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The Psychology Times=김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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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 방문하고 싶은데, 다른 과와 다르게 정신과에 가는 것이 겁이 나기도 하고 두려워요.”
사회 초년생인 OO 씨(가명)는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오랜 기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잠이 들려고 하면 끝내지 못한 업무가 떠오르고 회사에서는 상사와의 마찰로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압도’되어 있다. OO 씨의 부모님은 여러 차례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권하였지만, OO 씨는 매번 얼버무리며 대화를 피하였다. OO 씨는 자신이 스트레스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정신과 진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는 정신과 방문을 주저하는 것일까.
잘못된 인식과 타인의 시선이 원인
해외에서 정신건강(mental health)은 우리나라보다 좀 더 보편화된 대화 소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신질환을 터부시하고 정신과 방문에 장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발표한 '2022년 국민정신건강지식 및 태도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5%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불편감이나 며칠간 지속된 우울감, 불안, 불면으로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다. 그러나 이 중 25%만이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하여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2.1%, 일본은 20%, 미국은 43.1%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앞선 2022 정신건강 관련 조사에 따르면, 그 정도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응답이 90.3%, 치료받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었다는 응답이 43.2%나 되었다. 즉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타인의 시선이 정신과를 방문하기 주저하게 만든 것이다.
정신과에 대한 마음의 벽 허물기
“우울증은 마음의 골절.” 책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을 저술한 나종호 선생님의 표현이다. 필자는 이렇게 적합한 비유를 본 적이 없다. 흔히 우울증을 감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런 비유가 사람들이 우울감을 경험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너무 심각하고 중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가볍게만 여길 것도 아니다. 뼈가 부러졌을 때 우리가 병원에 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처럼,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이 왔을 때도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우울증은 흔히 ‘사회적 고립’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된다. 우울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적 고립을 가져오고, 그 사회적 고립이 우울증을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화되어 내 일상을 침범할 때,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도 정신과 진료의 주요한 장벽으로 언급된다. 전화나 화상 시스템 등을 이용한 통신문화가 대중화된 오늘날, 정신과 진료의 경로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학술 저널 ‘사회정신의학’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원격 정신과 진료(telepsychiatry)가 낙인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16세의 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70%에 가까운 청소년이 낙인으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꺼린다고 보고하였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 원하였으나 꺼렸던 조사 대상 중 45.8%가 원격 정신과 진료를 이용하기를 원하였고, 그 주된 이유로 낙인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꼽았다. 또한 성인 강박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6개월간 원격 정신과 진료를 시행한 결과, 대면 진료와 임상적 결과가 다르지 않았음을 보인 연구도 있다. 환자의 개인정보 보안 문제나 원격진료에 사용되는 장비의 결함으로 의학적 결정을 내리는데 생기는 어려움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지만, 원격 정신과 진료가 정신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원격 정신과 진료가 진료를 고민하는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인다면, 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대중매체도 심리 치료나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필자는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가 처음 방영되었을 때 느낀 신선한 충격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많은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많은 유명인이 ‘금쪽 상담소’를 방문하여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을 받았고, 시청자들은 방송 속 사례에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며 위로를 받고 나아가 도움을 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은영 박사는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든 시기에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이를 진정성 있게 경청하는 자세들이 매체에서 더 많이 노출될 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너 요즘 정신건강은 어때?
바쁜 현대 사회에서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신체 건강을 위해 주기적인 운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정신 건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내 마음을 가꾸고 돌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때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모두의 마음이 모여 더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 요즘 정신건강은 어때?"라고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
나종호. (2022).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아몬드.
우울증 100만 시대…병원 꺼리는 '샤이 환자' 더 많다 [THE FACT 사회]. (2023). https://news.tf.co.kr/read/life/2049330.htm.
청년층 2년마다 정신건강 검진… 감정노동자 트라우마센터 확대 [서울신문]. (2023).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1206005004.
은영 매직 [WOMAN SENSE]. (2021). https://www.womansense.co.kr/woman/article/49418.
신경철 et al. (2011). 청소년에게서 원격정신과진료가 정신과 치료의 장벽인 낙인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사회정신의학, 16(1), pp.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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