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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김혜인 ]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 없잖아?”


작년에 개봉한 영화 <애프터썬>의 대사이다.


영화 <애프터썬>의 장면

이 영화는 주인공 소피가 11살이었을 때 아빠와 떠난 튀르키예 여행의 시간을 되짚는다. 그 방식은 크게 2가지, 여행 당시 소피가 캠코더로 찍은 영상들과, 영화가 전개되며 특별히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은 소피의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없으며, 이 여행은 소피가 아빠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잔잔히 흘러가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거세게 밀려오는 감정의 큰 파도를 선사한다. 



<애프터썬>에서 우울증이 드러나는 방식

여행 당시 소피의 아빠 캘럼은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울증 또는 그와 비슷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아빠와 여행을 와서 마냥 즐거운 소피와 반대로 캘럼의 웃는 얼굴 사이에는 우울이 엿보인다. 영화 중간중간 명상이나 태극권을 하며 스스로를 깊은 심연에 빠지게 한 감정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신질환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애프터썬>에서는 현재(소피가 어른인 현재)와 과거(소피와 아빠의 여행) 사이에 또 다른 시간의 공간이 존재한다. (물론 이 공간은 실재하지 않고 소피의 상상 혹은 꿈속이다) 이 공간, 벽 너머에는 요란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고 그 안에서 홀로 절규를 하는 것도 같고 춤을 추는 것도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비친다. 아빠 캘럼의 우울과 정신적 힘듦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 영화를 여러 번 감상하다 보면 캘럼이 튀르키예 여행을 자신의 딸과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은연 중에 느끼는 것 같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만 같이 불완전하고 불안하다. 



캠코더 밖, 어린 소피가 몰랐던 것


이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은 주인공 소피는 아버지의 이런 우울한 모습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소피는 아버지와 여행을 온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고, 새로운 장소에서의 순간들을 즐기느라 캘럼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 아버지의 우울을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현재 어른이 된 소피에게 큰 죄책감으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영화는 소피가 찍은 캠코더 영상 속 캘럼뿐만 아니라 소피가 보지 못했던 캘럼의 모습을 비춘다. 관객들만이 그의 우울을 목격한다. 소피가 알지 못했던 시간의 캘럼은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 침대에 걸터앉아 몰래 흐느끼거나, 화장실에서 깁스를 푸느라 힘겨워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의 플롯은 현재의 소피가 자신의 오래 전 기억을 복기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 장면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소피의 캠코더로 담기지 않은 장면들 속의 아빠는 소피가 영영 알 수 없는 사실의 조각들이다. 그렇지만 소피의 꿈에서, 기억 속에서 아빠는 나타나고, 소피는 그때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이 메마르지 않도록 도와주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은 소피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있더라도 이를 눈치채는 것은 쉽지 않다. 우울증은 겉으로 보기에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우울은 슬픔과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슬픔은 눈물로써 나타나고 밖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우울은 그렇지 않다. 우울감은 더욱 복합적인 감정이고 그만큼 타인들은 인지하기 힘들다고 한다. 


튀르키예 여행에서 캘럼은 소피와 함께 있을 때면 열정적으로 딸과 놀아준다. 계속 미소를 짓고 있고, 중간중간 스며드는 회색 빛의 감정을 엿볼 수는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관객의 시선으로써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세심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주변인들의 그런 세밀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는 경우는 드물다. 당사자 본인이 직접 자신의 병을 밝히지 않는 이상. 당연하게도 캘럼은 어린 소피가 자신의 우울증을 알길 원치 않았다. “아빠한테는 뭐든지 말해도 돼. 나도 다 해본 거니까 괜찮아.” 딸에게는 모든 걸 아빠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속앓이는 조금도 밝히지 않는다. 관객들만이 그의 우울을 목격한다.


우울한 이는 이미 멀리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만 부서진 그 여름의 조각들을 모아 퍼즐을 맞추어 본다. 그런 면에서 <애프터썬>은 떠나간 사람에 대해 붙잡고 싶은 기억을 엮고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감정적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피, 정말 사랑해. 그건 절대 잊지 마. 아빠가.”




참고자료

민용준(2023.2.8), ‘애프터썬’ 선묘하고, 선득한 재능의 발견이자 선언 -VOGUE(vogue.co.kr)

이동진(2023.2.10), 이동진 5점 만점 영화 [애프터썬]의 의문점 모두 해결해 드립니다!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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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2-27 15: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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