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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박한희 ]


본 기사는 영화 '서울의 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문득 영화 ‘서울의 봄’을 본 천만의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영화를 보는 내내 끓어오르던 그 분노를, 입 밖으로 외칠 수 있다면,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필자의 외침은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따르는 거야?”로 정하였다. 아마 천만의 관객 중 몇몇은 같은 분노를 외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의문에 가득 찬 우리는, 영화 속 그들과 다를 것인가? 우리는 권위 앞에 복종하지 않을 것인가?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권위와 복종에 의문을 가진 이는 1960년대 미국에도 존재하였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예일대학교에서 복종 실험을 위한 지원자를 모집하였다. 실험의 참가자는 학습자로 고용된 연기인, 선생의 역할인 피실험자, 권위자의 역할인 실험자로 구성된다. 실험의 목적을 모르는 피실험자는 칸 막이 뒤에 있는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실험자의 지시에 따라 전기 충격을 16V씩 올린다. 문제를 틀릴 때마다 피실험자는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하며, 학생은 괴로운 척 연기한다. 

 

어느 순간부터 피실험자 대부분은 실험의 중단을 요청했지만, 실험자의 “괜찮습니다. 저 정도로 죽지 않습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말에 계속해서 스위치를 올렸다. 과연 피실험자들은 죽음에 이르는 450V까지 스위치를 올렸을까? 실험자의 지시에 복종하였을까? 결과적으론, 참가자 40명 중 65%는 스위치를 올렸다.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가 당연히 여긴, 불합리에 대한 불복종의 불꽃이 사실은 허상의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마찬가지로 실험 결과에 놀란 밀그램은 실험 조건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습자가 소리 내어 항의해 보거나, 피실험자가 학습자를 볼 수 있도록 하거나, 신체 접촉이 있어야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피실험자와 학습자의 근접성이 높아질수록 불복종을 선언하는 수는 증가했으나, 여전히 절반 가까이는 끝까지 명령에 따랐다. 

 


권위에 복종하는 자아 


영화 속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다시 부대로 복귀한다면, 군사 반란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상관의 약속에도, 그들은 군사 반란의 명령을 따르는 쪽을 택했다. 그들만 명령에 따랐던 것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혹은 그전부터 이어져 온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 자유를 포기하고 권위자의 말에 따른 것인가. 밀그램은 피실험자들이 실험의 내막을 알고 난 뒤, 다수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부인, 갈등 회피, 책임 전가를 시도하였다고 한다. 권위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가 되는 것이다. 

 

 

권위에 맞서는 자아


실험실 너머의 현대사회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조직 속에서 불합리한 명령을 받았을 때,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라는 합리화를 거쳐 권위와 자신을 맞바꾸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렇듯 위 이야기는 결국 우리도 권위적인 상황에선 복종을 택한다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위 실험을 통해 진정으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권위 앞에 쉽게 복종하는 우리일수록, 자신의 어떠한 ’자아‘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리학 사전에서 말하는 건강한 자아는 본능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을 위반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책임으로부터 회피하여 권위에 따르고 싶은 욕구와 자신만의 도덕 기준 하에 주체적인 행위를 하는 것. 그 사이에서 욕구에 굴복하지 않고, 내가 선택한 ‘나의 행위’를 책임지는 그러한 용기 있는 자아를 형성하길 바라는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복종의 욕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누구나 다를 것이다. 앞으로 마주칠 수많은 권위 앞에서, 자신만의 자아를 내비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과정은 영화 속 군인들이 그랬듯,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 불합리한 것에 함께 저항하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다른 이의 용기는 나의 용기가 되기도 한다. 나의 용기가 모두의 용기가 될 수 있도록,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주체적인 자아가 빛을 볼 수 있도록, 권위로부터 맞서기를 함께 다짐하고 싶다. 



한보희. (2009). 잃어버린 영혼anima을 찾아서, 스탠리 밀그램 지음, 『권위에 대한 복종』, 정태연 옮김 (에코리브르, 2009). 문학과사회, 22(2), 52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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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4-04 08: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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