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원
[한국심리학신문=유혜원 ]
무더운 어느 여름날 카페에 갔더니 시즌 메뉴로 새롭게 등장한 열대과일 스무디가 눈에 띄었다. 늘 마시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지, 아니면 오늘은 새로운 시도를 해볼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안전함에 베팅하고 말았다. 이처럼 익숙한 메뉴만 고르게 되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일까? 사람들은 자주 같은 음식을 선택하지만, 그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혹시라도 메뉴를 새롭게 바꾸면 어떤 방식으로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니 귀찮을 수도 있고, 새로운 맛이 기대와 달라 실망할까 봐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선택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사실 우리 뇌는 익숙함을 좋아하고, 감정적 안정감을 제공받고 싶어 한다. 게다가 ‘오늘은 또 무슨 음식을 시켜야 하나?’라는 선택의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 한다. 즉, 익숙한 메뉴를 고르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와 감정, 심리적 요인들이 맞물려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왜 늘 같은 음식을 고르게 되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비밀들을 파헤쳐 보려고 한다.
나에게 편안한 음식과 감정적 연결
우리가 익숙한 음식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음식이 편안한 음식(comfort food)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주로 개인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음식을 의미하는데, 보통 익숙하고 오랜 시간 사랑받은 음식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음식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결되어 있어 스트레스 상황에서 위로와 안정을 주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영양 공급을 넘어서, 감정적 안정을 주고 특정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따끈한 미역국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가정의 온기와 사랑을 상기시킨다. 이런 음식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완화하고, 심리적 편안함을 제공한다. 따라서 새로운 메뉴보다 익숙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은 감정적 안정과 행복감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인지적 구두쇠와 의사결정의 단순화
익숙한 메뉴를 선택하는 것에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작용한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지적 자원을 사용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판단보다는 간단한 선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평가할 때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더 효율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한다. 익숙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은 뇌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신속한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현대 사회의 빠른 생활 리듬과 결합하여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확증 편향과 안정된 선택의 매력
과거에 먹어본 음식이 맛있었다면, 그 기억은 그 음식을 계속 선택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처음 먹어본 떡볶이가 너무 맛있어서 그 이후로 분식집에 방문할 때마다 다른 메뉴는 주문하지 않고 떡볶이만 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작용으로, 기존의 신념이나 선호를 지지하는 정보를 더욱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새로운 메뉴는 예상치 못한 실망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이미 검증된 선택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확증 편향은 선택의 안정성과 만족도를 높여준다.
선택 과부하와 단순성의 필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질수록 어떤 메뉴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커지고, 이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메뉴판에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오히려 결정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선택 후에도 '다른 메뉴를 골라야 했나?'라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는 선택 과부하(choice overload)라는 현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메뉴를 선택하여 의사결정의 복잡성을 줄인다. 반대로 제한된 선택권이 주어질 때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때로는 새로운 발견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모든 선택은 실패가 아닌 경험으로
늘 먹던 메뉴를 선택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나에게 편안한 음식은 감정적 안정을 제공하고, 인지적 구두쇠와 확증 편향은 선택의 안정성을 높여준다. 선택 과부하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우리의 음식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익숙한 메뉴를 고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가 어제 피했던 그 식당이 사실은 줄 서서 먹는 맛집이란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거나, 두려움에 선택하지 못한 그 메뉴가 생각지도 못하게 내 입맛에 잘 맞을 수도 있다. 물론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다 실패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패조차도 곧 새로운 추억과 경험이 될 테니, 오늘은 조금의 모험심을 발휘해 신메뉴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실패는 잠깐의 아쉬움일 뿐, 나에게 익숙한 메뉴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를 다시 찾은 셈이니까!
*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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