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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박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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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른 살 넘으면 자살할 거예요. 뭘 구질구질하게 칠팔십까지 살아요?” 

 

영화 <수상한 그녀>의 도입부 中 한 여학생이 대학 교양시간에 무심코 툭 던진 말이다. 청자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저렇게 심하게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통 노인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느리다’, ‘나약하다’, ‘쓸데가 없다’ 등의 부정적 속성이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1990년대 초에 형성된 노령 담론에서 기인한다. 노령 담론이란 ‘인간은 나이가 들면 가치가 없어진다’고 주장하는 담론이다. 특히 현대 능률주의 사회에서 노인은 결코 능률적이지 못하다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인식이 팽배해지며 해당 담론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는 우리 사회 내 노인들을 사각지대로 내몰았다.

 


우리가 노화를 마주하는 방식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또 하나의 운명을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간다. 다만 우리는 죽음을 너무나 먼 훗날처럼 여기는 때가 많다. 아직은 젊기 때문일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죽음’이라는 목적지가 선명해지는 때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들은 노인(老人)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한다.

 

연령 인식이란 우리 사회가 고령자에게 부여하는 심리적 기댓값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노화를 마주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긍정적인 연령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부정적인 연령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거부하고 회피하려 든다. 이는 우리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노인을 바라보는 보편적 인식과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 실제로 동양권 국가에 속한 사람들은 서양권 국가에 속한 사람들보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수의 동양권 국가는 오랜 세월 노인을 공경하고 봉양하는 뿌리 깊은 유교 문화가 내재돼 있어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인 경향이 높다. 반면 주로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서양권 국가의 경우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부정적인 경향이 높다.

 

이러한 연령 인식의 문제는 향후 사회 구조적 연령 차별과도 연결된다.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고령자에 대한 물리적·정신적 차별로 이어지며 이는 다가올 노년기를 마주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대물림되는 사회적 악순환을 일으킨다. 따라서 우리는 노화를 마주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성이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는 우리가 흔히 고령자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이 무색하게 자신의 인생을 잘 영위하는 훌륭한 노인들이 많다. 재즈계의 거장 앨런 투생은 70대까지 무대에 섰고 오스카상을 수상한 배우 모건 프리먼은 80대인 현재까지도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영화감독 히치콕,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화가 피카소는 고령의 나이에 당대 최고의 업적을 남기며 후손들의 우상이 되었다. 

 

노인이 되면 뇌가 쇠퇴한다는 논리 역시 거짓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뇌 기능에 큰 변화를 겪는데 이때 뇌의 유연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신경 연결을 형성하는 능력인 신경가소성은 노년기에도 유지된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아울러 노년기가 되면 스트레스와 충동적인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과 문제의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게 만드는 ‘확산적 사고’의 기능이 더욱 발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필자는 오히려 기억력 감퇴의 원인을 나이와 연관 짓는 대중의 무의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노화 심리학자 베카 레비는 노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이 부정적인 연령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나이가 들면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잘못된 인식이 노인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연령 인식은 노인들의 자존감을 저하시키고 그들 자신이 쇠약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태도를 취하게 하여 건강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 또한 신체 내 코르티솔 호르몬과 혈액 속 C 반응성 단백질 같은 스트레스의 생체 표지를 증가시켜 실제로 건강 악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긍정적인 연령 인식은 노인의 삶을 정반대로 돌려놓는다. 긍정적인 연령 인식을 가진 노인들은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베카 레비의 연구에 따르면, 연령 인식이 긍정적인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들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47퍼센트 낮고 평균 수명 역시 7.5년이 더 길었다.

 


노인(老人)이 아니라 노인(路人)입니다


노인 건강을 해치는 진짜 원인은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잘못된 고정관념과 인식’이다. 인간은 연령과 상관없이 언제든 꿈꾸고 도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닌 또 다른 성장이다. 지난 삶을 회고하며 남은 생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노년기에 접어든다. 그러나 나이 듦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갈지는 각자의 몫이다. 

 

더 창창한 내일을 걸어가기 위해 ‘노인’을 다시 정의해 본다. “노인(老人)이 아니라 노인(路人)입니다”




참고문헌

베카 레비, 「나이가 든다는 착각」, 김효정, 한빛비즈, 2023

매경춘추, [Website], 2021, 노령담론의 시작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9856788

매일신문, [Website], 2023, 지금부터 다르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https://www.imaeil.com/page/view/2023052316131639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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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26 15: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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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jgwon642024-02-28 15:52:48

    무지성으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도, 아르바이트 중 만난 일부 노인들의 행동으로 나도 모르게 모든 노인에게 부정적 인식을 가지려 하던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저도 20대 중반이 되면서 사회적 시선으로 어리지만은 않다는 느낌과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오는 압박으로 힘들었는데, 물론 지금도 젊은 나이이지만 다시 한번 용기를 얻는 기분입니다. '인간은 연령과 상관없이 언제든 꿈꾸고 도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혹시라도 무의식적으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지 않게 항상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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