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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혜령 ]


# '평온한 엄마' 라는 판타지


상담을 통해 많은 분들의 깊은 이야기, 특히 어린시절에 상처가 되었던 얘기를 듣다보면 감정조절에 서툰 부모가 자주 등장합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 욱해서 소리를 꽥 지르는 어머니, 정서적인 소통이 전혀 안되는 차갑기만한 아버지,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듯 깊은 우울에 빠져있는 어머니. 그런 부모와의 사이에서 생겨난 아픈 장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불쑥불쑥 떠오르고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버지는 대체로 무뚝뚝하신 편이셨고 어머니는 자주 감정을 폭발하듯 터뜨리셨습니다. 그 사이에서 상처로 남은 몇몇 기억들은 원치않게 자주 떠올라 재경험됩니다. 사춘기즈음부터는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는 모습까지 가까이 지켜보면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던 기억도 나요. 그 때문에 저는 더더욱 감정을 다루는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덕분에 책을 쓰고 상담을 하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무척 감사한 경험입니다. 그럼에도 아픈 기억인 것은 사실이고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감정을 다루는 게 능숙해지지는 않다는 겁니다. 많이들 서툴러요. 가정이나 학교에서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배운적도 없으니까요.


엄마가 된 여자들은 살림, 육아, 부부관계, 시댁과의 관계 등 그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요. 그러나 마음을 풀어낼 곳도, 가벼운 마음으로 쉬어갈 시간도 충분치 않아 자주 예민해지고요. 그런 의미에서 '평온한 엄마'는 어쩌면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직장일까지 병행해내야 하는 어려운 일상에서 감정의 동요가 큰 것도, 사소한 일에 쉽게 예민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이거든요.


그렇기에 오늘은 감정조절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누구보다 마음을 컨트롤하는 게 어려웠던 제가 마음을 그럭저럭 잘 데리고 살아내게 되기까지 또, 상담가로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녹여냈으니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래요.



# 차분한 마음을 방해하는 주범은?


십여년전 요가수업을 다니던 어떤 날이었어요. 50분동안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저는 그저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었지요. 누구도 저를 방해하지도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속은 너무 시끄러웠어요. 흡사 전쟁터 같았습니다. 혼란스럽고 불안정했어요. 요가시간이 끝나고 과연 나는 50분동안 무얼했나 싶더라고요. 요가를 하면 마음도 차분해진다는 데 오히려 더 산만해졌습니다. 선생님은 계속 몸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천천히 호흡하도록 가이드를 주셨지만 저는 신체감각에 집중하지도 못했고 호흡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어요.  내 마음 속의 요란한 목소리들에 휩쓸려 이생각 저생각을 메뚜기처럼 튀어다녔거든요. 그당시 저는 크고작은 고민이 많아 늘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요가시간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이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고자 시작했던 요가는 그렇게 얼마안가 그만두게 됩니다.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을 갖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면에는 계속해서 어떤 목소리와 이야기가 떠다니기 때문이에요. 온갖 상념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마음이라는 무대 위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누군가가 있어요. 아이나 남편일 수도, 직장상사일수도, 친정엄마일수도, 오늘 아침에 만난 아들친구 엄마일수도 있겠네요. 과거 사건이 반복재생되고 있을 수도 있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무수히 시뮬레이션 해보고 있을 수도 있어요. 무대 위에 등장한 그 주인공은 날 좀 보라며 소리치고 어떤 날은 칼춤도 춥니다. 거기에 내 주의가 빼앗겨 있으면 마음은 항상 소란스럽겠지요. 제가 경험했듯 때때로 전쟁터일 겁니다. 우리가 많이 쓰는 '속 시끄럽다'는 표현이 딱이죠.



"네 머릿속 이 목소리는 네 삶의 매 순간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그리고 네 마음은 그 목소리가 너한테 말해주는 것에 반응하지. 마치 그게 실제로 너를 잘 안다는듯이 말이야."


- 제임스 도티 <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 중에서 -



시끄러운 속을 가득 채우는 내면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게 바로 이 목소리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특히 머리속에서 지난일을 반추하는 건 우울의 주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시뮬레이션 하는 습관은 불안의 주범이에요.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울과 불안, 그 외에 원치않는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이녀석을 체크해봐야겠습니다.



마음을 채우는 '목소리'의 몇가지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 볼게요.


1. "(아이를 보며) 왜 저렇게 산만한거야. 저래서 공부는 제대로 하겠어?"    - 평가하는 목소리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내 아이를 보면서도 끊임없이 어떤 평가를 합니다. 걸음마가 왜 이렇게 느리지? 얘는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왜 이렇게 고집이 세지? 평가라는 것은 기준이 있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내가 알고 있는 더 우월한 존재들과 비교를 하기 때문에 평가하는 목소리는 육아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불안을 부추기는 버튼이죠.


