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우A
[한국심리학신문=박지우A ]
“How are you doing?”.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 영어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수없이 들었던 문장일 것이다. 이때 우리의 대답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그 누구도 정해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습관처럼 “난 괜찮아.”라며 우리의 감정을 정해놓고 살아온 것이다. 자, 그럼 이번에는 이 질문에 답해보자.
"당신의 감정은 행복, 슬픔, 불안, 분노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
이 질문에 고민 없이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 왔다. 길을 가던 노부부가 나에게 말을 건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학창 시절에 학원 등원 시간에 쫓겨 종종걸음으로 길을 가던 중, 내 앞에 한 노부부가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그들을 앞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노부부는 나에게 ‘여기 예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빨리 가.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라며 화단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학원에 늦었다는 생각에 가볍게 인사만을 한 뒤 지나쳐버린 상황이었지만, 곱씹어보면 곱씹어볼수록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 처음 본 사람에게 보이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당장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라고 자부했지만, 그날 나의 자부심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그날은 나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된 날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 노부부가 나에게 그 말을 건넨 것이 단지 화단의 꽃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세월을 살아가며 쌓은 지혜를 어린 학생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슬픔의 힘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유와 장소를 불문하고 잘 울어서 “왜” 우느냐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은 정말 왜 우는 것인지 궁금해서 우는 이유를 물었겠지만, 나는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기 때문에 울음이 무조건 나쁜 것인 줄로 알았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나에게 정말로 슬프거나 아플 때는 눈물을 참지 않아도 된다고, 우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우는 건 나쁜 거야’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아 버렸다.
울음에 대한 나의 작은 오해는 이후 나에게 크나큰 시련으로 돌아왔다.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꽁꽁 숨기는 습관이 생겼다. 속마음을 털어놓는 순간 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릴 나 자신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밖에서는 한없이 밝고 활발한 나였지만 속이 타들어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히 느끼며 지냈다. 결국, 꽁꽁 잘 묶어놓은 줄로만 알았던 나의 감정이 어느 날 힘없이 풀려 버렸다. 아니, 화산처럼 폭발해 버렸다. 슬픔은 부정적 감정이라는 이전까지의 나의 인식과는 달리, 울음을 쏟고 난 후 오히려 마음이 안정된 나를 발견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단지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임을 그때야 깨달은 것이다.
이후 나를 괴롭히던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을 썩혀버린 탓에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마음속에 깊이 남은 상처에, 혼자 아무도 모르게 아파했다. 절대 힘든 일이 아니라고 나 자신을 타일렀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여러 감정들의 긴 싸움 끝에, 나는 나의 마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나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인정해 준 뒤, 상처는 아물었다. 특별한 치료 방법은 없었다. 슬프면 그저 슬픔에 잠겨 있어도 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나 자신에게 당당하게 살아갔다. 항상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를 잘 안다는 자부심이 한 끗 차이로 자만심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일기장에 분풀이를 했다. 있는 그대로 내 감정을 이해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이라는 강박에 붙잡혀 나 자신을 많이 괴롭히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상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나 자신을 행복이라는 단어 안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행복의 재정의
만화가이자 극작가인 니콜라인 베르델린이 말하길, ‘완벽’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행복은 실제로 존재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그간 들어온 어떠한 말보다 내가 행복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게 해준 구절이다. 완전한 상태로 정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면, 내가 그 기준을 만들면 된다. 내 감정은 무시하고 애써 행복해지려 하다가는 지쳐버린다. 이제부터 나는 나의 감정을 행복이라고 칭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묻겠다.
"당신의 감정은 행복, 슬픔, 불안, 분노 중 어느 것에 속하는가?"
이제 나는 답변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비로소 행복하다.”
참고문헌
1) 일자 샌드, 2017, 서툰 감정, 다산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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