격하지는 않게 하는 회유에 성공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핵심이 된다.




전두광은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야만 한다.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결국 관객은 우리가 아는 전두광의 승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태신은 수많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을 마주하고는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며 전두광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이런 장면은 역사 속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김성수 감독이 전두광에게 가장 치명적일 공격은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인간적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여 이 대사를 추가하였다. 그리고 이는 관객들의 뇌리에 박히는 명대사로 남는다.



그러나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광의 모티브인 전두환은 사망하였으나,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원한을 사기도 했다. 사죄와 반성 하나 없이 조용히 사망했다는 점이 더 고통스러운 죽음이나 최소한 죗값을 치른 뒤의 사망을 원했던 국민 여론상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사람들이 관객으로 찾아온 <서울의 봄> 상영관에서 이 대사는 그들이 직접 전달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 전해주었다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주었다.


이러한 카타르시스는 멜빈 러너의 ‘공평한 세상 가설’에서 비롯된다. 이 오류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생각을 하는 인지 오류의 한 종류로, 전두환의 경우에는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이 인지 오류의 예가 되겠다. 러너에 따르면 이 인지 오류는 '세상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는 발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끔 하여 예상되는 미래를 위한 행위를 지속할 수 있게끔 한다. 그러나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 전두환은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고, 선량한 시민들은 무력하게 죽었다. 러너는 이렇게 우리의 가설이 깨지게 될 때, 우리는 자신도 이런 불합리한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고 말한다.


<서울의 봄>을 보러 극장에 들어설 때 관객은 이미 악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 불의는 그들의 ‘공평한 세상 가설’을 깨뜨리고, 이는 영화 내내 무의식적인 불안감과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태신의 마지막 대사로 관객은 다시금 '세상은 정의롭다'는 오류를 지킬 수 있게 되고, 자업자득은 그대로이며, 착하게 살고 있는 나는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것이 비로소 '옳게 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맺으며


<서울의 봄>은 12.12 사태에 대한 역사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수많은 회유와 정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기사를 통해 영화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다뤄보았다.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을 통해 전두환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시했던 것은 선과 악의 대립 속에서 오고가는 힘의 역학과 그 사이 흔들리는 인물들의 묘사였다고 했다. 대부분의 우리는 아마 이태신이나 전두광 같은 사람이 아닌, 그 주위 인물들과 비슷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그 당시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어둠 속 군중이 될 것인가, 빛나는 깊은 호수로 버틸 것인가.




참고 문헌:

역대 박스오피스. (2024, February 12).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https://www.kobis.or.kr/kobis/business/stat/boxs/findFormerBoxOfficeList.do

YouTube. (2023, December 24). 이런 인터뷰는 없었다! 《서울의 봄》 구석구석 다 털고 간 김성수 감독.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0dIjR8Qq2uk&t=810s 

McWilliams, N. (2011). Psychoanalytic diagnosis: Understanding personality structure in the clinical process (2nd ed.). Guilford Press.

Bon, G. L. (2022). Crowd: A Study of the Popular Mind. DOUBLE 9 BOOKS.

S., M. A. R., & Hewstone, M. (1996). The Blackwell Encyclopedia of Social Psychology. Blackwell. 

Alison, L., & Alison, E. (2021). 타인을 읽는 말. 흐름출판. 

Lerner, M. J. (1980). The Belief in a Just World, 9–30. https://doi.org/10.1007/978-1-4899-0448-5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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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22 1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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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ejinwoo09112024-03-04 00:35:14

    기사 글에는 정확하고 깊이 있는 분석이 담겨져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선과 악, 회유의 힘 등을 통해 인물과 이야기의 깊이를 파악하는 내용이 돋보입니다. 특히 군중심리와 회유 전략에 대한 심리학적인 설명은 흥미로웠습니다. 자세하고 명쾌한 분석에 피드백을 드린다면 "영화의 강력한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와 선택에 대한 해석이 명확하게 전달돼 있습니다. 특히 회유의 힘을 군중심리와 함께 분석하여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을 제공했습니다. 더불어,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어 의미 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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