꼭 사람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마주하는 사건을 명확히 파악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판단하고 평가하게 됩니다. 유쾌하지 않은 상황의 원인을 찾아내려 하고, 내가 내린 결정에 후회를 하고, 무려 '내 인생이 망했다거나 실패했다, 나는 쓸모가 없다'와 같은 존재나 삶에 대해 전체적인 판단을 흑백논리로 내려버립니다. 당연히 이 목소리를 사실로 믿어버리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겠죠.


2. "난 왜이렇게 게으른 거야" - 자기비난의 목소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목소리 중에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지요. 시험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었거나 취업에서 낙방했을 때조차 자신을 위로하기 보다는 비난합니다. 머리속에는 이런 목소리가 흘러다니겠죠. '니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거야.' '이거봐 내가 이럴줄 알았어. 미리미리 준비했어야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이 목소리는 실제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게 아닙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많이 들었던 비난을 내면화 했거나, 누군가 쉽게 툭툭 던진말이 마음에 꽂혀서 목소리로 재생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나를 무가치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그 말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면 속이 시끄러운 동시에 얼마나 위축되어 있을까요. 그럼 잘 해낼 수 있는 일도 못하지 않을까요. 이 목소리에 나 자신을 맡기면 비관적이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3.  "떡볶이 먹고싶다. 살빼야 되는데" - 충동의 목소리

두더지 잡기에서 두더지가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올라오는 것처럼 예고없이 어떤 생각들이 툭툭 튀어오릅니다. 맛있는 음식이 떠오를 수도 있고, 보고싶은 누군가가 떠오를 수도 있고, 잊고있던 해야 할일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요. 뭔가가 하고싶다는 갑작스런 충동은 욕구에서 기인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극적인 음식이 떠올랐을 수도 있고, 피곤해졌을 때 '아 쉬고싶다. 눕고싶다.'는 생각이, 또 뭔가 마음이 허전할 때 인터넷 쇼핑에 대한 충동이 올라오기도 하죠.


이런 목소리들은 아주 예고없이 나타나지만 그 목소리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마음이 산만한 것 이상으로 일상이 막무가내로 흐트러지게 됩니다. 홀린듯이 늦은밤에 떡볶이를 먹고, 또 홀린듯이 충동구매를 하게 됩니다. 건강도 정신도 취약해지고 지갑은 텅텅 비어버리겠죠. 뭐든 심사숙고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시각각 튀어오르는 충동에 응답하며 사는 것도 결코 건강한 삶은 아니겠지요?



몇가지 대표적인 (유익하지 않은) 목소리를 예시로 들어보았습니다. 어떤가요. 여러분 안에도 있음직한 목소리들이죠.


때문에 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발짝 떨어서 지켜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목소리가 언성을 높이고 있는지, 누가 무대위를 장악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하죠.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한 결과로 내 일상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는 일도 도움이 됩니다. 단지 내 마음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을 뿐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 내버려 둘 수 있거든요. 그리고 타협도 가능합니다. 자기비난이 진짜 내 목소리가 아니라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엄마의 잔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마음에게 말해줄 수 있겠죠 '알아, 내가 더 잘살기를 바라는거지? 그렇게 비난하지 않아도 난 잘 할 수 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라고 달래보는 겁니다.


나를 괴롭게 또는 아프게하는 그 목소리들을 제거해버리거나 싸워서 이기려고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단번에 없애는게 쉬운일도 아닐뿐더러, 목소리 존재유무가 괴로움과 평온함의 주범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내가 그 목소리를 믿느냐 무시하느냐입니다. 상념들을 쫓아가느냐 놓아주느냐의 차이인거죠. 그러니 내면에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내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런 목소리가 내 마음을 장악하려 하는구나.' 하고요. 그것만으로도 주의를 기울여 줄 가치가 없는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네 머리속 목소리를 믿을 순 없어. 항상 너한테 말하고 있는 그 목소리는 대개 옳은 경우보다 틀린 경우가 더 많단다."  


