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현
[The Psychology Times=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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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라는 게임을 아는가?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두 명으로, 플레이어들에게는 ‘협력’과 ‘배반’이라는 두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들은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협력을 고르면 상대방이 이득을 볼 확률이 높아지고, 배반을 고르면 자신이 이득을 볼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두 명이 일면식도 없고 게임이 딱 한 번만 이루어진다는 조건 하에서는, 상대방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배반’을 택하는 것이 항상 합리적이다.
그러나 과거 반세기 동안 진행된 실험에서는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협력’이라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모르는 이와 다시는 볼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렇듯 인간은 눈앞에 정답을 두고도 때때로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곤 한다. 오늘은 진화심리학의 ‘사바나 원칙’을 바탕으로 그 까닭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진화심리학,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사바나 원칙’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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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이란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을 말한다.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특수한 작용이나 원리를 심리 메커니즘이라 일컫는데, 진화 심리학자들은 ‘진화에 의해’ 형성된 심리 메커니즘에 집중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심리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진화한 동물이기에 인간의 뇌는 과거 환경에 대응한 것들의 종합체이고, 인간의 뇌는 미래를 예견하고 대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에 결국 인간은 과거 환경에 더 적합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리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행동하면 현재의 환경 조건에 적합하지 않을 수가 있고, 오히려 현재의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여기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경우가 바로 우리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위 내용을 이론화시킨 것이 바로 ‘사바나 원칙’이다. 사바나 원칙이란 ‘우리의 뇌는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상황은 잘 이해할 수 없으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 현재가 21세기라는 사실을 의식상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의 뇌는 그렇지 못하고, 당신이 여전히 1만 년도 더 지난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두뇌 수준이 인류가 살던 초창기나 혹은 조상들의 환경에 머물러 있기에 그 시대 이후 환경에서 발생하는 상황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우리가 때때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바나 원칙’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현상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바나 원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 현상들
-왜 포르노를 소비하는 성별은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까?
사바나 원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실존하는 성적 파트너와 화면 속 성적 파트너를 구별하지 못한다. 우리 조상의 환경에는 후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의 뇌는 포르노에서 보는 여성과 성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여성의 뇌 역시 포르노에서 보는 남성과 성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여기서 어떻게 인지하지 못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남성이 포르노를 보고 발기할 리 없다. 발기의 생물학적 기능은 오직 한 가지, 여성과의 성교를 위함인데, 만약 남성의 뇌가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과 성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면 포르노를 보고 발기할 리가 없다.
여기까지는 성별에 상관없이 인간의 뇌가 포르노를 어떻게 대하는 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성과 여성의 포르노 소비량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궁극적인 목표, ‘번식’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입장 차이이다.
남성은 많은 성적 파트너를 둘수록 번식 성공도가 높아지는 반면, 여성은 성적 파트너 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성은 1년에 100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갖더라도 한 사람의 아이밖에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은 포르노 소비를 실제 여성과의 성교로 착각하고, 본인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기 위해 포르노를 소비한다. 파트너의 수와 번식의 성공률이 비례하지 않아 성교에 있어 훨씬 더 부담이 크고 신중한 여성의 경우에도 포르노를 보는 것이 그 속의 등장인물과 실제로 성교를 하는 게 아니고 당연히 임신 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은 높은 확률로 포르노를 피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 눈앞에 정답을 두고도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이유는 뭘까?
위에서도 말했듯, 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딱 한 번만 진행되고, 2명의 플레이어는 실험 전에 면식이 없고 실험 후에도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배반’을 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상대방을 배반해도 복수 당할 위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왜 실험 참가자의 절반은 ‘협력’을 택한 것일까?
사바나 원칙에 따르면, ‘완전한 익명성’과 ‘비반복성’, 이 둘은 우리 조상들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150명 정도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익명의 거래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 번뿐인 거래라는 것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협력’을 택한 사람들은 이 게임을 모르는 상대방과의 한 번뿐인 게임이 아닌, 직접 얼굴을 맞대고 반복되는 게임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면식이 있는 상대방과 게임을 계속한다면 ‘협력’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은 정말로 합리적일까?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꺼려하고 두려워한다. 물론 원시시대에 새로운 도전(식량을 구하기 위해 오지로 들어가거나 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걸었어야 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생존에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해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일단 그냥 저지르고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 기제에 ‘사바나 원칙’을 적용한다면, 새로운 도전 속에서 오는 두려움은 과거에나 유효했던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현재 환경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하나의 방해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 ‘사바나 원칙’이 절대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위처럼 이 ‘사바나 원칙’을 우리의 일상생활 속 특정한 상황들에 적용해 본다면, 인간의 본능에 잠식되지 않고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은 정말로 합리적인가? 석기 시대 때나 유효했던 행동을 하고 있진 않은가?
<출처>
가나자와 사토시. 2020. 지능의 역설. 데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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