- 제임스 도티 < 닥터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 감정 무죄, 생각 유죄


아이를 가만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정변화가 아주 빨라요. 하나의 감정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블럭놀이에 집중하던 아이가 마음처럼 안되는지 갑자기 짜증을 내요. 격해졌는지 장난감을 집어던져요. '00아~ 잘 안되서 답답해? 도와줄까?'하며 다가가니 언제 그랬냐는듯 흥미로워하며 다시 놀이에 집중합니다. 갑자기 공룡흉내내며 혼자서 깔깔 웃기도 해요. 그러다 이제 목욕할 시간이라고 장난감 정리하자고 했더니 심통을 냅니다.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니 삐져서 '흥, 싫어, 안할거야!'하며 방으로 뛰쳐들어가요(요즘 우리아이의 18번 대사입니다 ^^;). 홈캠으로 지켜보니 이불에 엎드려있네요? 내버려두니 1~2분만에 다시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면서 놀다가 나와서 엄마, 아빠에게 공놀이 하자고 해요. 웃으면서요. 심통이 났던 건 까맣게 잊었나봅니다. 불과 몇분 전에 엄마아빠에게 등을 보이고 들어갔으면 웃으며 놀자고 하는게 민망할 법도 한데 말이죠. 그건 어른의 시선일뿐이겠죠. 아이는 이미 이전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있지 않아요. 마음은 깔끔하게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 있지요.




아이가 주인공인 연극은 이처럼 매순간 극적으로 전개되지만 참 다행이지 뭐에요. 짜증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아이도 저도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뗴를 쓰다가도 쿠키 하나 손에 쥐어주면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데 저는 그게 참 신기하고 좋습니다. 이렇듯 우리마음은 제멋대로에요.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다를까요? 성숙한 어른이라고 해서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고, 한가지 감정에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감정 자체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거든요.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날 뿐이에요. 다만 '그 때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 가 그 감정의 강도와 길이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요. 아이가 어른이 되면 자라난 키만큼이나 늘어난게 바로 '생각'의 양과 복잡성입니다. 생각 요놈에게 걸리는 순간 분노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깊은 우울에 잠식당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갑자기 회식이 생겼다고 연락이 왔어요. 일찍와서 아이를 같이 봤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심지어 그 소식을 퇴근시간 직전에 알리니 화가나고 섭섭하겠죠?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육아는 결국 내 몫이지. 나는 뭐 회식 안하고 싶은 줄 아나? 아이도 어린데 알아서 거절하고 들어와야 되는거 아니야? 이게 도대체 몇번째야.' 로 생각이 꼬리를 물면 분노라는 늪에 슬슬 빠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이가 앞에 와서 재롱을 부리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해요. 생각에 막 빨려들어가고 있거든요. 생각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아이를 보면서 털어버렸을 그 감정을 남편이 들어오는 늦은 밤시간까지 꾸역꾸역 안고갑니다. 그리고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눈을 흘깁니다. 남편은 안그래도 미안한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아내가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니 급하게 자신을 방어하고 싶어집니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기 시작하죠. 그럼 '미안해하지도 않아? 진짜 너무하잖아!!!' 하면서 자신의 분노에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부부싸움으로 번지면서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죠. 이게 바로 생각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결과에요.



생각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중요 핵심을 놓친 채,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Steven C. Hayes. Spencer Smith 공저

<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 중에서 -



감정은 죄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내내 감정은 상황과 자극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사라질거에요. 내 뜻대로 일이 안풀리면 답답하고, 누군가 이유없이 갑자기 돌을 던지면 황당하고 화가 납니다. 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면 슬며시 행복감이 밀려올 거에요. 그 때에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 감정을 기꺼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그 감정을 인정해주어야 해요. 그러면 그 다음단계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아이를 관찰하며 배워보세요. 아직 어른처럼 생각을 깊이 또 많이 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 생각이라는 놈이 유익하지만은 않구나.' 하고요.  아이처럼 한 감정에 걸려있지 않고 한스텝 한스텝 잘 건너갈 수 있도록 생각에 걸려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복잡한 생각으로 뻗어가기 보다는 그저 그 감정을 알아주세요. 아이가 짜증내며 장난감을 집어던질 때 '마음대로 안되서 답답하구나'라고 마음을 읽어주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예민해졌구나.', '모든게 내맘같지 않아서 너무 속상하구나.' '남편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많이 서운하구나.' 하면서 이해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무대위에 있떤 감정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다 발산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겁니다. 감정은 보통 90초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울이든 짜증이든 그 감정이 2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잠깐 주인공을 즐기도록 허용하세요. 그러면 알아서 다른 감정에게 자리를 내어줄테니까요.



내가 볼 때 감정을 효과적으로 넘어서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생리적 반응이 밀어닥칠 때 그 감정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신경 회로가 나를 휘어잡도록 내버려두고 90초의 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 아이들이 그러하듯 감정도 사람들이 들어주고 인정해야 정화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 회로의 강도와 빈도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


- 짐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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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6-12 20: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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